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축제기간이라 해도 너무 심한 것 같다. 과 대표에게 수차 음성 녹음과 문자메세지를 보내도 응답도 없고, 또 과 대표가 사전에 한번쯤 연락이라도 해주는게 예의가 아닐까 생각된다.
아무리 생각해도 교육자인 내 자신이 초라하고 서글프기만 하다. 그래도 보고픈 너희들을 생각하며 나름대로 강의 준비를 해왔는데….
갑자기 시장끼를 느낀다. 아무튼 너희들을 빈 강의실에서 기다리다 되돌아가지만 이렇게 허탈감에 빠져 돌아가는 선생님의 심정을 과연 몇 사람이나 알까마는 주경야독(晝耕夜讀)하는 너희들이 측은한 생각이 드는구나.
아무래도 좋으니 다음 주에는 건강한 모습으로 꼭 만나는 즐거움의 시간을 갖게 되길 바란다."

이는 지난 주 모 대학에서 필자가 빈 강의실에서 학생들을 기다리다 지쳐 칠판 가득히 써 놓았던 학생들에게 쓴 편지 형식의 글이다.

이날 야간 강의를 위해 부랴부랴 학교에 도착해보니 마침 가을 축제가 벌어져 있는 게 아닌가.

축제가 벌어진 노천극장은 예외없이 학생들로 가득했고, 휘황찬란한 네온의 불빛이 어둠을 가르는 가운데 경연대회에 출전한 각 대학 응원단의 안무가 펼쳐지고 있었다.

한창 열기가 무르익은 분위기였다. 그런 분위기에서 과연 학생들이 강의를 들으러 올지가 걱정이 됐다.

시간이 이르지만 우선 강의실에 가서 기다리기로 하고 빈 강의실로 갔다. 강의실 밖은 여전히 어둠을 찢는 음악소리와 함께 열기가 극에 달한 학생들의 환호소리가 하늘을 찌를 듯 울려 퍼졌다.

이런 분위기에서는 수업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질 것 같지 않았다. 문득 과 대표에게 전화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시간은 되지 않았지만 과 대표와 연락이 되면 좀더 일찍 강의를 끝내줄 생각이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과 대표와는 연락이 되지 않았다. 심지어는 음성과 문자메세지를 남겼지만 강의 시간이 지나도록 과 대표의 연락은커녕, 학생들마저 오지 않는다.

집단으로 수업을 거부하는 학생들의 태도가 불쾌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내 자신이 어떻게 처신을 했기에 이런 상황이 벌어졌는가를 생각하니 얼굴이 화끈거리며 부끄러운 마음이 들기까지 했다.

텅빈 강의실을 떠나려고 하니 지금까지 혼자 앉아있던 자신의 몰골이 처량 맞기도 하고 분하기도 했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흔적을 남기고 싶어 칠판 가득히 편지를 썼던 것이다.

막상 다 쓴 글을 읽다보니 더욱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날짜를 썼다. 그리고 이제는 시간을 적어야겠다는 생각에서 시계를 보았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시간을 잘못 본 것이다.

강의가 시작되려면 아직도 30분이라는 긴 시간이 남아 있었다.

머쓱해진 나는 혼자 멋쩍게 웃으며 칠판에 쓴 편지를 지우고 학생들을 기다렸다. 한창 축제가 무르익었음에도 불구, 강의 시간 5분전부터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하더니 몇 분 사이에 뜨거운 열기가 채 가시지도 않은 30여명의 학생들이 홍조를 띈 모습으로 자리에 앉아있는 게 아닌가.

'그러면 그렇지' 필자가 순진하고 착한 학생들을 공연한 오해를 하면서 속을 끓인 생각을 하니 웃음이 절로 나온다.

학생들이 더욱 귀엽게 보이고 사랑스럽다. 강의를 시작하면서 학생들에게 방금 전 내가 오해를 하고 혼자 속을 끓였던 사실을 털어놓았다.

그리고 한줄 한줄 지울 때마다 학생들의 이름을 생각하며 미안하다는 말을 했다고 했더니 의외로 많은 학생들이 밝은 표정을 지으며 소리내어 웃는 게 아닌가. 그 모습을 보면서 내 마음이 한결 편해짐을 느꼈다.

사실 2학기 첫 강의때부터 이 '과' 학생들의 유독 웃음도 없는 무표정한 모습에서 부담을 느꼈고, 그것이 나를 무척 힘들게 했다. 그 때문에 다른 교수에게 상의까지 했던 학생들이었다.

그런 학생들이 소리내어 웃었던 것이다. 더구나 강의가 끝난 후 몇몇 여학생들이 출석을 확인하면서 앞으로는 결석도 하지 않고 열심히 나오겠다고 할 정도로 달라졌다.

하루의 모든 피곤이 모두 풀리는 것 같은 마음에서 다리의 힘이 빠진다. 돌아오는 전철안에서 마음속으로 "선생은 무슨 힘으로 사는지 아니?"라고 학생들에게 묻고 "그 힘은 너희들의 밝은 모습에서 생긴단다"라고 대답까지 했다.

자신감이 생긴다. "그럼 그렇지" 녀석들을 만나게 될 다음주가 무척 기다려진다.

논설위원 안호원(한국 심성교육개발연구원장. 교수. 시인)
저작권자 © 메디팜스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