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 사는 사람치고 문제가 없는 사람 없고 또 문제가 없는 사회나 국가는 없다.

이는 그만큼 모든 인간들이 문제에 얽매여 살고 있다는 것이다.

좀 더 언급을 하자면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이브가 쫓겨나면서부터 인간들은 고통을 안고 이 세상을 살아가야만 하는 운명의 존재다.

이미 원죄를 암처럼 지니고 이 세상에 태어난 죄인이기에 인간들은 누구나 완벽한 존재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은 자신 안의 더 큰 문제는 관대하면서도 남에게는 쉽게 판단하려 들고 정죄를 하려고 든다.

아마도 인간이 극복하기 어려운 심성 중에 하나가 이기적이고 독선적인 마음일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의식과 무의식속에서 자기의 사고와 판단이 가장 바르고 옳다는 인식을 갖고 말을 함부로 하거나 남을 비난하는 행동을 거침없이 하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그런 말의 중요성을 잘 느끼지 못한 채 종종 남의 가슴에 상처를 주는 말을 곧잘 하게 된다.

말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때론 무서운 흉기가 되어 인간의 삶에 상당한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

자신의 말 한마디가 자신을 지혜로운 사람으로 만들기도 하고 때론 파멸을 자초하기도 한다. 그 만큼 인간의 말은 우리 삶 속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런 지혜로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혀를 잘 다스릴 줄 아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

공자가 말씀하시기를 말을 해야 할 사람에게 말을 하지 않으면 사람을 잃고, 말을 해야 하지 않을 사람에게 말을 하면 말만 잃게 된다(可與言而不與之言失人, 不可與言而與之言失言)고 하면서 지혜로운 사람은 실인(失人)도 않지만 실언(失言)도 하지 않는다고 했다.

사전을 찾아보니 '실인'이란 민심을 잃는다는 뜻이 있고, '실언'이란 해서는 안될 말이라고 풀이되어 있다.

말은 그 사람의 인격을 평가받는 잣대가 될 수도 있다. 사람은 누구나 말을 통해서 자신의 생각과 마음을 표현한다. 모든 이들의 만남의 관계에서도 일차적으로 맺어주는 것도 역시 말이다.

이 같은 말은 가족과의 관계, 특히 부부의 관계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이는 무촌(無寸)에 영원히 남남이면서 남남이 아닌 부부 관계에서 발생하는 갈등의 시작이 서로간에 말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엄청난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더구나 사회생활과는 달리 가족 문제의 시작이 보통 부부간의 대화문제에서 비롯되면서 갈등의 폭에 따라 결별의 아픔과 함께 상대에게 상처를 입히기도 한다.

주위에서 이혼하는 부부들을 보더라도 미미한 문제를 놓고 말을 잘못해서 가정파탄에 이르는 등 가족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안겨주고 있다.

아무리 부부지간일지라도, 가족이나 형제자매일지라도 인격적인 차원에서 이해하고 용서하는 마음으로 말을 할 때는 말을 걸러야 한다.

에릭 프롬은 그의 저서 '사랑의 기술(Art of Love)'에서 사랑은 학습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특히 대화는 지속적인 노력과 훈련 없이는 발전할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말은 그 사람의 인격을 가장 잘 표현한 것으로 정의를 내릴 수도 있다. 인격을 갈고 닦아 수양하듯 말 역시 갈고 닦는 훈련을 해야 한다.

말을 많이 하게 되면 실수를 하게 마련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늘 선하고 착한 마음으로 말을 한다.

자칫 험담을 할 경우 살인보다 더 무섭고 위험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살인은 당한 사람으로 끝이 나지만 험담은 한꺼번에 세 사람을 해치는 결과를 가져온다고 한다.

첫째는 험담을 하는 자신이며, 둘째는 그 험담을 제지하지 않고 듣고 있는 사람이며, 마지막 세 번째는 그 험담의 주인공이 된 사람이라는 것이다.

결국 자신의 말 한마디가 어떻게 뿌려지느냐에 따라 좋은 열매를 맺을 수도 있고 고통과 어려움을 안겨주는 열매도 될 수 있다.

안호원(한국 심성교육개발연구원장. 교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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