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스티펠 권선주 사장

▲권선주 한국스티펠 사장
“제약회사는 부동산투자회사가 아닙니다. 그럴 돈 있으면 R&D 투자해야죠.”

얼마전 서울 서초동 피부치료제 전문기업 ‘한국스티펠’을 찾았다. 서울교대 정문 맞은 편 교대복사집 골목으로 들어서니 바로 왼쪽에 아담한 건물 한 채가 운전석 너머로 들어온다.

완공 20년은 족히 됐을 법한 이 건물 6층에 피부치료제 전문기업 한국스티펠이 입주해 있다. 올해로 입주 15년째다.

스티펠의 홍보 에이전시인 KPR의 이수경씨를 따라 노크도 없이 사장실로 들어섰다.(사장실은 문이 열린 채로 사무실 한쪽 끝에 달려있다. 비서실 같은 건 없었다.)

“어서 오세요. 반갑습니다. 이거 내 꼴이 너무 초라한 거 아닌가?(웃음)”

권선주(60세) 사장이 기다렸다는 듯 명함 한 장을 건네며 반갑게 맞는다.

사실 난 오래전부터 이 회사를 방문해 보고 싶었다. 피부치료제만 고집하는 제약사는 어떤 모습일까.

복덕방 같은 사장실

웬걸,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상상은 180도 무너져 내렸다. 마치 달동네 복덕방을 연상케하는 5평 남짓한 비좁은 사장실과 그 옆에 딸린 허름한 회의실.

말이 회의실이지 소형 탁자 1개와 의자 5개, 가정용 진열장 3개, 대형 지도 2개, 화분 몇 개가 실내 장식의 전부였다.

고급스런 진열장에 자태를 뽐내고 있을 법했던 피부치료제나 보습제 같은 뇌리속의 풍경은 어디에도 없었다. 인터뷰 장소인 회의실로 들어서면서 잠시 잘못 찾았나 하는 착각이 들었다.

노트북을 부팅(booting)하는 동안 “(진열장을 바라보며) 상장을 많이 받으셨군요. 상 욕심이 너무 많은 것 아닙니까?”라고 하자, “저쪽에 가면 더 많다”며 그는 직원들 자랑부터 들려준다.

“나는 직원들이 입사할 때 꼭 손부터 잡아줍니다. 열정 때문이죠. 인생 선배로써 그들에게 어떤 태도와 비전을 가지고 일을 해야하는지. 무언의 약속을 하는 셈이죠. 국장님도 우리 직원들 만나보면 편안하고 온화하고 순화(醇化)됐다는 걸 느끼실 겁니다.”

그렇게 시작된 인터뷰는 다시 엘리베이터에 오르기까지 꼭 한 시간 동안 진행됐다.

“나는 사장이란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부팅이 끝나자 “사장님은 어떤 분이냐”고 다소 엉뚱한 질문을 던졌다.

“나는 사장이란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손을 가리키며) 내 방문은 하루 종일 열려 있고 직원들은 아무 때나 들락거린다. 비서도 없다. 커피는 내가 직접 타서 마신다. 직원들과 자연스럽게 이야기도 하고. 이게 우리 스티펠 문화다. 이따 나가실 때 우리 직원들 꼭 한번 만나보고 가세요.”

자기 소개를 부탁했는데 여전히 그는 직원들 자랑이다.“약력을 보니 서울대 약대에서 학-석사 과정을 밟고 전문대 전임강사, 미국 NIH(국립보건원) 산하 암센터에서도 근무를 하셨던데, 한국스티펠과는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됐느냐”고 물었다.

“어느날 스티펠에서 한국의 브랜치 매니저(branch manager)를 뽑는다는 공고가 나왔더라고. 내가 어플라이(apply)를 했지. 먹는 약은 전신에 작용하는 시스테믹(Systemic)이지만, 피부약은 그렇지가 않아요. 피부병은 거의다가 만성질환인데, 주사약이나 먹는 약을 쓴다고 해봐요. 전신에 작용하니까 효과는 빠르지만, 몸이 약한 어린아이나 노인들은 싫어하지요. 불필요한 부분까지 약물에 노출시킬 필요가 없으니까.

나도 가정 주붑니다. 내 가족, 내가 쓰는 약이라고 생각하면 안전한 제품이 최고라고 생각했죠. 피부를 통해 바르는 치료제가 좋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도전을 했어요.

여기 지사장이면 두발 뻗고 사업을 할 수 있겠다 싶었죠. 집에서 아이 키우면서 틈틈이 준비도 했지만, 어쨌든 한번 해보겠다고 싶어 적극적으로 어플라이를 했는데 합격을 했어요.” 

그가 한국스티펠을 맡게 된 동기는 대략 이러했다. 그렇게 맺은 인연이 올해로 20년이다.

"스티펠은 본사가 따로 없습니다.”

"한국스티펠은 어떤 회사냐”고 묻자 그는 잠시 스티펠의 역사를 소개했다.

