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누구든 지각(知覺)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간혹 자기 자신에게 인생의 가장 중요한 질문을 스스로 던질 때가 있었을 것이다.

때로는 어떻게 하면 길지도, 짧지도 않은 속세(俗世)의 삶을 가치있게 살 수 있을까 하는 고민에 빠지기도 한다.

아울러 어떻게 하면 덜 후회스러운 삶을 살다 갈 수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고뇌에 찬 자신을 돌이켜 볼 때도 있다.

필자도 이 같은 마음에서 내 자신에게 수도 없이 많은 질문을 던져보지만 명쾌한 답은 찾을 수가 없었다.

이 부분에서 필자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이 시한부 인생이라는 것을 잊고 사는 것 같다. 늘 영원한 삶, 불멸의 삶인 것처럼 끝없는 욕망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사실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어느 때가 되면 자신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사랑하는 사람과 모든 명예와 재물을 남겨놓고 빈손, 알몸이 되어 이 세상을 하직할 날이 온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의 삶은 조금씩 죽음의 길로 다가가고 있다는 것이다.

누구든 자신이 중병이 들거나 뜻하지 않은 권고사직 등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했을 때 대개의 경우 자신에게 다가온 불행과 고통에 대한 당혹감과 함께 원망을 하는 것은 물론이려니와 덧없이 지내온 삶의 허망함을 느끼게 된다.

때로는 삶에 대한 애착을 버리고 귀중한 목숨을 값없이 버리는 경우도 있다.

만약이지만 자신이 오늘, 내일 교수대 위에 설 사형수의 운명이라면 어떤 심경이 될까?

이 경우 아마도 '열'에 '열' 모두가 지난날들의 삶에 대한 후회와 함께 자기에게 새로운 삶이 주어진다면 정말 1초를 1년 같이 소중하게 살고 싶다고 말할 것이 분명하다.

또한 삶의 소중함을 절실하게 느끼며 모든 것을 포기하면서까지 삶에 대해 강한 애착을 보일 것이다.

그 만큼 살고자 몸부림치는 생명 앞에서는 돈이나 권력, 명예 따위는 초라하고 아무 가치도 없는 무력할 뿐이다.

거부할 수 없는 시한부 인생, 인생의 끝이 있기에 우리는 슬픔이란 것을 알게 되었고 사랑하는 부모, 형제, 벗들을 잃는 이별의 아픔으로 슬픔의 눈물을 흘리게 되는 것이다.

혹자는 이를 두고 "슬픔은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고 싶지 않은 사랑의 또 다른 표현"이라고도 말한다.

셰익스피어는 "자갈 덮인 해안을 향해 파도가 이른 것처럼 시간은 끝을 향해 빠르게 흘러간다"고 시한부 인생을 한탄했다. 이처럼 삶이 있는 곳엔 반드시 죽음이 있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공기(산소)'의 소중함을 깨닫지 못하고 살아가듯 생명의 고마움, 소중함, 위대함, 감격스러움을 당연한 듯 너무나 쉽게 잊고 마치 영생불멸한 것처럼 살고 있다.

살고 죽는 것은 하늘의 뜻이지만 생명이 있는 것은 어느 시간에 이르면 종착지인 죽음을 맞이하며 흙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운명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살아 있는 생명을 풍성하고 온전하게 하는 것은 나 자신이 할 일이다.

한 생(生)을 살면서 권세, 명예, 재물에 대한 욕망에 치우치다보니 잘 먹고 소화시킬 수 있는 위장을 갖고 있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이고, 배설 잘하고 잠을 잘 잘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황홀한 축복인지, 이 세상 어디든 자신이 원하는 대로 걸을 수 있는 두발이 있다는 것과 세상을 바라보며 대자연의 장엄함을 볼 수 있는 눈, 그리고 산새소리, 물소리, 바람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가 붙어 있는 축복을 모르고 산

그런 축복을 받았음에도 불구, 스스로가 축복 받지 못한 것처럼 슬픔에 빠져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아무리 인생의 여정이 시한부이지만 살아 있음은 그 자체만으로도 기쁨이요, 감격이요, 축복이다.

이미 생명의 의지를 잃어버리고 희미한 동공(눈)에 바짝 마른 몸으로 미음마저 넘기지 못한 채 죽음을 기다리는 환자, 또 사형 집행 직전의 사형수의 심정을 생각해보자.

사경을 헤매고, 마지막 순간 지난날들의 삶에 대한 후회, 억만금이 있어도, 누구도 대산 할 수 없는 생명, 모두가 돌이킬 수 없는 일이다.

건강할 때 우리는 살아 있다는 이 경탄할 만한 축복속에서 생명의 소중함을 잊지 말고 더 많이 느끼고, 보듬고, 서로를 사랑하고 또 베풂의 삶을 살자.

삶을 기쁘게 하고 생명을 뛰놀게 하며 살아 있음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

이제 붉게 물든 단풍잎과 떨어져 밟히는 낙엽을 바라보며 우리는 제한된 삶의 가치를 재인식하는 시간을 가져보자. 그리고 한반도 경험해 보지 못하는 약속된 죽음을 편하게 맞이하는 훈련을 해보자.

시한부 인생인 우리의 삶, 그래서 살아 있음 그 자체가 바로 축복이요, 하루하루의 삼 또한 축제라는 것을 알고 기쁨의 삶을 나누는 우리가 되자.

[시인.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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