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와 빈 라덴은 어떻게 종교의 이름으로 폭력을 정당화했을까?

도서출판 돌베개에서 출간한 <거룩한 테러>는 9.11 사건을 매우 흥미롭게 접근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저자 브루스 링컨은 이 사건의 발생 배경을 '최대주의'(maximalism)에서 찾고 있다.

9·11 사건이 벌어지게 만든 그런 스타일의 종교성은 알 카에다나 이슬람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그것은 세계의 모든 종교 안에 내재돼 있다고 보고있다.

이런 경향을 '근본주의'라는 용어로 지칭하기도 한다.

9·11 사건 가담자들이나 레바논 및 팔레스타인 등지에서 활동하는 무장 단체들을 '이슬람 근본주의자'라고 부르는 것도 이와같은 맥락에서다.

다만, 저자는 근본주의라는 용어를 의도적으로 쓰지는 않는다.

이 용어가 부정적인 이미지를 불러일으켜 핵심적인 것을 가리기 때문이다.

9.11 이후 미국에서 9.11 사건을 설명하는 지배적 태도는 두가지 였다.

이슬람집단의 적의에 찬 공격행위라며 종교적 측면을 지나치게 과장하는 것이 그 하나이고, 몇몇 정신이상자가 저지른 비종교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 그 하나이다.

물론, 이 책의 저자인 미국의 브루스 링컨은 두가지 관점을 모두 비판한다.

9.11은 종교와 연관된 것이지만 비단, 이슬람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예컨대, 폭력성과 맹목성, 전근대성을 이슬람이라는 종교의 일반적 특성으로 이해되어서도 안되지만, 종교를 단순히 숭고하고 도덕적인 것, 사회적 갈등이나 모순과 무관한 것으로 해석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 책은 전반부에서 비행기 납치범들이 소지했던 지령서, 부시와 빈 라덴의 연설, 미국 개신교자들의 9.11에 관한 해석 등 흥미로운 텍스트를 심층적으로 분석한다.

이러한 분석을 위해 저자는 책의 후반부에서 '현상유지종교', '저항종교', '혁명종교', '반혁명종교' 등 종교의 역사적 사례들을 중심으로 종교와 정치, 종교와 폭력이 어떻게 상호작용을 하는지 규명해낸다.

그 과정에서 저자는 종교에 대한 기존의 정의가 얼마나 서구 중심이었는지를 지적한다.

그는 보편적인 하나의 정의가 존재한다는 믿음을 거부하며 종교를 역사적 산물로, 담론적 투쟁의 결과물로 보는 비판적 태도를 받아들인다.

그렇다고 모든 종교에 대한 정의가 불가능하다는 해체론적 결론에 만족하는 것은 아니다.

본질론과 해체론적 극단을 피해 비판적 현실분석에서 시사점을 제공해 줄 수 있는 새로운 개념 규정을 시도하고 있다.

그리하여 종교를 초월성과 권위를 구축하는 담론, 그 담론에 근거하여 세계를 형성해 가는 실천, 이 담론과 실천을 통해 개인과 집단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공동체, 그리고 이런 담론, 실천, 공동체가 만들어낸 전통을 감독하고 규제하며 지켜가는 제도 등 4가지 차원을 모두 포함하는 종교의 개념을 주장한다.

저자는 이러한 정의에 근거하여 9.11 사건의 핵심인물인 모하메드 아타가 소지했던 '지침서의 내용 및 구조'를 면밀히 분석하고 있는 것이다.

예컨대 이 책은 9.11을 야비한 비밀 공격이라며 일본의 진주만 공격과 연결 짓는 미국인들의 인식을 비판하고 공격자들의 의도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인다.

진주만 공격과 달리, 9.11 공격자들은 사람들을 죽이고 건물을 파괴함으로써 최후의 일격을 가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는 것이다.

9.11 공격자들의 목적은 자신들이 우월한 질서를 갖고 있음을 증명하려 했다는 것이다.

자신들의 힘을 상징적으로 보여줌으로써 적이 항복하고 그 문화와 질서를 받아들이도록 하기 위해 기획된 스펙터클한 사건이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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