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지하철을 탔을 때의 일이다.

오후 시간이라 그런지 평일임에도 불구, 승객이 별로 없어 전철 안이 한가했다. 덕분이라 할 수는 없지만 모처럼 자리를 선택해 앉을 정도였다.

잠시라도 눈을 붙일 겸 출입구 쪽에 자리를 잡았는데 앞쪽에 젊은 스님 한 분이 앉아 책을 보고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문득 스스로 세속을 벗어나 고행길을 선택, 수녀가 된 친동생의 모습이 떠오른다.

이 순간 왜 여동생이 생각나는지 모르겠지만 가슴이 뭉클해진다. 눈시울이 뜨거워짐을 느끼면서 살그머니 눈을 감았다.

과연 구도자로서의 길을 걷는 스님이나 수녀가 더 행복한 것인지, 아니면 가정을 갖고 세상에서 찌든 삶을 사는 내가 행복한 것인지 생각을 해보았지만 어느 쪽이 더 행복하다는 단정을 짓기는 쉽지 않았다.

도인(道人)은 아니지만 깊은 상념에 빠져들다 보니 잠이 들었나 보다. 웅성거리는 소리에 눈을 떴다.

맞은 편에 앉아 있는 스님 앞에 몇몇 사람들이 둘러서서 삿대질까지 하며 스님에게 면박을 주고 있는 게 아닌가.

스님이 무슨 실수를 했기에 저런 망신을 당하나 싶었는데 떠드는 소리를 들어보니 꼭 그렇지만도 아닌 것 같았다.

정리를 하자면 교인들이 지하철 안에서 전도지를 돌리며 전도를 하다 젊은 스님을 보고 "절대 유일신인 하나님을 믿고 그 자녀가 되어 구원받고 천당을 가야 한다"며 "회개하고 예수 믿으라"고 스님에게 봉변을 주고 있는 것이었다.

그들이 열이 올라 침을 튀기며 난리를 피우는데도 불구, 그 스님은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조용히 책만 보고 있었다.

스님이 미동도 하지 않자 나중엔 듣기에도 거북할 정도의 욕설까지 퍼부었다.

그러나 그들을 쳐다보는 스님은 오히려 미소를 띄우고 있었다. 그런 스님의 태도를 본 주위 사람들이 항의하자 그들은 우르르 다른 칸으로 몰려갔다.

그 순간까지 스님의 흐트러지지 않고 여유 있는 자태를 보며 같은 기독교인으로서 부끄러움을 느낄 정도로 얼굴이 화끈거리는 게 잠이 다 달아날 정도다.

기독교 어느 교단인지는 몰라도 전도 방법이 틀린 것 같았다.

이들을 지켜보면서 느낀 것은 우선 종교적인 관계를 떠나 한 인간으로서 올바른 인격을 갖추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과연 이들 신도들과 스님을 비교하면서 주위 사람들은 무엇을 느꼈을까를 생각해 보았다.

더구나 비신자의 경우 어떤 생각을 했을까 하는 점과 이로 인해 기독교에 미치는 영향은 어떨지를 생각하니 현기증 마저 일어난다.

그 젊은 스님의 인자한 모습이 며칠이 지난 지금까지도 선명한 것이 내 마음을 무척 아프게 하고 있다.

무엇을 믿고 안 믿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함께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상대의 인격을 존중하고 기본적인 예의는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이 상황에서 만약 예수님이 계셨다면 분명 그 신도들의 전도 방법이 잘못되었음을 지적하고 꾸짖었을지도 모른다.

아무리 예수님을 믿는 기독교인이라 해도 내 자신이 이해 못할 생활과 행동에 대해 그 안에 담겨진 의미가 진리인가를 살펴보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본다.

이는 종교에 앞서 한 인간과 인간으로서의 만남이 더 소중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누구나 완벽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그 어느 누구도 단죄를 할 수는 없다. 인간이 극복하기 어려운 심성 중 하나가 바로 이기적이고 독선적인 마음이라는 것이다.

대다수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의 생각과 판단만이 가장 옳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많다.

이와 함께 자신과 다른 사람의 판단과 행동에 대해서는 무조건 단죄를 하며 자기 뜻에 맞추려고 한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온전한 선과 악을 구분하시고 단죄를 할 수 있는 분은 공의로우신 주님 한 분뿐이라는 겸손함을 보여야 한다.

이번 경우에도 그들이 전도에 따른 판단과 행동이 얼마나 그릇되고 은혜가 되지 않는지를 깨닫게 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무조건적인 거부 반응과 질타보다는 참고 기다리는 인내가 필요하다. 아울러 불교뿐만 아니라 다른 종교와 사상을 가진 사람들과도 함께 공존하며 포용하는 여유와 기다리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어쩜 이 방법이 진정한 전도가 아닌가 하는 마음이 든다.

논설위원 안호원(한국 심성교육개발연구원장. 교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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