“1847년 독일에서 약용비누를 만들면서 피부외용제 전문회사로 시작했어요. 올해로 160살이 된거죠. 지금은 미국에 본사가 있는데 우리에게 본사 개념은 그리 중요하지 않아요. 본사는 주로 R&D와 공장설비 부문에 더 많은 투자를 하고 있지요.

(굳이 말하자면) 스티펠 한국지사는 캐나다 스티펠이 본사인 셈이죠. 1986년 거기서 처음 개설했으니까. 그때 제가 지사장에 응모한 거예요. 이후 91년 100% 한국법인으로 전환했어요. 초기엔 본사에서 조금 지원을 해 주었습니다. 투자를 안하면 들어올 수가 없으니까 말이죠.

일본에는 아직 스티펠이 없어요. 중국도 마찬가지구요. 여기는 우리가 직접 지사를 개설할 생각입니다. 제너럴 메니저는 모두 로칼 사람들이예요. 보기엔 다국적 제약사 같지만 스티펠은 철저하게 해당 국가의 토종제약사를 지향하고 있어요.

(토종사와) 한가지 다른 게 있다면 그런거죠. 한 분야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전세계로 사업영역을 확장시켜 나가는 피부전문기업이라는 거….”

“제품은 모두 본사에서 가져오는 건가요. 제 기억으로 한국스티펠은 피부전문제약회사로 확고한 이미지 메이킹을 했던데…”

“스티펠은 미국 플로리다에 본사가 있고 미국 로스캐롤라이나, 영국, 브라질에 R&D센터가 있습니다. 3개 대륙 연구소와 5개 대륙 지역공장에서 각각의 나라별, 인종별 피부에 맞는 제품을 연구-개발해 공급하고 있어요. 우리는 주로 피부과에서 사용하는 외용제를 공급하고 있어요.”

잠시 분위기를 바꿔 “다국적 기업의 외국 본사는 경치가 매우 아름답더라”고 했더니 그는 “경치는 좋지만, 본사가 가지고 있는 땅과 건물은 R&D센터와 공장이 전부”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미국 본사도 나무빌딩에 세들어 있다. 경치는 한국이 더 좋다”며 앞에 있는 지도를 가리킨다. 지도를 따라 남해안을 한번 가보라고 권한다.

“제약회사는 부동산 투자기업이 아니잖아요. 그럴 돈 있으면 한푼이든 두푼이든 R&D 투자해야죠. 건물만 번지르하면 뭐합니까.”

“지금의 건물에 입주한지 15년이 됐다”는 그의 말은 카피약으로 연명하면서도 사옥부터 준비하고 보는 한국제약기업들을 연상시켰다.

다시 피부약으로 대화를 돌렸다.

“스티펠은 적어도 피부치료제 만큼은 어드벤티지(advantage)를 확보했다. 굳이 피부치료제만 고집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나는 86년 지사를 개설할 때부터 여드름도 질환이라고 주장을 했어요. 적극적으로 치료를 해주어야한다고 생각했지요. 스티펠은 바르는 약에 있어서는 노하우가 축적돼 있습니다. 같은 바르는 약이라도 스티펠약은 예술품이지요.

예를 들어 먹는 약은 A와 B가 달라도 쉽게 알 수가 없어요. 그런데 피부약은 금방 감각으로 느낍니다. 발라보면 다르다는 걸 알게 됩니다. 이거는 잘 만들었다, 아니다. 금방 알 수 있어요. 화장품의 경우 고급은 터치가 좋습니다. 그러니까 스티펠 제품은 명품, 장인정신이 들어가 있는 거죠.(웃음)”

"제품이 좋다고 소비자 공략이 쉬운 건 아니라고 본다. 외국 기업이라는 인식 때문에 시장에서의 어려움은 없었는가"라고 물었다.

“힘들었던 이야기 많습니다. 시련을 헤치고 왔어요. 하루 24시간을 쪼개면서 살았을 거야. 하나의 ‘롤 모델(Roll model)’이 돼 버렸어요. 1인 3역을 문안하게 잘 한 롤 모델이. 가정주부, 사장, 마케팅 세 가지를 한다는 건 쉽지가 않더군요. 얼마만큼 고민하고 하루를 30시간 처럼 썼을 거야.

우린 피부과 의사를 주로 상대합니다. 1986년에는 피부과 전문의 수가 300명 정도 됐어요. 그러면 거기에 걸맞는 적정수자의 디테일을 했습니다. 지금은 1500명입니다. 그만큼의 세일즈 렙이 필요합니다. 피부과 의사선생에 따라 세일즈 렙을 불려 나갑니다. 하루에 몇 명의 의사를 만날건가. 필요한 수자를 불려 나가죠.

