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강단에서는 열강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고, 일주일에 한 번 이상은 꼭 미술전시장을 둘러보는 부지런한 미술평론가 박영택.

그림에 대한 끝없는 그리움은 그를 미술잡지사 기자로, 큐레이터로, 그리고 미술평론가의 길로 이끌었다.

<미술전시장 가는 날>은 오랜 시간 동안 부지런히 작품들을 봐온 박영택의 부지런한 동선과 감식안을 동시에 보여주는 책이다.

한국미술의 심장부라 할 수 있는 인사동, 사간동, 광화문에 위치한 전시장을 둘러보고 가장 인상 깊게 보았던 전시와 단상들을 하나씩 써내려갔다.

저자의 숨결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에세이와 심도 깊은 미술비평이 조화롭게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은 현장에서 쓴 작가론·작품론이면서 동시대의 미술 담론 또한 깊이 다루고 있다.

그림을 보기 위해서는 전시장에 가야 한다. 매년 여름, 거장들의 전시에는 기록적인 인파가 몰린다. 이제 미술전시에도 ‘블록버스터’라는 개념이 심심찮게 언급될 정도다.

서양미술사나 명화를 대중들에게 친절히 소개하는 미술서적 출판도 부쩍 늘었다. 이미지를 보고 말을 건네려는 욕구들이 전시관람과 미술서적 읽기로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활발해보이는 현상의 이면을 들춰보면 걸작·명화 중심의 그림보기, 경직된 이론이나 정형화된 해석, 작가에 대한 에피소드 중심의 접근 등 왜곡된 감상 체험이 자리하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현실의 안타까움을 보며 박영택은 ‘과연 그림을 본다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을 던진다.

그가 정의하는 그림 보기란 눈과 가슴으로 그 대상을 조응하는 일임과 동시에 끊임없이 생각거리를 던져주고, 복잡하고 미세한 차이들을 즐기도록 유도하는 고도의 심리적인 작업이다.

미처 알지 못했던 미술에 대한 다양한 생각을 깨닫게 해주고 다른 이의 감각과 감수성, 미술에 대한 사유와 재능,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독자한 한 개인의 모든 것을 만나는 일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범람하는 시각이미지들과 넘쳐나는 미술서적들을 두고 굳이 미술전시장을 찾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시장에 걸린, 가설된 작품이야말로 동시대의 핵심적인 미술교과서고 텍스트다. 그곳에 바로 현재의 미술이 있다. 그리고 오늘날 미술을 생각하고 그에 대한 입장을 표명하고 있는 작가들이 생존하고 있다.”

그가 전시장을 찾는 이유이다.

미술을 본다는 것은, 단지 아름다움을 향유하며 기쁨을 누리는 미적 체험만은 아니다.

한 개인이 컴컴한 시간 동안 쌓아올렸을 체득과 훈련, 공들인 연마의 층과 깊이를 가만 헤아려보는 것, 시간의 양과 깊이 없이 되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재확인하는 일이기도 한 것이다.

하나의 작품을 본다는 것은 넓게는 인류 전체의 미술사 기록에 개입하고 간섭하고 다른 해석의 여지를 덧칠한 행위를 보는 일이다.

또, 깊게는 한 개인의 육성과 치열한 몸부림을 보는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박영택은 그림을 보는 행위는 황홀임과 동시에 ‘시련에 들어가기’라고 말한다.

누구보다도 이 명암을 잘 보아온 박영택은 미술에 대한 신비주의나 아카데믹한 베일을 걷고, ‘황홀’이자 ‘시련’인 미술과 정직하게 대면하기를 권한다.

그것은 우리의 삶을 응시하고 뒤돌아보는 것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모든 예술, 미술은 늘상 우리를 시련 속에 집어넣고 그 시련 속에서 단련시켜온 역사다. 그림을 본다는 것, 그에 대해 말하는 것, 말하게 하는 것, 그 모두는 다름아니라 시련에 들어가기다. 삶 역시 그렇다. 미술이나 삶이나 모두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것은 어떤 주도적인 것, 권력적인 것들을 밀어내고 넘어서면서 고여 있거나 머물지 않고, 굳어버리지 않으면서 부단히 틈, 사이, 균열, 경계를 찾아 이동하는,그렇게 살아가는 현재형이다. 영원한 청춘이면서 계속되는 죽음의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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