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타구를 들고 뛰어다니는 노예가 되어 유령들이 뱉어버린 일곱 빛깔 무지개 각혈들을 모으고 또 모았다.

그것은 어느새 글자로 굳어지고, 문장으로 나불대고, 그림으로 살랑거리다가, 이야기새끼줄로 비비 꼬더니, 돌연 춤사위로 손을 뻗어 키보드를 두드렸다.

그러다보니 어느덧 타락하여 능청스러워진, 그러면서도 옛날 옛적 이솝보다 약간 귀염성 있고 애련한 이 노예는 소설가라는 이름을 슬쩍 바짓주머니에 집어넣게 되었다.”

지난해 문학동네소설상 최종심에서 고배를 마셨던, 제목부터가 수상하기 그지없는 신인 박진규의 소설 <수상한 식모들>(문학동네)은 이렇게 씌어졌다.

작가에 따르면 어느 날 우연하게 ‘수상한 식모들’이라는 제목이 먼저 떠올랐고, 몇 번 중얼거리다보니 생각이 떠오르기 시작했단다.

그때쯤 후배로부터 모딜리아니의 <하녀>라는 그림에 나오는 하녀의 눈빛이 도도하다고 해서 그것이 궁금해졌고, 그리고 그 무렵 호랑이가 자주 꿈에 나타났다.

해는 동쪽에서 뜨고, 강물은 바다로 흐른다는 사실을 우리가 의심하지 않듯이, 우리는 우리가 곰의 자녀라는 신화적 혈통에 대해서 왈가왈부하지 않았다.

다시 말해 곰과 함께 쑥과 마늘을 들고 동굴로 들어갔다가 참지 못하고 뛰쳐나온 호랑이에 대해서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다.

“곰이 여성의 시조라면, 그때 호랑이는 어떻게 되었을까?” 라는 의문은 그렇게 시작되었고, 그 끝에 열매로 매달린 것이 ‘호랑아낙’이었으며, ‘수상한 식모들’ 이었다.

이 소설은 역사에 대한 전복적인 해석 때문에 새롭고, 발상의 불온함 때문에 신선하고, 상식성을 벗어난 상상력 때문에 웃기고, 그리고, 최종적으론 섬뜩하고 무섭다는 느낌을 준다.

자신의 소설을 읽는 독자들이 ‘환각상태’를 경험했으면 한다는 작가의 소망이 이루어진 셈이다.

이 소설은 읽다보면 마치 롤러코스터를 탄 듯 살짝(!) 어지럽다.

안전바를 내리고, 어깨의 벨트를 꽉 잡고 두근두근,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천천히 하늘언덕을 향해 올라가는 느낌, 일종의 그런 것들이다.

정상에서 잠시 정지. 잠깐 주위를 둘러볼 사이도 없이 곧장 떨어지기 시작하면 그때부턴 정말 보이는 게 없다.

빠르게 지나가는 풍경들, 그저 롤러코스터와 한 몸이 되어 돌고 떨어지고 다시 오르고. 그러고 나면 어느새 종착지점이다.

<수상한 식모들>은 이런 롤러코스트와 꼭 닮았다.

온라인 하녀 게임에 빠져 있는 실업자 아빠, 졸부의 아내 역에 심취해 있다가 갑자기 망해버린 아빠의 사업 때문에 하루 종일 신세한탄만 늘어놓는 엄마, 가족들은 안중에도 없는 콧대 높은 초등학생 천재 동생, 집 나간 형을 둔 130kg의 비만 고등학생이 주인공이다.

하지만, 소설은 순식간에 ‘호랑아낙’과 그 뒤를 잇는 ‘수상한 식모’의 그것으로 바뀌어 어느새 구르고 돌고 재주넘고, 온갖 묘기를 선보이며 빠르게 진행되어간다.

“어, 어!” 하는 사이 종착지점에 와 있다.

그렇게 정신없이 쫓아가다 책장을 덮고 나니, 지나친 풍경들이 보이는 것이다.

예컨대, 신의 뜻을 거스르지 않고 복종한 대가로 여성의 시조가 된 짐승이 곰이었다면, 복종을 거부하고 스스로 여자가 된 짐승이 있었으니, 바로 호랑이었다.

이 호랑아낙들은 자신의 생존을 위해 남성들의 거대한 억압체계와 맞서왔다.

이들이 한국사회의 부와 명예를 독식해온 집단에 대해 은밀하게 대항하는 모습을 보여왔다면 호랑아낙의 정신을 이어받은 수상한 식모들은 의도적으로 부르주아 가정에 잠입하여 그들의 위선을 까발리고, 가정을 해체시키는 역할을 떠맡아왔다.

호랑아낙들은 연산군을 폐위시키는 일에 참여하기도 했고, 지방 탐관오리의 악행을 고발하는 데 일조하기도 했으며, 동학혁명 때도 큰 몫을 해냈다.

수상한 식모들이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한 것은 일제시대 때부터였다. 조선을 지탱하던 신분사회는 몰락했지만 신분 사이의 경계는 더욱 두터워졌다.

이 단단한 신분의 경계를 만들어놓은 것은 바로 자본. 자본은 어떠한 법도보다 더 강력하게 신분 사이의 교류를 끊어놓았고, 이제 계급과 계급 사이에서 활발히 움직이던 호랑아낙의 움직임은 점점 둔해지다가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아예 호랑아낙은 전설로만 남고, 수상한 식모들이란 이름을 지닌 새로운 집단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박진규가 풀어놓는 호랑아낙, 그리고 수상한 식모들의 행각은 그야말로 황당하고 기발하다.

천기를 누설한 죄로 얼굴을 제외한 모든 신체부위가 돌이 되어버린 ‘마지막 수상한 식모’ 순애씨는 ‘나(경호)’에게 수상한 식모들의 비밀을 하나하나 풀어놓는다.

그녀의 이야기 속엔 예언자 염옥과, 어떤 병이든 치료할 수 있는 신비한 효험을 가진 ‘오줌’을 누게 된 민자씨, 바구니만 들고 나갔다 하면 무엇이라도 채워오는 점래, 저 유명한 시인 김수영에게 ‘식모’라는 시를 쓰게 한 식모 김수영 등 다양한 방면에서 활동을 펼쳐 보인 수상한 식모들의 이야기가 숨어 있다.

혹시 ‘수상한 식모들’이 내 주변에도 있는 게 아닌가.

이 책은 발상이 신선하고 접지하는 방법은 아주 웃긴다. 읽고 나면 어딘지 모르게 섬뜩해진다.

옆에서 잠든 아내 얼굴도 새롭게 꼼꼼히 들여다보게 만드는, 그런 이상한 힘이 이 소설속에 내포돼 있다.

“<수상한 식모들>은 역사에 대한 전복적인 해석 때문에 새롭고, 발상의 불온함 때문에 신선하고, 뜨거운 것들을 짐짓 감추면서, 그러나 음험하게, 상식성을 벗어난 상상력 때문에 웃기고, 그리고, 최종적으론 섬뜩하고 무섭다.”(소설가 박범신)

“<수상한 식모들>은 기존 소설 독법을 배반한다. 쓸데없는 허튼 상상으로부터 출발하는 것 같은데 다 읽고 나면 의외로 묵직한 울림을 준다. 이제 식모라는 존재는 이전의 식모가 아니다. 낡은 의미를 새롭게 전환시키는 것도 문학의 힘이라도 본다면 이 작품은 그에 이바지한 셈이다.”(소설가 신경숙)

336쪽. 9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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