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오랜만에 만난 지우(知友)와의 대화 중 생각대로라면 어디론가 떠나 혼자서 살고 싶다며 현재 생활이 무척 힘들다는 것을 독백처럼 털어놓았다.

가정과 가족에 얽매이다 보니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자유롭게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 지인의 경우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사람과의 연(緣)을 끊을 정도가 된다면 그 바탕에는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는 이기주의적 발상에서 오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세상살이가 얼마나 힘들고 야박해졌으면 이제는 가족마저도 짐이 될 정도가 되었을까 하는 점이다.

살을 맞대고 기나긴 세월을 함께 한 배우자 역시 자신의 노후를 위한 보험 정도로 밖에 여기지 않는 현실에 대해 씁쓸해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한자에서 사람 인(人) 자(字)의 의미는 사람은 혼자 살 수 없고, '나'만이 아닌 '우리'가 되어 서로를 의지하며 살라는 뜻을 담고 있다 할 수 있다.

그러나 영어의 나(I) 처럼 혼자 우뚝 서서 이 세상을 살아가려고 하는 것 같다.

하기사 옛적에는 등이 가려우면 배우자가 긁어주어야 했지만 과학이 발달한 최근에는 등을 긁는 기구가 있어 혼자서도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특히 밥을 해줄 사람이 없어도, 반찬을 만들 줄 몰라도, 세탁을 할 줄 몰라도 이 모든 것을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편한 세상이 되어 버린 것이다.

필자의 경우도 간혹 모든 것에서 벗어나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을 때도 있다. 그러나 아직 우리네 정서는 '나(I)'가 아닌 '우리(We)'임에도 불구하고 세상이 변하다보니 누구나 할 것 없이 '나'에 대한 강한 집착으로 인해 '우리'를 서서히 벗어나고 있는 것 같다.

그런 지우(知友)에게 너무 세상을 어렵게 살지 말자며 마음을 비우다보면 '나'에 대한 욕심이 사라져 괴로워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조언을 했다.

이 세상을 떠날 때 다른 것은 차치하고라도 자신의 주검 위에 삽으로 흙을 뿌려줄 이가 아무도 없어 시신이 땅위에 버려진 상태라면 그 심정이 어떠한가를 한번쯤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물론 이 때도 돈이 있으면 해결할 수도 있겠지만 슬퍼하며 울어줄 사람이 하나도 없다면 그 영혼은 불쌍한 영혼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된다.

비록 물질이 풍부하지 않고 힘들고 지친 삶일지라도 살아있는 동안 서로 바라보고 따뜻한 미소를 지며 함께하는 사람이 있다면 바로 그것이 행복이고 가치있는 삶을 사는 인생이라 할 것이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너무 계산적으로 살지는 말았으면 한다. 수지타산을 저울질하며 손익을 따져 계산이 안맞는다고 등을 돌리며 사는 삶을 버려야 할 것 같다.

밋밋한 등을 보이기보다 기왕이면 굴곡이 있는 앞가슴을 내보이며 마주보고 살아가는 우리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흔한 말이지만 어차피 우리 모두가 나그네로 이 세상을 사는 인생인 것을 안다면 그처럼 탐욕에 빠져 고통스런 삶을 살지는 않을 것이다.

지난 성탄절날 밤늦도록 TV를 보며 잠을 자지 않는 가족들에게 선물을 몰래 갖다 놓을 시기를 찾다 그만 필자가 먼저 잠이 들어 버린 적이 있다.

다행스럽게도 신경을 쓴 탓인지 새벽녘에 깨여 행복한 모습으로 잠든 아내와 딸 머리맡에 선물을 살그머니 갖다놓고 아침에 선물포장지를 펴보며 환하게 웃는 모습을 생각하니 즐거운 마음이 되었다.

결혼생활을 시작한 이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26년 동안 산타아빠 노릇을 했지만 내가 선물을 받은 기억은 별로 없다.

그러나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정성어린 선물을 줄 수 있다는 그 자체가 내겐 기쁨이고 행복이다. 내 마음을 받아주고 함께 할 수 있는 '우리'가 곁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다.

바라만 보아도, 그 눈빛만 보아도 그립고 설레이는 사람이 있다는 건 엄청난 축복이 아닐 수 없다.

필자는 혼자만의 외로움을 안다. 또 혼자는 살 수 없다는 것도 안다. 이 세상은 '나'가 아닌 '우리'가 더불어 사는 세상이다. 서로를 의지하며 편한 우리가 되어 온정을 나누며 베푸는 그런 삶을 사는 세상이어야 한다.

논설위원 안호원(한국 심성교육개발연구원장. 교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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