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여자 제자로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았다. 학생들에게 문자는 많이 받아 보았지만 편지를 받는 게 처음이라 다소 설레이는 마음이 되었다.

주홍색 편지지에 깨알같이 가득 채운 사연을 보면 우선 열심히 강의를 하면서 너그럽고 자상하신 교수님께 감사를 드린다며 아울러 학생들에게 관심을 갖고 신경을 써주신 마음이 놀라워 편지를 쓰게 됐다고 밝혔다.

특히 학생들을 생각하며 쓴 칼럼을 읽고 너무 감동을 받아 울컥하는 마음이 되기도 했다고 했다.

또 교수님이 이 정도로 학생들을 생각하는 줄 몰랐다며 그 글을 끝까지 읽고 무척 마음이 아팠는데 지금부터라도 출석도 잘하고 열심히 공부하겠다고 약속까지 하면서 그 동안 나태했던 자신에 대해 반성하는 글을 썼다.

이와 함께 항상 학생들에게 웃음 띤 모습으로 일일이 챙겨주신 교수님께 잘못을 용서해달라며 새 학기에도 또 뵐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글로 마무리를 했다.

그 여제자가 필자의 글을 읽고 가슴이 뭉클하고 마음이 아팠다지만 오히려 제자의 글을 읽는 필자의 마음이 더욱 뭉클한 것이 눈시울이 뜨거워짐을 느낄 수 있었다.

그간 학생들에게 많은 문자를 받으면서 나름대로 보람을 느꼈는데 요즘같이 전산화된 시점에서 참으로 오랜만에 편지를 받아보니 감회가 깊다.

더구나 연애편지조차 안쓰는 요즘 세태에서 이 같은 편지를 친필로 썼다는 것은 여간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여학생은 얼굴도 예쁘지만 학업성적도 매우 높았다. 마음까지도 고운 학생임을 알았다.

일부에서는 그깟 문자 보내는 것이나 편지를 보낸 것이 뭐 대수냐 하겠지만 그건 전후 사정을 몰라서 하는 말이다.

학기 초 강의실에 들어가려면 발길이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학생들의 표정이 무겁고 웃음이 없었다. 거기에다 수업태도마저 엉망이고 핸드폰으로 게임을 하면서 수업 분위기를 엉망으로 만드는 등 맥이 빠질 정도였다.

그러나 교육자 입장에 앞서 아버지의 입장으로 눈높이를 낮추고 이들을 대하다보니 자연스럽게 벽이 무너지고 웃음 띤 얼굴들이 되면서 아는 체도 하고 문자도 보내더니 급기야는 편지까지 받게 된 것이다.

필자로서는 참으로 놀라운 변화가 아닐 수 없다. 비록 짧은 한 학기 동안의 시간이었지만 어느새 녀석들과 정(情)이 든 것 같다.

어찌어찌 하다보니 이번 학기에는 학생들과 작별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종강을 해 못내 마음이 아프다.

특히 학기 초 아무도 자기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며 학교에 불만을 보이다 필자와 면담을 한 후부터 열심히 수업에 임하고 과제물도 충실하게 제출하고 심지어는 늦을 경우 문자까지 보낼 정도가 된 H군을 생각하면 성취감을 느끼면서도 지속적인 지도를 할 수 없는 입장이 안타깝기만 하다.

이번 학기에서도 느낀 것이 있다면 가르치는 자로서 탁월한 지식과 권위를 앞세우기보다는 그들과의 눈높이 수준에서 그들을 공감하고 자신감을 불어 넣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의욕은 있는데 여건상 많은 한계를 느껴야만 하는 처지가 못내 아쉬울 뿐이다.

그 귀엽고 발랄한 여 제자에게 성탄절을 맞이하면서 답장을 보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문득 빨간 우체통이 떠오른다. 언제부터인가 그 빨간 우체통을 볼 수 없게 됐다. 낙엽이라도 떨어질라치면 편지를 보낼 사람이 없어도 선남선녀들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았던 우체통이었다.

이런 낭만의 우체통이 이제는 e-메일 등 인터넷에 떠밀려 점차 사라지면서 우리에게 추억의 우체통으로 전락되고 있다.

허기사 요즘엔 인터넷 사이트의 발달로 원하는 편지지에 글을 남겨 발송까지 하고 심지어는 '나만의 우표 만들기'로 발전하면서 유행가사처럼 '하얀 종이 위에 곱게 써내려간 편지'의 친필 편지가 이 땅에서 사라져가고 있는 시대로 바뀌고 있다.

필자도 간혹 간편하고 편리한 전화문자나 e-메일을 사용하지만 아직도 편지지와 만년필을 고집하는 이유는 첨단기술이 갖지 못하는 정감을 느끼는 장점이 더 많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전같으면 성탄절이 낀 연말이면 크리스마스 카드와 연하장, 편지 등으로 우체통이 가득해 집배원들이 바쁜 시기였다.

아무튼 아쉬운 건 친필 편지를 쓰는 손길이 갈수록 줄어든다는 사실이다. 그만큼 우리 마음의 정감이 메말라 가는 것 같은 기분에 서글픈 마음이 든다.

논설위원 안호원(한국 심성교육개발연구원장. 교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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