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어 중에 신분이 높은 사람일수록 도덕성의 책임과 의무도 높아진다는 뜻이 담긴 '노블레스 오블리제'라는 말이 있다.

원래 노블레스(noblesse)라는 말은 닭의 벼슬을 의미하고 오블리제(oblige)라는 말은 달걀의 노른자라는 뜻을 나타낸 것으로 이는 닭의 사명은 벼슬을 자랑하는데 있지 않고 알을 낳는데 있음을 의미하는 말이다.

그래서 노블레스 오블리제라는 말은 신분이 높은 귀족일수록 평민보다 사명과 의무가 크다는 뜻을 함축하고 있다.

이것이 곧 리더십의 본질이다. 높은 지위에 있는 지도자는 권력을 휘두르며 그 권력으로 부(富)를 축적하는 사람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높은 지도자는 그 권력의 힘을 가지고 국민들의 안녕을 생각하고 잘 섬기고 지키라는 사명을 부여받은 사람이다. 따라서 진정한 지도자는 국민을 어려워하고 국민의 소리를 겸허한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어야 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분에 넘치는 자리에 앉으면 감투에 깔려 크게 다칠 수가 있다. 미국의 29대 대통령 위런 하딩이 바로 그런 유형의 사람이다.

그는 동네 건달에 불과한 사람이었다. 스스로 "나는 대통령직에 적합하지 않은 사람"이라며 "국가 안위를 위해서는 이 직책을 맡지 않았어야 옳았다"고 고백을 하며 대통령 직무에 따른 고통을 털어 놓은 인물이다.

그런 그가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지방의 정치꾼 덕분에 이루어졌는데 능력조차 검증되지 않은 상황에서 단지, 키가 크고 강한 인상을 주는 외모와 화려한 말솜씨를 가졌다는 이유로 그를 상원의원으로, 대통령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어부지리 식으로 대통령이 된 하딩은 그 정치꾼을 법무장관 자리에 앉히고 다른 자리도 코드에 맞는 친척이나 친구들에게 분배하듯 나눠줬다. 또 산하기관 3000여개가 넘는 기관장까지도 코드 인사를 단행했다.

거기다 국민들로부터 강한 원성을 사고 있는 하딩의 '오하이오 갱단'이 금주법이 시행되는 가운데 정부 창고에서 술을 빼내오고 정부사업 역시 공직자들의 부정부패가 만연해지고 또 구속이 되어도 사면에다 좋은 자리까지 마련해 주었다. 그 결과는 뻔했다. 중간선거에서 상·하원 의석 대부분을 잃을 정도로 참패했다.

이 같은 미국의 사례를 보면서 남의 나라 얘기가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바로 지금 우리나라의 모습이 거울로 반사되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킨다.

새로운 정부를 지향하며 출발했던 현 정부가 사방팔방으로 뭇매를 맞고 있는데도 도대체 감각이 없는 것 같다.

요즘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전시작전 통제권 환수, 사학법 문제와 함께 바다이야기 등 권력형 비리가 연이어 터지면서 많은 국민들을 혼란스럽게 하며 안타까움을 토로하게 만들고 있다.

물론 이 같은 사안들이 어제, 오늘만의 일은 아니지만 정권이 바뀌어도 권력과 특권으로 국민들을 무시하며 실망시키고 마음 아프게 하는 일은 여전하고 변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하나 같이 정당성을 주장하고 일관된 변명만을 장황하게 늘어 놓으며 적당히 넘어가려고 하는 행태를 보면 정말로 역겨움을 느끼며 울화가 치민다.

전시작전 통제권 환수를 주장하며 한·미 동맹에 아무 문제가 없다는 대통령, 그러나 외교장관은 비슷한 시기에 한·미간 인식차이가 있음을 시인하며 '불행'이라고 했다. 같은 사안을 두고 바라보는 시각이 다르니 국민은 누구 말을 믿어야 할지 어리둥절하기만 할 뿐이다.

또 대통령은 국정과 관련, 국민들의 많은 지적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기보다는 내가 잘못한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며 막무가내 식으로 모든 것을 밀어붙이려 한다.

더구나 '바다이야기' 문제와 관련, 내 조카는 무관하다고 미리 못을 박고 검찰 수사가 착수되기 전 권력형 비리는 아니라며 범죄자인 가신(家臣)을 옹호하고 나선다. '도둑이 들려니 개도 안 짖는다'는 명언을 남기기도 했다.

국민들의 삶의 고통을 보며 눈물을 흘려야 할 대통령이 노사모 회원들을 청와대로 초청, 오찬을 나누면서 눈물을 비치기도 했다는 우리나라 대통령. 그 자리에서 노사모가 정치를 바꾼 것으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라며 정치가 많이 깨끗해졌다는 말도 했단다.

엄연한 사실을 모르고 있는 건지, 아니면 알고도 능청을 떨며 고집을 부리는 건지 국민은 매우 혼란스럽기만 하다. 절대권력 속에서 감각이 마비되면서 사(私)가 공(公)이 되어 짐(朕)이 곧 국가가 된 것처럼 착각을 일으키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대통령 하기 싫다던 때가 언제인데 대통령 임기가 아직도 많이 남아 있는데도 불구, 퇴임 후를 걱정하며 하고 싶은 것을 거침없이 말하는 대통령의 넉살, 가히 소오강호(笑傲江湖)라 할 수 있다.

그런 대통령이 되고 싶으면 그에 앞서 국민이 기대했던 믿음을 저버리고 배반을 해서는 안된다. 신뢰를 잃으면 좋은 대통령으로 기억될 수 없다는 것을 모르는 모양이다. 현 정국을 보며 '하딩'이 생각나는 것도 우연은 아닌 것 같다.

최고 국가 통치권자인 대통령이 안보, 외교, 국가기강, 경제에 대한 책임을 갖는 자세로 트루먼 대통령처럼 모든 책임은 내게 있다고 하면 좋으련만, 대통령의 능력의 한계가 안타깝기만 하다.

[시인.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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