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명절 덕분에 모처럼 한 가족이 모여 아내가 정성스럽게 준비한 음식을 먹으며 함박 웃음꽃을 피웠다.

특히나 지난해 출가한 큰딸과 아들 같은 사위가 과일과 횟거리를 갖고와 매운탕까지 곁들인 식사를 맛있게 했다.

어릴 때부터 총명하고 글짓기, 그림 그리기를 잘하며 부모에게도 공손했던, 그리고 대학도 전 학년 장학금을 받고 다닌 딸이 이제는 어엿한 주부, 며느리가 되어 명절이라고 친정을 찾아온 모습을 보니 감회가 깊고 참으로 대견스럽기까지 했다.

사실 시댁이 서울로서 지척간에 있으면서도 평일에는 물론, 주일이 되어도 출석하는 교회가 달라 다른 가족들과 달리 주말이라해도 서로 한자리에 모이기가 힘들었다.

명절이라 더욱 적적했는데 딸, 사위가 오니 방에 불을 지핀 것처럼 훈훈한 느낌이 들었다.

더욱이 큰딸이 시집을 가고 보니 친정 엄마가 더욱 생각나고 친정에 오면 엄마를 도와 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는 말이 내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아직도 내겐 어린아이처럼 보였는데 결혼을 하더니 제법 철이 든 것 같다.

오래 전 우연히 고등학생이던 큰딸의 방에서 딸의 일기장을 보게 되었다. 그 중 한 구절이 눈에 띄였는데 "나도 우리 아빠같은 신랑을 만났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흐뭇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누군가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에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 적이 있었다. 그런 딸이, 말하기는 쑥스럽지만 나 같은 신랑을 만난 것 같아 다행스럽다.

아들 같은 사위 역시 훌륭하신 부모님의 인품을 닮아 매사 예의가 바르고 착실하며 진솔한 크리스챤이기도 해서 믿음직스럽기만 하다.

어떤 때는 딸보다 사위가 그립고 보고 싶을 때도 있어 집에 오라고 할라치면 장모의 입장인 아내는 질색을 한다.

가정교육을 잘 받은 아내는 필자의 얕은 생각과는 달리 사위를 '만년 손님'으로 보고 식단 등을 소홀히 할 수 없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가족에게도 정성을 다하는 아내를 돕는답시고 간혹 설거지를 할 경우가 많은데 곧잘 엉뚱한 일을 저질러 아내를 당혹하게 만들기도 한다.

설거지를 하다 보면 아내가 반찬을 준비하기 위해 주방 싱크대에 나물이나 신김치를 갖다 놓는 경우가 있는데 그만 버리는 것인 줄 알고 음식물 쓰레기봉투에 버릴 때가 있다. 심지어는 닭도리탕을 하려고 언 닭을 녹이기 위해 내 놓은 것을 버린 적도 있다.

그때마다 아내는 누가 설거지를 하라고 했냐며 질색을 하지만 언제나 웃음바다가 되었고, 그때마다 난 난감한 표정으로 울상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또 대학 1년생으로 애교가 넘치는 둘째딸이자 막내딸은 큰딸과는 달리 아빠가 힘들어한다며 먹을 것을 갖다 입에 넣어주기도 하고 때론 어깨도 주물러 주는 효심을 발휘, 따뜻한 사랑의 보금자리를 느끼게 해주기도 한다.

작은딸은 항시 아빠가 오래오래 살아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흡족한 마음에서 이유를 물었더니 아빠가 오래 사셔야 자기가 맛있는 거 많이 먹고 여행도 다닐 수 있다며 철부지 같은 소리를 해서 아내와 나를 웃기기도 한다.

그런 막내딸이지만 우리 부부와 언니 내외가 함께 하는 자리가 되면 싱글을 자처하며 우리 두 쌍을 보면 닭살이 돋는다며 애교 어린 시기를 한다.

굳이 종교를 따지지 않아도 가족이 함께 하는 가정의 경우 하나님이 주관하시면 천국이 되고 마귀가 주관하면 지옥이 되는 것이다.

결국 천국 같은 가정에서 가족과 사랑을 나누며 행복감에 빠진 난 그런 가정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루를 산다. 그 같은 가족들이기에 26년 전 결혼 이후 아내를 비롯한 가족사진을 갖고 다닌다.

언제나 나와 함께 있다는 의미도 있지만 나 자신이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가족사진을 보면 위로가 되고 새로운 힘이 생긴다.

때로는 직장에서 분노가 치밀때나 운행중에도 가족사진을 보면 "내게는 부양할 가족이 있다"는 사실로 마음을 다스리기도 한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서로를 아끼고 위로하는 모습으로 살아가는 가족들이 있는 가정이라면 분명 그 가정은 천국이라 할 수 있다.

세상 삶 속에서 처음으로 평안과 위로를 주는 이도 가족이며 힘들고 괴롭게 하는 이도 가족이다. 늘 곁에 있어도 항상 그립고 생각만해도 가슴이 설레는 것이 가족인 것 같다.

오늘도 밝은 모습이 담긴 빛바랜 가족사진을 바라보며 내게 힘이 되어주고 위로해주는 가족과 그들을 내게 귀한 선물로 주신 하나님께 깊은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

논설위원 안호원(한국 심성교육개발연구원장. 교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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