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 휴가

"열심히 일한 당신은 떠나라"

올해도 예외없이 미디어들이 연례행사처럼 CF 이미지를 쏟아낸다.

전국이 수해로 인해 많은 인명과 재산을 잃고 실의에 빠진 것이 엊그제 같은데 메뚜기도 한 철이라고 휴가철을 맞이하면서 강릉 경포대, 부산 해운대 해수욕장 등 피서지 주변도로가 몰려드는 피서객과 차량으로 넘쳐나는 것을 뉴스를 통해서 보았다.

찌는 폭염속에서도 도로가 막혀 몇 시간을 길에 서 있어도 모두가 즐거운 표정들이다.

휴가철을 맞이하면서 도시의 거리는 한산한 반면에 동해안이나 남해안, 유명계곡을 찾아가는 도로는 초만원이고 차량들이 줄을 잇고 있다.

말이 휴식을 위한 휴가(休暇)지 고생을 자처하는 고행길이라 할 수 있다.

휴가의 뜻은 직장, 학교, 군대 등 단체에서 일정한 기간을 정해 쉬는 것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휴가 때가 되면 일상(日常)의 속박에서 벗어나 대자연을 통해 자유를 만끽하고자 휴식을 찾아 떠나지만 여정(旅程)에 몸과 마음이 오히려 더 지치고 귀가 후에는 후유증까지 생길 정도가 되다보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 같은 휴가는 대자연을 통해 자연과 사람,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를 좋게 유지하기보다는 자연환경과 인간관계를 파괴하는데 더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더구나 핵가족 사회가 되면서 두드러지게 나타난 현상은 개인 이기주의적인 경향으로 흐르면서 남을 생각하지도 않고 오직 자기 가족이외는 친교의 필요성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 사고(思考)가 짙다보니 해수욕장에 쓰레기를 버려도, 또 옆에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어 놓고도 미안함도 모르는 뻔뻔한 모습이 되었다.

사실 휴가는 그저 쉬며 버려지는 시간이 아니다. 자신을 돌이켜보며 앞으로 살아갈 삶의 에너지를 재충전하며 기획을 하는 시간이자 기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휴가철이 되면 일하던 사람, 놀던 사람까지 덩달아 들뜬 기분이 되어 산과 바다를 찾는 경향이 있다.

그러다 보니 자연적으로 산과 바다는 온통 인파의 물결로 훼손되는 등 만신창이가 되어버린다. 또 사람들에게는 휴식을 하기 위한 시간이 아니라 전쟁을 하는 시간이 된다.

며칠 전 동문수학한 지우(知友)가 저녁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이례적으로 "휴가는 다녀오셨냐?"고 묻기에 일을 하다보니 못갔다고 했다. 그 동문은 무슨 일을 하는데 휴가도 못갔냐고 재차 묻는다.

대답하기도 그렇고 귀찮기도 해서 그냥 그런 일이라고 했더니 자꾸 묻는다. 별 수없이 야간에 '화장실 청소'와 '주차' 일을 한다고 했더니 어떻게 그런 더러운 일을 하실 수 있느냐고 놀랜다.

더구나 한달에 2~30만원을 벌기 위해 밤새워가며 궂은 일을 할 수 있겠느냐면서 당장 때려 치우라고까지 말한다.

물론 그 동문이 필자를 위해 그렇게 말을 해주는 건 고맙지만 생활을 위해서는 그런 일이라도 하지 않을 수가 없다는게 솔직한 심정이다.

그러나 아르바이트 형식으로 하는 단순노동의 이 일은 결코 '더러운 일'이 아니다. 오히려 생활인으로서 일하는 즐거움을 만끽하는 '보람된 일'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더러워진 곳'을 깨끗하게 치우는 일을 한다는 자부심과 함께 떳떳한 마음이다.

이런 일을 한다고 부끄러워 한 적도 없다. 굳이 숨길 필요도 없다. 모든 것은 생각하기 나름이겠지만 내 경우 어떻게 이 나이에 이런 일까지 하게 되었나보다는 육순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내가 땀을 흘리며 떳떳하게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감사하는 타입이다.

그런 까닭에 난 화장실 청소를 하면서도 즐겁다. 그래서 콧노래를 부르며 일한다. 때로는 찬송가를, 때로는 유행가를 부르며 일을 하다보면 하루일과가 끝난다.

오전 일을 끝낸 후 흐르는 땀을 씻고 에어컨 앞에서 시원한 수박 한 조각을 먹으며 쉬는 그 몇 시간의 휴식시간.

그 시간이야말로 내게는 금쪽 같은 휴식시간이며 휴가기간이라 할 수 있다. 그 금쪽 같은 휴식시간에 난 책을 볼 수도 있고 명상에 잠기기도 하고 또 글을 쓸 수 있는 여유가 생겨서 좋다.

올 휴가는 아무래도 서운해하는 막내딸을 위해서도 막내딸이 개학하기 전 가까운 근교, 인적이 드문, 조용한 계곡을 찾아 떠나볼 생각이다.

단 하루라도 문명의 세상과는 동떨어진 시간을 갖고 산새, 바람소리에 묻혀 밤하늘의 별처럼 평화로운 마음으로 가족과 함께 심신(心身)을 쉬게 하는 유익한 휴가를 보내고 싶다.

며칠만 지나면 긴 방학도 끝난다. 아무래도 개강준비를 하려면 또 바빠질 것 같다. 휴가철 휴가도 좋지만 한 푼이라도 더 벌 수 있는 일거리가 많은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남남으로 태어나/ 너와 내가 좋아서 만났는데/ 호강하자 살았더냐/ 마음 하나 믿었는데/ 가난해도 웃고 살자…"

가수의 이름은 모르지만 가족을 생각하며 조용히 마음속으로 불러본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 떠날 시간 없다."

[시인.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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