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에 다닐 때 미술 선생님이 스케치북에 그린 그림을 보고 ‘참 잘 그렸네’ 하면서 많은 학생들 앞에서 칭찬을 해주시면 공연히 어깨가 우쭐해지고 그날은 하루 종일 기분이 좋아 입으로 연신 노래를 부르며 즐거워 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칭찬을 받는 미술 시간이 기다려지

사실 누구나 칭찬을 받고 격려를 받게 되면 자연히 기분이 좋아지는 건 당연한 이치다. 아마 사람에게 칭찬을 받는 데 싫어할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을 것 같다.

지난해 서울 근교에 있는 모 대학을 출강할 때 일이다. 학기 초부터 결석이 잦은 한 남학생이 있었다. 몇 주가 지나 어렵사리 출석한 그 남학생을 강의가 끝난 후 만났다.

잠시 뜸을 들이던 그 학생은 “자신이 예비합격자이기 때문에 제일 꼴지로 입학했을 것이 분명하다”며 막내격인 자기를 동기들이 따돌리는 것 같아 학교에 오기조차 싫었다고 했다.

제주도가 집이라고 하는 그 학생은 말문이 터지자 아버지에 대한 불만을 털어 놓았다. 늘 술에 취해 엄마에게 손찌검 하는 아버지가 무척이나 미웠고 한번도 칭찬을 해줄 줄 모르는 아버지가 야속하기만 했다는 것이다.

물론 그런 부친이었기에 변변한 대화조차 없이 성장했고 그런 영향으로 가족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 없었다고 했다. 그의 말 속에서 가족과 단절의 골이 무척 깊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인천에서 자취를 하며 아르바이트를 하다보니 끼니를 거를 때도 많았다고 한다. 그 남학생에게 말벗이 되어주고 친구가 되어 줄 테니 결석만은 하지 말아달라고 했다. 또 동기들이 너를 걱정하며 관심을 갖고 있다고 말해주었다.과대표를 불러 그 남학생에 대해 관심을 갖고 함께 어울려 줄 것을 주문했다.
결석만은 하지 말라고 간곡히 부탁한 내 말이 주효했는지 나와의 약속을 지키려는 듯 다음 주부터는 지각을 할망정 결석은 하지 않았다. 동기들도 관심을 갖고 그를 대하는 것 같았다.

그럴 때마다 난 미리 준비해둔 김밥과 우유를 건네주기도 했다. 또 강의 시간에도 질문을 던지거나 자기 의사를 발표하게 한 후 친구들에게 잘 했다고 생각하면 박수를 치도록 했다. 친구들로부터 박수를 받는 그 남학생은 머리를 극적이며 멋쩍어 했지만 얼굴은 홍조를 띤 아주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그래서인지 행여 지각이라도 할라치면 ‘지금 가고 있어요.’ 라는 문자를 보내기도 했고 그 때마다 난 ‘천천히, 그리고 차 조심’ 이라는 답신을 보냈다. 전과는 달리 복도에서 만나도 반색을 하며 인사를 하는 그 남학생은 모처럼 자신이 인정을 받고 친구들로부터 관심의 대상이 된 것에 대해 무척 고무되어 있었고 행복해 하는 모습이었다. 태어난 이후 처음 인정을 받고 칭찬을 들었다며 웃는 그의 모

이처럼 말 한마디와 따듯한 관심이 때로는 한 사람을 행복과 불행의 길로 갈라놓을 수가 있다. 특히 학교의 경우 교수가 학생들에게 지식을 전달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지만 그에 앞서 학생들에게 잃어버린 인성을 찾아주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하다는 생각이 든다.

강의를 하면서 더 더욱 피부 깊숙이 느낀 점은 학교에서 채워줄 수 없는 삶의 애환을 가끔은 솔직담백하게 들려주며 자아를 발견하게하고 이기적인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 이웃을 생각하고 따뜻한 정을 나누는 교육의 필요성이 절대적으로 시급하다는 것이다.

특히 남을 헐뜯고 비난하는 세상이 되어버린 현실이지만 아무리 퍼주어도 줄지 않는 환한 미소와 함께 몇 번을 들어도 싫지 않은 멋진 칭찬에 인색하지 않았으면 한다.

이 같은 바람은 교수와 학생간의 문제가 아니라 친구를 포함한 모든 이들에게까지 포함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학설에 의하면 사람들은 칭찬을 받을수록 자신감을 배우고 이 세상에서 혼자 힘으로도 뭐든지 잘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된다고 한다.

이 같이 좋은 칭찬. 이제부터라도 칭찬을 받고 칭찬을 해 줄줄 아는 너와 나 그리고 우리가 되어 상호 신뢰가 깊게 뿌리를 내릴 수 있는 밝은 사회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시인·수필가]
저작권자 © 메디팜스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