언어(言語)의 힘

최근 들어 전·현직 대통령의 말이 세간에 오르내리며 시끌벅적한데 이어 일부 정치인들도 말 때문에 구설수에 오르는 등 곤욕을 치르고 있다.

잠언서를 보면 "어리석은 자는 제가 한 말로 등에 매를 맞고 슬기로운 사람은 제가 한 말로 몸을 지킨다"라는 글이 기록되어 있다.

우리 속담에도 "말 한마디에 천냥 빚을 갚는다"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말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는 뜻일게다.

인간의 말은 대체로 인간의 부패성을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하루하루를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은 말들을 함부로 내뱉으며 살아가는지 모른다.

습관적으로 거짓된 말, 아첨하는 말, 위선적인 말부터 시작해 자신을 과시하고 자랑하는 말까지 마구 쏟아내고 들으며 하루를 보낸다.

이 세상에는 말(언어 言語)로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말 한마디 때문에 불행을 자초하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혀뿌리를 조심하라는 옛 속담도 있는가보다.

우리는 이 세상을 살면서 무심코 내뱉은 말 한마디가 상대에게 커다란 상처를 주고 경우에 따라서는 철천지 원수가 되기도 한다. 또한 더없이 귀한 친구 관계를 이루기도 한다.

'말'은 약(藥)과 같아서 적당히 달여 쓰지 않으면 독(毒)이 되기도 한다. 결국 말을 할 때 신중함을 보이면 상대에게 상처를 주지 않고 기쁨과 희망을 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 생각없이 느끼는 감정을 억제하지 못한 채 내뱉는 말 한마디는 예리한 칼날 같아 때에 따라서는 다른 사람의 마음에 상처를 주고 문제를 만들기도 한다.

그렇게 말을 함부로 하면서도 정작 필요한 때는 적절한 말을 하지 못하고 침묵(방관)으로 일관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주위에서 쉽게 접하게 된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말에 대한 당위성을 위해 '남들이 그러더라', '남들이 다 그러는데'란 표현을 쓰며, 자신보다는 다수의 생각임을 은근히 강조하는 못된 습관을 갖고 있다.

더 더욱 안타까운 것은 너나 할 것 없이 이 같은 말을 듣고 사실 확인조차 없이 한 사람의 인격을 놓고 난도질을 하며 덩달아 들떠서 맞장구를 친다는 사실이다.

얼마 전 전철안에서 본 광고문구 중 '아! 쉽다'와 '아쉽다'라는 문구가 떠오른다. 똑같은 세 글자였지만 띄거나 붙여서 말하는데 따라 느낌의 차이는 엄청난 것을 알 수가 있었다.

또 '그럴 수 있니?'와 '그럴 수 있지!'도 엄청난 차이를 보인다. 전자는 원망과 분노, 그리고 부정적이지만 후자의 경우는 이해, 따뜻함 그리고 긍정적인 면에서 커다란 차이를 보이고 있다.

얼마 전 필자와 가까운 지우(知友)가 모텔에서 야간 안내(접수 및 주차) 일을 했는데 함께 일(방 청소)하는 아주머니가 모텔 관리인과 점심식사를 하면서 그 지우가 근무하는 날 대실(시간제 투숙) 손님이 많아 10개인가 11개인가를 청소하느라고 늦게 퇴근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문제는 그날 지우가 장부에 기록한 대실 개수는 9개로 되어 있었다는데 있다. 더구나 관리인이 직설적인 표현으로 확인을 하기보다는 청소하는 아주머니가 묻지도 않는 대실 개수를 이야기했는데 숫자도 안맞고 그 저의를 모르겠다고 그 지우에게 넌즈시 말을 하더라는 것이다.

그 말을 들은 지우가 순간적으로 의심을 받게 된 것에 대해 불쾌감을 감출 수가 없었지만 곧바로 감정을 자제하고 아주머니에게 어떻게 확인도 해보지 않고 그런 말을 할 수 있느냐고 했더니 그냥 무심결에 한 말인데 죄송하게 됐다고 사과를 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아주머니는 관리인에게도 무심코 한 말이라고 사과를 했단다.

자기 잘못을 시인하고 사과까지 함으로써 일단락 되었지만 그 지우에게는 쉽게 지울 수 없는 상처가 흔적으로 남게 되었다. 인간에 대한 배신감을 느끼며 허탈해 하던 그 지우의 모습이 참으로 딱하고 안타깝기만 했다.

필자 역시도 남들과의 관계에서 하지는 말아야 할 말을 하기도 하고 또 안해도 좋을 말도 하면서 곧잘 후회를 할 때가 많다.

사실 말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 것인지를 날마다 체험하고, 느끼고, 충고도 받으면서도 또 그 허튼 말 때문에 곤욕을 치르는 사람들을 숱하게 보면서도 쉽게 바꾸지를 못하는 것 같다.

인간이기에 누구든 실수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교활한 인간은 그 같은 실수를 반복하면서 자신의 말과 행위에는 관용을 베풀려고 하면서도 정작 상대방의 실수에 대해서는 한치의 용서도 없이 무조건 정죄(定罪)를 하려고 든다.

어쩜 인간이란 드러냄과 속내가 갈등하는 양면성을 갖는 문화속에 자신을 적절히 변화시키며 살아가는 정치적 동물인지 모르겠다.

아무 생각없이 연못에 돌을 던졌다해도 그 연못 속에서 돌을 맞은 개구리로서는 치명타가 될 수도 있다. 말이란 바로 그런 것 같다.

그나마 글은 썼다가 지울 수도 있다지만 한번 한 말은 쏘아진 화살과 같고 엎지른 물과 같아 반드시 흔적을 남기게 마련이다.

말을 할 때는 침을 한번 삼킨 후 했으면 한다. 짧은 시간이지만 감정을 다스리기는 충분하기 때문이다.

지우가 입었을 마음의 상처를 생각하며 "의인의 마음은 대답할 말을 깊이 생각하여도, 악인의 입은 악을 쏟아 놓느니라"는 말의 의미를 가만히 되새겨 본다.

[시인.수필가.AIU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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