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누가 나와 함께 동행을 할까요? 사랑하고 싶어요. 살아 있는 그날까지…" 유행가 가사 중 한 구절이다. 그렇다. 가사처럼 그 어느 누구라도 영원한 동행자는 아무도 없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외로움을 느끼는가 보다. 특히 그 같은 외로움은 혼자 있을 때보다 오히려 많은 사람들과 어우러져 있을 때 더욱 많이 느끼는 것 같다.

분명 함께 하면서도 마치 물과 기름 같은 느낌이 든다. 바닷물을 바라보면서 갈증을 느끼듯 그런 고독감을 느끼게 된다.

짧지도 않은 반평생, 이제는 지하철에서 자리를 양보 받을 정도의 반백이 다 된 나를 되돌아보면 볼수록 더욱 더 깊은 외로움에 빠질 수밖에 없다.

남들을 보면 많은 것을 이루고 업적을 쌓은 것 같은데 난 여전히 빈자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기에 더욱 더 외로움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더구나 S대학에서 동문수학한 사회지도급 동기들과의 만남에서 가끔 골프 회동이나 하자는 말이 나올 때면 왠지 모르게 이질감을 느끼며 같은 부류가 될 수 없다는 현실에 공허감을 느끼는 속물이 되면서 이방인 같은 기분이 든다.

정치를 알지도 못하면서 흥분하기도 하고, 분개하기도 하고, 때론 무슨 인도주의자나 된 것처럼 약자와 빈자들의 아픔에 가슴 아파하며 울분을 터뜨리는 자신의 나약함에 외로움을 느낄 때도 많았다.

환갑을 목전에 두고 말로는 사회차원에서 헌신 봉사하는 마음으로 목회의 길을 걷겠다고 했지만 실상 이렇다할 벌이가 없다보니 할 수밖에 없다는 자책감으로 마음 한구석에 외로움이 파도처럼 밀려올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다행히 주위에 나를 생각해주며 문자까지 보내주는 많은 이들이 곁에 있고 항상 그들과 함께 웃고 떠들어 보긴 하지만 언제나 마음 한구석엔 외로움이 암처럼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본디 알몸으로 이 세상에 태어나 살면서 잊은 것은 있어도 잃은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도 왠지 모르게 늘 허전함을 느껴야만 했다.

나도향이 쓴 수필 '그믐달'의 한 대목이 떠오른다. 그의 글에서는 "보름에 뜨는 둥근 달은 모든 영화와 끝없는 숭배를 받는 여왕과도 같아서 보는 이도 많을뿐더러 소원을 빌기도 한다. 그러나 그믐달은 어두워서 보는 이가 별로 없어 쓸쓸하고 외롭기는 하지만 상처를 입고 방황하는 이들에게는 오히려 위안을 주는 달"이라고 했다.

많은 사람들은 그래서 늘 보름달 같은 삶을 살고자 한다. 그 같은 사람들은 어쩜 자기도취에 빠진 자가 아니면 자기 성취감에 빠져서 자기 만족을 누리며 즐거워하는 자기만을 위한 삶을 사는 사람일 수도 있다.

그러나 필자는 비록 부족하기는 하지만 보름달보다는 내 작은 삶 속에 남을 섬기고 남에게 위로를 줄 수 있는, 서민의 애환이 함께 하는 그믐달 같은 삶을 살고 싶다.

로뎀나무 밑에서 외로움에 시달리며 영적 침체에 빠져 있던 성서에 나오는 엘리야처럼 외로움 속에서 하나님을 향해 눈물을 흘리며 남에게 베풀 것을 채우기 위해 준비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은 거다.

언젠가는 그런 그믐달을 볼 수 없는 날이 내게 찾아올 것이다. 또한 외로움에 시달리며 눈물을 흘리지 않아도 되는 날이 기다리지 않아도 반드시 올 것이다.

언젠가는 우리 모두는 너나 할 것 없이 제 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떠나야 하는 날이 온다. 결국은 고독감과 두려움으로 동행자 없이 홀로 떠나야 하는 처절함이 내게 남아 있을 뿐이다.

그런 마음에서일까. 요즘들어 내 사진이나 가족의 사진을 책장이나 거실에 놓는 버릇이 생겼다.

떠날 때를 대비, 내 안에 사랑하는 가족들의 모습을 담아두고 싶었고, 특히 육신은 떠나고 없어져도 남은 가족들에게 생전의 모습이 기억되어지기를 바라는 부질없는 마음에서 사진을 진열해 놓는 것이다. 흙으로 돌아가면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는데도 말이다.

그런 기분을 알 까닭이 없는 아내가 지저분하게 사진을 늘어놓는다고 성화다. 별수 없이 사진들을 모두 정리하며 또 한차례 나만의 외로움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나 하나를 바라보며 사진을 정리하자니 가슴이 촉촉해진다. 어쩜 그 같은 외로움을 빈 가슴에 채우려고 난 오늘도 긴 밤을 지새며 원고지의 빈칸을 메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세상의 모든 생물(生物)은 영원불멸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따라서 어느 때인가는 제자리를 버리고 떠나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완전한 보름달 같은 삶이 아니라 오히려 빈자들의 아픔을 함께 하고 위로를 해줄 수 있는 그믐달 같은 삶인지 모른다. 그믐달을 적실만큼 울고 싶은데 울 수가 없다.

환한 보름달을 바라보며 내 자신이 잘 되기를 바라는 기도를 하기보다는 평생을 외로움과 고뇌에 찬 날들로 꽉 차 있어도 내 이웃을 생각하고 아픔을 함께 나누며 베풂이 있는 그믐달을 더 그리워하는 인정(人情)의 우리가 되었으면 한다.

[시인·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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