물론, 초창기에는 외국거 안산다고 했어요. 카피약도 많이 생겼구요. 좋다고 하니가 여기저기서 우리 카피약을 만들어 팔고 있어요. 일반약은 특허가 없으니까. 만들기 좋잖아요? 그러나 점점 글로벌화가 되다보니 시장 환경은 좀 나아진 거 같아요. 지난 20년간 많은 변화가 있어요. 레귤레이션한 외국기업들이 기업활동도 할 수 있고. 문호를 개방해서 더 많은 투자자들을 불러들어야 해요.

한번은 그런 적도 있었어요. KRPIA 들어봤죠? 한국다국적의약산업협회. 아시다시피 우린 KRPIA 회원사입니다. 한 회원이 외국기업 차별하는 거 아니냐고 하더라구. 그런 말 하지말라고 했어요. 요즘 우리나라 많이 변했다고 했죠.

삼성도 엄밀한 의미에서 외국기업입니다. 그러나 국내 기업으로 생각하잖아요? 그와 마찬가집니다. 지금은 오로지 품질이 경쟁력이예요."

꽤 긴 시간 인터뷰를 한 것 같은데 시계를 보니 고작 40분이 흘렀다.

“작년에 매출은 얼마나 됐느냐”고 주문하자, 그는 다시 주저없이 말문을 연다.

“우리 한 150억쯤 했나?” 동석한 KPR 이수경씨에게 묻는다. “좀 더 알아봐야 겠는데, 하여튼 매년 20%씩 성장하고 있어요”

“비결이 어디에 있느냐” 물었다. 그는 “한국 사람의 피부에 맞는 치료제와 프로패션널리즘, 고객감동 문화가 비결이다”고 답한다.

사실 한국스티펠 제품은 그가 말하지 않아도 이미 피부과 의사들 사이엔 정평이 나있다.

이날 인터뷰를 하기로 마음먹은 가장 큰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제약기자로써 한번쯤 독특한 피부치료제에 대해 CEO에게 직접 들어보고 싶은 강한 욕망, 그런 것이었다.

아토피피부염치료제 ‘락티케어HC로션’, 여드름치료제인 ‘사스티드비누’와 ‘듀악’, 두피질환치료제인 ‘세비프록스’와 ‘단가드’, 및 ‘타메드’, 다한증치료제 ‘드리클로’, 피부노화방지 및 주름기미개선제 ‘스티바-A’, 사마귀치료제 ‘두오필름’, 병원전용 천연보습제 ‘피지오겔’ 등….

국내 피부질환 시장을 주름잡는 명성 깨나 날리는 제품들은 모두 스티펠에서 생산된다.

“잠자는 아내를 깨우지 말라”-94년부터 주5일제 시행

한국스티펠은 순수 국내 기업 순위로 보아도 아직은 보잘 것 없는 영세제약사에 가깝다. 그러면서도 기업문화만큼은 선진외국기업을 꼭 빼닮았다.

전직원은 오후 5시30분이면 ‘칼퇴근’이다. 더 있고 싶어도 사장 눈치를 보아야한다. “가정이 화목해야 회사일도 잘 된다”며 권 사장이 평소의 지론인 ‘가화만사성’을 외치기 때문이다.

대신, 아침 출근 시간은 다소 이른 편이다. 7시30분이 되면 전 직원이 사내 ‘카페테리아’에 모여 아침 식사를 같이 하는 독특한 기업문화를 가지고 있다. "아침에 잠자는 아내를 깨우지 말라”는 것이 권 사장의 ‘엄명’이다.

“저도 전업주부를 6년이나 해보았습니다. 굳이 형식에 얽매일 필요가 있나요. 회사 때문에 가정사가 어렵게 되면 회사가 오히려 손해 아닐까요?”

한국스티펠의 사원복지문화는 이뿐이 아니다. 주5일제 근무는 한국기업들이 꿈도 꾸지 못했던 지난 94년부터 시행하고 있다.

1년 이상 근속한 직원에 대해서는 주택자금과 생활안정자금을 지원하고 매년 피복비는 기본으로 제공된다. 매년 200만원씩 투자하는 직원 재교육 비용도 조만간 500만원으로 대폭 인상할 방침이다. 이 정도면 웬만한 대기업이 부럽지 않은 셈이다.

기업 존재 이유는 사회 환원

지난 2000년부터는 ‘스티펠상’을 제정, 피부과학회 등에 연구기금을 지원하고 연세대학교 BK21의 과학사업단에는 인력양성기금을 지원하고 있다. 독거노인돕기 운동본부를 비롯, 사회복지재단에 의약품 지원사업도 매년 빼놓지 않는다.

남편을 따라 미국 땅에 있는 3년 동안 생후 10개월 된 아들과 생이별을 했던 권선주 사장.

“사장직에서 물러나면 무슨 일을 할거냐”고 물었더니 그는 뜻밖의 대답을 한다.

“여직원들을 위해 회사안에 작은 놀이방이라도 하나 차리고 싶은데 내 욕심인가~?(ㅎㅎ…)”

그는 장래 꿈이 '놀이방 보모' 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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