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모 대학에서 특별한 잘못이 없는 한 재계약이 되는 관행에도 불구하고 이번 새 학기에 강의시간 배정을 받지 못해 허탈해 하는 친구를 만난 적이 있다.

그 친구가 맡은 과목은 교양과목인 직업윤리다. 강의가 없는 지난 2학기를 그는 안식(安息)기라며 6개월 동안 상담사 자격을 취득하는 가운데 한국기술교육대학에서 교사자격 취득을 위한 교직과정을 이수할 정도로 그 대학에 열성을 보인 친구였다.

특히 그 친구는 지난 학기에서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이론에 앞서 시청각교육의 필요성을 느끼고 몇몇 단체에서 CD 등 관련 자료를 어렵사리 구해 놓은 상태에서 새 학기 강의를 준비하며 학생들을 만날 꿈에 부풀어 있던 친구다.

그런 친구였는데 느닷없이 강의실 분위기 쇄신을 위해 여자 강사로 바꿨다는 소식을 간접적으로 전해 듣고 학교 방침에 승복을 할 수밖에 없다는 말로 체념하는 눈치였다.

필자가 아는 그 친구는 집념도 강하지만 단념하는 것도 쉽게 하는 친구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교직원이 그 친구에게 한마디 의사도 묻지 않고 윗분에게 올해는 강의를 맡지 않고 내년에나 하겠다는 식으로 보고를 했다는 점이다.

세상은 비밀이 없다는 것이 이를 두고 하는 말인 것 같다. 다음날 낮에 이 같은 사실을 알게 된 그 친구가 평소와는 달리 무척 상기된 얼굴로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진상을 밝혀줄 것을 강력히 요구하는 것을 들었다.

그러나 잠시 후 그는 다시 전화를 걸어 교직원의 잘못으로 또 다른 피해자가 될 강사가 아픔을 당해서는 안되지 않느냐며 없었던 일로 하자고 말하지 않는가. 그 친구의 말은 설령 자기가 우겨서 강의를 맡게 될 경우 이미 통보를 받은 여자 강사가 선의의 피해를 입게 되고 교직원이 오죽했으면 그렇게 했겠냐며 자기 하나만 참으면 다 좋게 되는 게 아니겠느냐는 것이었다. 그 대신 내년 학기에 강의를 맡으

역시 그 친구는 지식과 아울러서 인격도 동시에 갖추고 덕을 실천하는 친구로서 존경받을 만한 멋진 친구였다. 다만 그 친구가 안타까워하고 마음 아파하는 것은 새 학기 강의를 할 때 입으라며 몇 벌의 와이셔츠와 넥타이를 준비한 아내의 실망스런 얼굴을 어떻게 보느냐 하는 것이다.

어쩜 전화위복이 될지 모른다고 애써 태연한 척 하며 자신보다 더 어렵고 힘든 사람들을 생각하고 현실을 극복해나가는 그 친구의 애처로운 모습을 바라보면서 왠지 모를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문득 다산 정약용 선생이 억울한 유배생활을 하면서도 자신처럼 억울한 유배생활을 넉넉한 마음으로 이겨낸 옛 사람들의 삶을 본 받아 그 고통을 이겨내겠다며 지은 ‘아사고인행’ (我思古人行) 이란 제목의 시가 생각나는 것이 필자의 마음 한 구석을 아프게 만들었다.

이 시는 사신으로 갔다가 적국에 불모로 잡혀 19년간 유수(幽囚)생활을 끝까지 이겨낸 ‘소무’ 와 자신보다 더 멀리 귀양살이를 가서 갖은 고초를 겪으면서도 절개를 굽히지 않고 어려움을 극복한 당나라 대문호 ‘한유’를 본받아 자기도 참고 견디며 모든 번뇌를 이겨내겠노라는 의지를 다짐한 시다.

그 친구는 이제까지도 참고 견디며 살아왔는데 그까짓 일년을 더 못 참겠느냐며 그런 고통을 통해 좋은 글을 쓰며 자신을 더욱 성찰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왠지 그 친구의 말이 뼈저리게 느껴진다. 인간은 누가 뭐라 해도 감정의 동물임에는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 그 감정을 사랑과 용서, 그리고 인내라는 두 글자로 삭혀야 하는 그 친구의 속마음이야 오죽 했겠는가.

어쩜 그들의 만남이 잘못된 만남의 인연인지 몰라도 남의 가슴에 상처를 주는 일은 하지 말았으면 한다. 남에게 기쁨과 슬픔을 안겨준 만큼 자신도 언젠가는 그만큼 되돌려 받는다는 것과 이 땅에 태어났다면 또 떠나는 날이 반드시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런 날이 있기에 이 땅에 남은 자 들로부터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어지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각박한 인연보다 넉넉한 인연으로 살기를 소망하고 학생들을 제자로 생각하기보다 자식처럼 여기면서 잔정을 듬뿍 주어 학생들에게도 인기가 높았던 그 친구는 과거 운동권에서 반골소리를 들을 정도였으며 한때 언론노조의 부위원장을 지낸바 있는 기자출신이기도 하다. 그의 인품을 아는 그 대학의 연로하신 교수님들과 몇몇 학과장님들이 여자 강사로 바뀐 것을 뒤늦게 알고 예외라는 표정을 지어

“안식기간이 더 늘어나긴 했지만 나잇살 먹은 사람이 참아야지 별수 있느냐”며 모든 것을 자기 탓으로 돌리는 그 맘 좋은 친구에게 늦게나마 올해는 꿈과 소망이 이루어지고 전화위복이 되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항상 자신도 어려우면서 남을 먼저 생각하고 이해하며 여유를 보이는 자상한 친구지만 자신이 인격적인 모독을 당했다고 판단할 경우 소름이 끼칠 정도로 차갑게 처리하는 또 다른 면이 있는 무서운 친구라는 것을 감히 말하고 싶다.

또한 마당발로서 정계를 비롯, 교분이 있는 인사들도 많지만 내색을 하지 않는 친구다. 뭐라고 위로조차 할 수 없는 그 친구와 헤어지면서 내 마음의 글인 ‘無言忍不忘 人示禁起念’(말없이 참는 것을 잊지 말고 사람에게 보여 지는 것을 금하되 항상 일어날 것을 생각하라)을 적어 슬그머니 손에 쥐어주었다. 그 친구가 알았다는 듯 맑은 웃음을 띠며 손을 흔들어 준다.

논설위원 안호원(한국 심성교육개발연구원장. 교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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