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로 신화 속 근친상간은 기존의 질서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질서를 세우는 데 꼭 필요한 힘을 지닌 존재를 탄생시키는 작용을 한다.

그러나 이렇게 탄생한 존재는 보통 그 사명을 다한 후에 새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제거되기 마련이다.

이른바 신화 속 근친상간은 유의미한 창조력과 위험한 파괴력의 양면성을 동시에 지닌다. 그리고 결국 그런 위력적인 힘은 사라지게 되는 것이 질서이다."

태곳적 생명의 기원뿐만 아니라 인류의 오랜 꿈과 사유, 인간의 다양한 감정과 행동양식 등을 문학의 형태로 고스란히 담아낸 신성한 이야기가 그림집으로 나왔다.

신화 시대로부터 아득하게 멀어진 21세기에도 신화가 늘 새롭게 읽히고 생생하게 다가오는 것은 필멸의 존재인 인간에 관한 모든 이야기가 신화의 세계에 여전히 펄펄 살아 숨쉬기 때문.

그렇게 오래도록 인류를 유혹해 온 위대한 상상력의 시공간인 신화는 오늘날에도 그 엄청난 영향력을 과시하며 미술, 음악, 문학, 철학, 연극, 건축 등의 놀라운 예술적 영감의 원천으로 무수히 부활하고 있다.

그것은 의학과 관련해서도 예외가 아니다.

'그림으로 보는 신화와 의학'은 그리스 로마 신화의 고혹적인 풍경 속에서 찾아낸 흥미로운 의학의 세계를 펼쳐놓았다.

생동감 넘치는 거장들의 명화 130여점을 통해 그리스 로마 신화의 극적인 장면들을 화폭에 재현해 놓은 것이다.

이 책은 독자들에게 같은 주제를 달리 표현한 거장들의 다양한 그림을 여러 각도에서 비교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주고 있다.

명화로 들여다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 속 의학 풍경

도대체 언뜻 허황하고 터무니없어 보이는 그리스 로마 신화 어디에 명징한 현대 의학이 숨어 있을까.

'그림으로 보는 신화와 의학'에는 그리스 로마 신화와 현대 의학의 밀접한 관계를 좀 더 명확히 보여주는 의학 및 의료 행위의 유래 등 의학을 구성하고 있는 가장 기본적인 질병의 병명과 학명, 증상 등이 기록돼 있다.

의학의 원뜻은 신과 사람 사이에서 중개 역할을 하는 매개체로 사람을 병에 걸리게 하는 병마를 주술로 쫓는 중간 역할을 의미한다.

이 의학을 나타내는 메디신(Medicine)의 기원은 약초와 독초를 이용한 마술에 능했던 메데이아에서 유래한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이아손을 사랑한 메데이아는 자신의 주술 능력을 이용해서 부왕의 황금 양피를 빼앗으러 온 그에게 요긴하게 쓰일 약을 만들어주었다.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의 '이아손과 메데이아'와 앤서니 프레더릭 샌디스의 '메데이아'에는 주술사로서 약을 제조하는 메데이아의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사람의 피부가 노래지는 황피증을 산토데르마(Xanthoderma)라고 하는데, 이 병명은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유명한 파리스의 심판대에 오르면서 자신의 아름다움을 더욱 돋보이게 하기 위해 몸을 담근 산토스 강에서 연유한다.

노란 물빛의 산토스 강에서 목욕을 하면 눈부신 황금빛 머리칼과 반짝이는 피부를 가지게 된다는 사실을 아프로디테가 알고 있었던 것이다.

페테르 파울 루벤스가 두 번에 걸쳐 그린 '파리스의 심판'에서 유독 아름다운 아프로디테를 만날 수 있다.

아틀라스는 티탄들의 반란에 가담한 죄로 무거운 하늘을 영원히 떠받들게 된 거신(巨神)으로 유명하다. 그런 아틀라스가 우리 몸에도 있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신체 중에서 가장 무거운 머리를 평생 받치는 환추를 가리키는 말인데, 신화 속 아틀라스의 운명과 너무나 닮았다.

이밖에도 '그림으로 보는 신화와 의학'에는 간경변으로 생기는 메두사의 머리카락, 성적 상징물인 물을 사랑하는 님프에서 유래한 여성 색정증과 호색한 사티로스에서 유래하는 남성 색정증, 불사신 아킬레우스를 죽음에 이르게 한 아킬레스건 등 그리스 로마 신화의 곳곳에 숨어 있는 의학을 발견하는 기쁨이 가득하다.

예담출판사 284쪽 1만6500원.
[저자(문국진) 소개]

법의학계의 원로로 존경받고 있는 문국진은 1925년 생으로 서울대학교 의과대학과 동 대학원을 졸업했으며(의학박사) 미국 컬럼비아 퍼시픽 대학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법의학과 과장 및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법의학 교수, 뉴욕대학교 의과대학 객원 교수 등을 역임했다. 현재 대한민국 학술원 자연과학분과회 회장, 국제법의학 한국 대표, 미국 및 영국 법의학회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활발한 저술 활동을 하고 있다.

법의학자의 관점으로 예술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시각을 담은『명화와 의학의 만남』, 『법의학자의 눈으로 본 그림 속 나체』, 『명화로 보는 인간의 고통』, 『명화로 보는 사건』, 법의학적 관점에서 예술가들의 병과 사인(死因)을 살펴본 『반 고흐, 죽음의 비밀』, 『바흐의 두개골을 열다』, 『모차르트의 귀』등의 책을 펴냈다.

『최신 법의학』, 『법의 검시학』, 『의료 법학』 등의 의학 서적을 비롯하여 『한국의 시체 일본의 사체』(우에노 마사히코와의 공저)와 시집 『이 사람아!』 등 30여 권의 저서가 있다. 세계평화교수 아카데미상, 동아 의료문화상, 대한민국 학술원상, 함춘대상 등을 수상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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