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에게 있어 ‘섹스’의 의미가 단지 ‘자손번식’이라고 믿는 사람은 없다. 점차 섹스의 의미는 더 확대되어가고 있지만, 그 한계가 어디까지인지가 관건이다.

지난 2004년 중국에서는 자신의 적나라한 성경험을 일기로 써서 자신의 인터넷 블로그 사이트에 연재하는 25세의 여성이 화제가 된 바 있다. 무쯔메이(木子美)라는 이름의 이 여성은 ‘섹스를 인간적인 취미’로 표현했다.

결혼이나 사랑, 돈을 요구하지 않으면서 주체적으로 섹스를 즐기는 젊은 여성들이 존재한다는 것은 이미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실명을 밝히면서 자신의 구체적인 성경험을 인터넷 공간에 연재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국내에도 모 배우가 자신의 성편력을 정리한 책을 발간해 충격을 준 적이 있지만, 파트너의 ‘테크닉’까지 운운한 무쯔메이의 그것과는 비교가 안 될 수준이다.

중국에는 무쯔메이처럼 개인적인 성경험을 구체적으로 공개하는 이들을 ‘미녀 작가’라고 부른다. 미인이기 때문이 아니라 성에 관련된 작품을 쓰는 젊은 여성작가 군을 일컫는 말이다.

이들을 ‘창녀 작가’라 혹평하는 문학평론가들도 있지만, 반대로 남성 문학평론가가 비슷한 류의 소설을 출판해 ‘미남작가’로 나서기도 했다. 이처럼 무쯔메이 현상은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중국의 미녀작가처럼 자신의 개인적인 성경험을 공개함으로써 상업적인 효과를 거두려는 행위가 아니더라도, 국내에도 본인이나 성파트너의 누드 사진을 모 사이트에 올리는 식으로 스스로를 노출하는 모습이 이슈가 된 적이 있었다.

어느 쪽이 더 위험수위에 와 있는가를 굳이 비교할 필요는 없을 듯 하다. 단지,‘성’에 대해 쉬쉬하기만 했던 과거에 비해 개인적인 경험까지 공개할 만큼 성가치관이 바뀌었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다.

그러나 사회주의 국가에서 벗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중국의 현실을 보면, 국내의 변화가 주는 충격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사실 남성들 위주의 ‘성’이 남녀가 함께 하는 ‘성’으로 변해 가는 것은 긍정적인 현상이다.

이미 우리나라 여성 또한 교육수준 향상, 맞벌이 등 성역할이 폭넓어지면서 성적 가치관도 큰 폭으로 바뀌고 있는 추세이다.

남성들 못지 않게 여성들에게도 성적으로 자유로울 권리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남성들이 이미 시행착오를 겪어온 것을 여성이 동일하게 거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싶다. ‘성적 방종’이 ‘성적 자유’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무조건 다양한 성경험을 가져야 ‘성적 자유’를 쟁취하는 것은 아니다. ‘사랑’이 아니라 ‘놀이’로 섹스에 접근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사회 전반이 퇴폐로 물들기 십상이다. 진정한 성적 자유는 순결을 지키는 것이나 다양한 성경험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랑하는 한 사람과 적극적으로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자세라고 본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흔히 몸의 의사소통에 자유롭지 않다는 것이다.

현시점은 과거부터 누적되어 온 여성의 성적 불만이 올바른 방향으로 해소될 수 있도록 지침을 제시해 주어야 하는 시기로 보인다. 서로의 자존심을 다칠까봐 건드리지 않았던 많은 성적 문제들을 음지에서 양지로 이끌어 내야 하는 것이다.

물론 요즘 여성들은 과거보다 적극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도 성생활에 대한 본격적인 메스를 들이대지는 않은 상황이다. 제스추어는 취하면서도, 그 속에 숨어있는 의미를 밝히기를 꺼려하는 것이 여성의 문제점이다.

언젠가 필자의 비뇨기과를 찾은 30대 후반의 한 남성 환자는 자신이 아내를 만족시키지 못한다는 것에 대해 큰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첫 아이를 임신한 후부터 아내는 부부관계를 거부했고, 그 후 4∼5년간 부부관계를 한 횟수는 손에 꼽을 정도라는 것이었다.

아내가 노골적으로 부부관계를 거부하는 이유를 밝히지는 않았지만, 성적 불만이 있음을 자주 암시했던 것이다. 사실 남편은 남근의 크기 때문에 고민을 했던 터에 한 달간 각방을 쓰자고 제의한 후 확대 수술을 받았다.

말랑말랑한 보형물을 삽입해 크기를 몰라보게 키웠고, 수술자국이 아물 때까지도 아내에게 수술 사실을 비밀로 했다. 물론 상처가 아문 후 부부의 관계는 급속도로 회복되었다.

결국, 수술 후 환자의 만족도는 매우 높았지만, 과정에는 분명히 문제가 있다는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서로 첫경험이 아니었던 이 부부는 이미 서로의 불만을 짐작하고 있었지만, 이에 대한 대화는 전혀 없었던 것이다.

특히 아내는 자신의 불만을 단지 ‘잠자리 파업’으로 표현했었기에 자칫 부부관계가 깨질 위험까지 있었다. 물론 남편의 자존심이 상할 수도 있는 문제지만, 해결방법을 함께 찾아보려는 노력이 부족했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위의 문제는 단편적인 사례일 수도 있지만 현실적으로 여성들이 솔직해져야 할 부분에서는 아직 소극적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자유로운 성이란 방종이나 문란과는 의미가 다르다. 주체적으로 성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가 필요하다.

성경험을 다양하게 즐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들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파트너와 함께 방법을 모색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남성들 또한 성문제를 적극적으로 제기하는 여성을 ‘밝히는’ 여성이라는 식으로 매도하는 것이 아니라 의견을 존중해주며 올바른 방향으로 개선할 수 있어야 한다.

[선릉탑비뇨기과 하태준 원장·비뇨기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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