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무엇과 같을까? 그것은 가난한 이들과 필요한 이들에게 다가가는 것이며, 그들의 불쌍함과 애처로움을 바라볼 줄 아는 눈(眼)이며 다른 사람의 한숨과 슬픔을 들을 수 있는 귀(耳)이다."
성(聖) 아우구스티노의 말이다.

요즘 사람들은 자기 중심에서 지독한 외로움으로 사랑받기를 절실히 원하면서도 그런 사랑의 나눔을 무척이나 꺼려하는 것 같다.

떡 먹듯 쉽게 헤어지는 아픔, 그로 인해 받는 상처의 아픔조차 무뎌진 것 같고, 또 그런 감정들에 얽매이지 않으려 한다.

더구나 요즘 21세기 정보화시대에 접한 젊은이들일수록 사랑의 현실 앞에서 쉽게 포기하고 좌절하기도 하며 사랑의 문을 굳게 닫아버리는 경향이 짙은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사실 우리 모두는 "우리 서로 사랑하자"라는 이 말을 밥 먹듯 쉽게 내뱉기도 한다.

'사랑'에 대한 그 필요성과 필연성은 누구나 인정하고 있다. 또한 그 사랑이라는 것이야말로 온 인류가 공통적으로 안고 있는 허다한 문제를 삭이는 묘약임을 알고 이 같은 사실을 그 어느 누구도 부인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 그 앎과 입에 바른 구호만 난무할 뿐 정작 그 사랑의 실천에는 별로 적극성을 보이지 않고 있다.

가톨릭 베네딕도회의 신부님도 "이 사회가 맑은 사회가 되려면 서로가 섬긴다는 자세로 임해야 진정한 사랑이 이루어질 수 있다"며 "물욕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사랑으로 채우되 이기적인 내 뜻 대신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더 많은 사랑을 베풀면 잃는 것과 비교도 안될 만큼 많은 것을 얻게 된다"고 충고하고 있다.

그러나 이처럼 많은 종교지도자들이 좋은 말씀을 안타까운 심정으로 말하고 있지만 어떤 연유에서일까, 이 땅에는 아직까지 진정한 봄이 오기엔 아직도 먼 것 같다.

누군가 "사는 것이 숨박꼭질 하는 것 같고, 그리고 보일 듯 보이지 않고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그런 게 인생"이라고 푸념하던 말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우리는 참으로 안타까운 삶을 매일 같이 계속하면서도 늘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한 채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정작 사는 즐거움을 모르고 소득과 소비의 경쟁에 에너지를 소모하며 파괴적인 삶의 패턴을 확대하고 있을 뿐이다.

인간은 혼자서는 살 수 없는 동물이다. 본능적으로 집단욕을 가지고 있는 고동동물이라고 말하는 학자도 있다. 인간이란 몇 살이 되든지 인간 관계 속에서 살고 싶어하는 것이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다.

불경에도 보면 "풀이나 나무는 총생(叢生)하면 잘 자란다. 그리고 채소나 곡식 또는 묘목도 밀식(密植)하면 웃자란다"고한다. 따라서 사람도 여럿이 어울려 서로 의지하고 사랑하며 살면 그 삶이 즐겁고 평화로우며 개인은 물론 조직이나 사회가 발전을 하는 가운데 밝고 맑은 사회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최근 들어 몇몇 지우(知友)들이 김, 과일 등을 보내오고 또 어떤 신도는 가방속에 봉투를 넣어둔 이도 있어 추석이 다가오고 있음을 실감케 했다.

모두에게 고마움을 표하면 한결같이 평소에 잘해주었기 때문이라고 말을 한다. 또 어떤 역경에도 불구, 좌절하지 않고 열심히 사는 모습이 보기에도 좋다고 했다. 선물을 받는 기쁨도 있지만 무엇보다 그런 말들이 가슴에 깊이 와 닿는다. 특히 아내에게 인정을 받는 것 같아 더욱 흐뭇해진다.

받는 즐거움도 있지만 주는 즐거움 또한 크다. 찌든 삶일지라도 가끔가끔 자신을 돌이켜보며 무지와 탐욕에서 벗어나 깨달음과 상생(相生)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하는 말처럼 하나님이 창조하신 대자연의 삶을 통해 이웃을 섬기며 진정한 사랑을 나누고 베푸는 따뜻한 추석 명절이 되었으면 좋겠다.

논설위원 안호원(한국 심성교육개발연구원장. 교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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