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래역에서 지하철을 기다리던 중 우연히 눈에 띄는 홍보용 문구가 있어 자세히 본 적이 있다.

내용은 한 젊은이가 생면부지의 기업인에게 사업자금을 빌려 달라고 간청했는데 이 때 주위에서 그 젊은이에게 돈을 빌려줘서는 안된다고 만류했지만 그 기업인은 젊은이의 말을 믿고 사업자금을 빌려주었다.

얼마 후 경제불황으로 그 기업인은 도산 직전에 놓이게 되었고, 반면에 그 젊은이는 성공한 사업가가 되었는데 이 때 그 젊은 사업가가 당시의 은혜를 잊지 않고 어려움을 겪고 있던 그 기업인에게 자금을 주면서 은혜를 갚았다는 이야기였다.

특히 마지막 부분의 "내가 타인에게 베푼 작은 믿음은 돈으로 나눌 수 없는 재산"이란 글이 매우 인상적으로 마음에 와 닿는다.

이 글을 보면서 문득 필자와 가까운 한 지우(知友)가 생각났다.

시(詩)를 쓰는 시인이기도 한 그 지우가 지난 80년 초 결혼을 하면서 신혼여행을 갈 때다.

그 당시는 대개의 경우 신혼여행을 강원도나 온양 온천으로 갈 정도인데 신랑보다 월등히 부유한 처가에서 신혼여행지를 제주도로 정하고 또 그렇게 되기를 원하다보니 자존심상 선뜻 승낙을 했다는 것인데, 문제는 그만한 돈이 없다는 것이다.

변변치 않은 직장에서 10만원도 안되는 월급을 받으며 공부(대학)를 하던 그에게는 엄청난 비용이었다.

며칠 몇 밤을 고민하던 그가 시청 옆에 있는 여행사를 찾아가서 상담을 한 후 초면인 직원(이사급)에게 나중에 갚을테니 제주도로 신혼여행을 갈 수 있게 해달라고 간청을 했다. 그렇지 않으면 장가도 갈 수 없다고 호소했다.

함께 고민하던 그 직원이 한 시간 정도가 지난 후 "행복하게 사셔야 합니다" 하면서 항공권과 숙박권을 발급해줬다.

그 뿐이 아니라 신혼지에서 단체로 관광버스를 이용했는데 그것도 이용할 수 있게 예약을 해주고 거기다 관광하면서 쓰라고 제주도 현지 직원을 통해 축의금 봉투까지 전달한 것이다.

당시 기억으로는 2박3일 경비가 1인당 2만7000원 정도로 알고 있는데 2만원을 또 준 것이다.

그 후 그런 인연으로 형님 아우가 되어 자주 만나 식사를 할 정도의 관계가 되었고 그 친우는 몇달 동안 생활비를 줄여가면서 그 돈을 모두 갚았다고 한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90년 초 그 친우가 신촌에 있는 Y대학교 대학원을 다니면서 상무가 된 여행사 직원에게 은혜를 갚을 일이 생겼다.

당시 대학원생들이 1년에 두 번, 지역에서 세미나를 개최하면서 그 행사일정을 여행사에 맡기는데 원우회 총무가 된 그 친우가 은혜를 입은 여행사를 추천한 것이다.

결국 원우회에서 그 여행사를 선정, 2년에 걸쳐 학교행사를 맡으면서 수천만원의 수입을 올렸다.

그 친우는 그 때 당시를 회상하면서 "내가 그 형님에게 늘 빚진 자가 된 마음이었는데 생각지도 않게 은혜를 갚을 기회가 생겼다"고 밝은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상무 역시 "내가 이런 보상을 생각하고 한 일은 아니지만 남에게 베풀면 언젠가는 좋은 결과가 온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단다.

그런 관계가 되다보니 그 상무가 과로로 쓰러져 이 세상을 떠났을 때도 상가에 문상을 가기도 했고, 그 부인이 보험회사에 보험인이 된 것을 알고 작은 것이지만 보험도 들어주었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그 친우는 항상 앞에서 언급한 글처럼 "내가 남으로부터 받은 은혜는 돈으로 갚을 수 없는 영원한 빚이다"라고 말한다.

필자 역시 이 세상을 살아오면서 배신의 아픔도, 상처도 많이 받았지만 타인으로부터 받은 은혜도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성경에는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것도 빚을 져서는 안된다고 했지만 내 경우는 많은 이들에게 사랑의 빚 이외도 은혜의 빚을 지고 살아간다.

인간이란 누구든지 가치있게 살기를 원한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어렵고 힘들게 살아가는 이웃들과 함께 나누며 베푸는 삶은 가장 보람된 일이라 할 수 있다.

이 같은 나눔은 단순히 불쌍한 사람을 도와주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다. 이는 스스로 인생의 의미를 보람있게 할 뿐만 아니라 개인의 성숙과 이 사회의 성숙이며 건강한 국가발전의 기초다.

성숙한 사회, 밝고 맑은 사회는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 인간의 길이기도 하다. 돈을 벌기도 힘들지만 값어치 있게 돈을 잘 쓰는 것은 더 힘든 법이다.

이웃을 생각하고 베푼다는 것, 그 만큼 사회가 온정이 넘쳐나는 사회가 될 수도 있다. 베풀 수 있는 자체가 바로 축복이다. 칭찬은 하나님께 받으면 된다.

아울러 베풂을 받은 사람은 그 은혜를 알고 은혜를 갚을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시인.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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