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are not forgotten"

남북 장관급 회담에서 북한측이 "북의선군(先軍)이 남측의 안전을 도모해 주어 남측 대중이 덕을 보고 있다"며 8.15 통일 축전때 남측 대표단의 방문을 제의했다.

아울러 동포애와 인도애적인 차원에서 쌀 50t과 비누, 신발 등 경공업 원료를 달라고 뻔뻔스럽게 요구하며 6.15 공동선언 이행으로 정세 위협에 맞서자는 어처구니 없는 말을 했다.

또 이산가족 상봉을 조건화하면서 국가보안법 철폐, 군사훈련 폐지를 요구했다. 그럼에도 불구, 우리측은 따끔한 지적도 못하고 우회적인 입장 표명에만 그쳤다. 참으로 안타깝다.

망각의 동물이기도 한 우리 인간이긴 하지만 반세기 넘게 세월이 흘러간 탓일까. 우리는 민족분단의 계기가 된 6.25를 너무도 쉽게 잊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북한의 선전장이 된 이번 남북 장관급 회담에서의 억지와 잦은 만행을 계기로 점점 빛바래 가는 우리의 6월을 다시 한번 상기하며 경각심을 갖고 안보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할 때라는 생각이 든다.

오늘 우리가 이처럼 자유를 만끽하며 시위도 하고 편하게 살 수 있는 것이 과연 누구 때문이었는가를 생각해보면 쉽게 답이 나올 법하다.

바로 이 부분에서 그 해답을 우리는 찾아야 한다. 역사적인 관점에서 볼 때 우리의 현존은 국가 안위와 존속을 위해 꽃다운 젊은이들이 6.25때 순교의 피를 흘린 대사로 지불된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순교에는 언제나 일류와 민족 구원, 그리고 자유와 평화, 공존이라는 숭고한 목표가 담겨 있다. 따라서 조국을 지키기 위해 산화(散花)한 6.25 전란의 혈혼을 지워버려서는 안된다.

6.25는 북한군이 1950년 6월25일 모두가 잠든 주일 새벽을 기해 남침을 개시하면서 1953년 7월27일까지 무려 3년 1개월 동안 계속되었던 동족상잔의 민족 최대 비극이라 할 수 있다.

그 당시 우리의 이 땅을 지키기 위해 미국을 비롯한 16개 나라가 UN군으로 참전, 6만여명이 이국땅에서 고귀한 생명을 잃어버렸다.

실로 한반도가 완전히 초토화되고 대구까지 밀려갔음에도 불구, 이 같이 우리의 존재가 있고 자유를 느낄 수 있는 것은 결국 대가도 없이 목숨을 던진 우리 국군과 우방국이 있었기 때문임을 부인할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6.25 사변의 비극을 한시라도 잊어서는 안된다. 저들을 용서는 하되 그들의 만행을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기성세대는 물론 전후세대, 특히 전쟁을 모르는 20대들은 더욱 그렇다. 그래야 순교자로서 피를 흘린 호국영령들에게 대한 예우이며 우리 민족의 자존을 지키는 것이다.

아울러 지금이 이 땅에서 우리의 자유와 평화를 공존을 파괴하는 어떤 사상이나 이념 논쟁도 발붙이지 못하게 국민의 단합된 모습을 보여줘야 할 시점인 것 같다.

한명숙 국무총리가 최근에 서해교전에서 순직한 장병들의 유가족을 총리공관으로 초청했지만 우연하게도 유가족이 한 명도 참석치 않았다고 한다.

물론 가족들끼리 총리공관 오찬 자리에 가지 말자고 미리 약속한 것은 아니지만 이심전심으로 그간 맺힌 한(恨)이 쉽게 풀어지지는 않았는가 보다.

그도 그럴것이 지난 2002년 6월29일 북한의 공격으로 우리 해군 6명이 전사했지만 한일 월드컵에 묻혀 영결식이 국민들에게 외면 받았을 뿐만 아니라 그 이후 4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대통령과 총리는 단 한번도 추도식에 그 모습을 보인적이 없었다.

골프장이나 광주 5.18 묘소에는 발길을 끊지 않던 정치인이나 국회의원들의 모습도, 각료나 장성들의 모습도 찾아 볼 수가 없었다.

물론 병역의 의무가 있어 군(軍)에 입대할 수밖에 없는 그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 하나의 생명을 기꺼이 던지는 것은 의무관계를 뛰어넘는 자존과 함께 조국에 대한 충성심 때문일 것이다.

아울러 조국이 자기의 희생이 헛되지 않고 기억되어질 것이라는 믿음도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따라서 국가는 이 같은 민음속의 희생을 헛되게 하거나 배반하는 행위를 해서는 안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국가나 우리는 그들의 순교적인 죽음을 잊고, 잃어버리고 있다.

국가나 우리가 그들의 희생을 잊지 않고 있다해도 호국영령의 아픔이 아우러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 땅에 남아 자유를 누리는 사람들이 고마움은 느껴야 할 것 같다.

전쟁의 여파로 20여만명에 달하는 미망인과 수백만의 이산가족을 만들어 반세기가 훨씬 지난 지금도 아픈 상처의 추억을 가슴에 묻은 채로 슬픈 나날을 보내고 있다.

또 수십만의 국군포로들이 지금 북한에서 고통속에서 남쪽에 있는 가족들을 그리워하며 짐승만도 못한 삶을 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정권 사람들은 북한의 만행과 조국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던진 희생자를 잊어버리고 있다. 잊다못해 남아 숨쉬는 그들의 유가족들까지 야멸차고 매정하게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

효순과 미순이의 죽음은 우월감을 갖고 있는 미군과 민간인의 관계에서 우리의 자존심이 달린 문제로 촛불시위를 했지만 북한군과 아군의 교전은 군인으로서 당연하기 때문에 민간인인 국민들이 나서야할 일이 아니라는 어떤 이의 논리에 말문이 막힐 정도다.

대통령과 총리가 추모식에 참석할 경우 남북관계에 도움이 안된다는 논리도 어처구니가 없다. 묻고 싶다. 과연 그 같은 죽음의 희생자가 자기자식이나 남편이 되어도 그런 마음이 될 수 있는가를….

차라리 한국, 중국의 비난을 받으면서도 신사참배를 떳떳하게 하는 '고이즈미' 총리가 존경스럽기까지 하고 그 같은 나라의 일본 국민이 더 부러울 정도다.

전사, 실종군인의 유해를 지구 끝까지라도 가서 찾아내 가족품에 안겨주는 일을 하는 미국 전쟁포로·실종자 담당 합동사령부(JPAC)의 구호인 'You Are Not Forgotten(우리는 그대를 잊지 않는다)'가 새롭게 느껴진다.

저런 조국이라면 하나뿐인 목숨일지라도 아끼지 않을 것이다. 그런 조국이 필요하다.

[시인.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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