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은 헝가리 출신 노벨문학상 작가 ‘임레 케르테스(Imre Kert eacute;sz)’ 가 쓴 ‘청산(淸算)’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내용은 이렇다.

동유럽 공산주의가 ‘청산’되고, 주인공 케세뤼가 다니던 출판사도 ‘청산’될 위기에 처했다.

케세뤼의 선조는 전쟁과 다양한 독재 시대를 겪으면서 '케셀바흐(Kesselbach)'라는 성과 인품과 영혼까지 ‘청산’ 됐다.

급기야 ‘B’ 라는 인물은 '홀로코스트(Holocaust)' 의 생존자로서 아우슈비츠의 트라우마(Trauma)의 상흔에 못 이겨 ‘존재의 청산’ 을 결심하게 된다.

주인공 케세뤼(Keser uuml 헝가리어로 ‘씁쓸한’, ‘쓴 맛’의 뜻)는 자살한 B의 9년 전 작품인 ‘청산’이라는 희곡을 찾아 헤맨다.

그런데 그 희곡의 주인공 또한 케세뤼이고 더욱 놀라운 사실은 B가 쓴 희곡의 내용과 현실의 케세뤼가 하는 행동이 일치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작품과 현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반복되면서 결국 둘이 동일 인물임을 아는 것이 작품을 이해하는 열쇠라고 할 수 있다.

주인공은 홀로코스트의 상흔에 못 이겨 존재의 청산(자살)을 단행했지만 결국 도플갱어인 또 다른 주인공을 살게 함으로써 과거를 청산하고픈 욕망과 삶에 대한 의지를 동시에 표현하고 있다.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쇼펜하우어적 염세주의(페시미즘 Pessimism)의 찬미에 있지 않다.

자살을 선택한 B는 살아 있는 자신의 또 다른 자아, 즉 자신의 도플갱어(Doppelganger)인 케세뤼에게 남긴 유작을 통해 강한 삶의 의욕만이 ‘존재의 청산’ 임을 웅변한다.

이 소설 제목인 청산은 새롭게 시작하기 위한 ‘청산’으로 ‘희망’과 같은 의미로 차용되었다.

작가 자신도 ‘운명’ 시리즈의 완결편이기도 한 이 소설을 통해 “이제 더 이상 홀로코스트에 관한 소설은 쓰지 않을 작정이다. 앞으로는 홀로코스트 이후의 세대를 이야기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B는 케세뤼가 내내 찾아 헤매지만 끝내 발견하지 못한 B의 걸작품이 바로 우리의 현실임을 말하고 있다.

우리가 현실이라는 이름을 사용하여 부르는, 우리에게 주어진 세계가 애매하기만 하듯이 작품 역시 애매모호하기만 하다.

세상이 그렇듯이 작품도 단편적이다. 그러나 세상이 또 그렇듯이 작품도 충분히 실감할 수 있는 내용이다.

비인간화 된 현대 사회도 수용소

근래 들어 스필버그 감독의 ‘쉰들러 리스트’나 ‘인생은 아름다워’ 등의 영화를 통해 홀로코스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한국인에게 아우슈비츠는 아직 그 공간적 거리만큼이나 낯설게 느껴지는 주제다.

하지만 독일을 비롯한 프랑스, 이탈리아 등 수많은 유럽 국가에서 홀로코스트는 현재 진행형이다.

협의의 아우슈비츠는 나치 만행의 역사로 국한시켜 버릴 수 있는 사건이지만, 광의의 아우슈비츠는 비인간적이고 반역사적인 세계사적 사건으로서 ‘결과가 원인에서 생기지 않고, 구제받을 수 없는 추악함으로 가득한 세상’을 가리킨다.

작가 케르테스는 사회적 힘과 폭력이 개인의 종말을 강요하는 시대에 인간이 어떻게 살아남고 사유할 수 있는지에 대해 파헤쳐 왔다.

그는 홀로코스트를 유럽의 통상적인 역사 바깥에서 일어난 예외적인 사건으로 보지 않고 근대를 살아가는 인간들이 빠질 수밖에 없는 타락의 극한적 모습으로 보았다.

21세기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언제고 일어날 수 있는 잠재력을 내재한 사건으로 규정한 것이다.

역사란 과거의 사실로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삶에 어떤 형식으로든 영향을 미친다.

우리에게도 청산하지 못한 과거가 있다.

조상들이 받은 혜택을 아직까지 누리고 있는 친일파 자손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며 항쟁했던 독립운동가 자손들의 궁핌한 삶….

이 작품은 과거사 청산 문제로 시끄러운 요즘, 우리에게 필요한 진정한 ‘청산’은 무엇인지 의미 있는 질문을 던져준다.

진정한 ‘청산’이란 무엇인가?

이 소설의 주인공 케세뤼는 ‘죽느냐 사느냐’라는 유명한 햄릿의 물음을 자신의 경우에는 ‘나인가 내가 아닌가’라는 물음으로 바꿀 수 있다고 했다.

이는 바로 우리 모두에게 아우슈비츠는 찾아올 수 있는 것이며, 우리는 모두 유대인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 것이다.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2003년 대구 지하철 참사를 겪은 이들과 이들의 가까운 친척들에게서 PTSD 증후군, 즉 외상후 스트레스성장애(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 증후군 현상을 발견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들의 고통은 단지 심리적인 현상일 뿐만 아니라 뇌 신경망의 변화에서 온다는 것이다.

깜깜한 절벽 같던 지하철 화재의 충격으로 밤낮없이 하루 24시간 환한 불빛을 켜 놓아야 안심이 된다는 대구 지하철 생존자의 말이 마치 B의 목소리와 겹쳐서 들리는 듯하다.

결국 아우슈비츠는 겪은 자들만이 관심을 가지는 대상이 아닌 바로 현실이라는 것이 작가 케르테스가 우리에게 던져 주는 평범하면서도 비범한 메시지다.

그동안 가벼운 흥미위주의 소설에 싫증난 독자라면 오랜만에 인간의 삶의 가치와 존재의 의미를 사색하는 시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작가 ‘임레 케르테스’

1929년 11월 9일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유다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1944년 15살의 어린 나이에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에 끌려가 참담한 경험을 하고, 1945년 독일 부센발트 수용소에서 풀려났다.

어린 나이에 수용소에서 겪어야 했던 참혹한 경험들은 그의 마음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겨 이후 수용소 경험은 그의 작품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1975년 나치의 강제수용소 체험을 다룬 소설 <운명>을 출간함으로써 세계적인 명성을 얻기 시작했고, 이어 <좌절>(1988)과 <태어나지 않은 아이를 위한 기도>(1990)를 발표함으로써 '운명' 삼부작을 완성하였다.

<청산>은 그 완결편이라 할 수 있다.

그의 작품은 모두 일관되게 20세기 유럽에서 벌어진 비인간적인 대학살의 만행을 주제로 다루고 있다.
2002년 노벨문학상 수상 이유도 나치 치하의 강제수용소 경험들을 절절한 언어로 생생하게 담아냈다는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노벨문학상 외에도 브란덴부르크문학상(1995), 라이프치히문학상(1997), 벨트문학상(2000)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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