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주 월요일 오후 6시 모교 앞 식당에서 임원회의 개최키로 했습니다. 예약 관계로 참석 여부를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또는 "8일 동문 모친 별세. 중앙장례예식장. 발인 10일 오전 8시."

이는 최근 핸드폰에 들어온 문자메시지 내용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편이나 팩스를 통해 받아 보던 문화였다.

또한 지척에 있음에도 불구, 만나서 음성으로 의사를 전달하기보다는 이처럼 쉽고 편한 방법으로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고 또 회답을 하는 편한 세상이 되어 버렸다.

이런 것이 이른 바 정보화 시대를 살아가는 요즘 우리들에게 한참 성행하는 커뮤니케이션 방식이다. 그러나 이런 문명의 발달에도 불구하고 한편으로는 많은 아쉬움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지구상에서 존재하는 수많은 생명체들 가운데 가장 수다스럽고 시끄러운 것이 어쩜 우리 인간인지도 모른다.

식물이야 말할 것도 없지만 '우는 것'이 고작인 다른 동물들에 비해 우리 인간은 울고, 웃으며, 말하고, 흉을 보고, 떠들며, 지껄이고, 노래하는 매우 시끄럽고 수다스러운 존재라 할 수 있다.

그런 수다스럽고 시끄럽던 인간의 목소리가 최근 들어 점차 줄어들면서 언어의 감정들을 잃어가고 있다. e-메일과 팩스, 그리고 휴대전화의 문자메시지가 사람의 육성을 대체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변화가 어제, 오늘에 비롯된 것은 아니지만 인쇄술의 발전과 함께 눈부신 정보혁명이 가속화되면서 21세기는 전통적인 방식의 면대면(面對面)으로 대화를 하던 수고로부터 해방된 'e-편한 세상'으로 변하고 있다.

이 부분에서 필자가 우려하는 것이 바로 탈(脫) 음성 사회의 어두운 그늘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가깝게 만드는 것은 무엇보다 얼굴을 맞대고 나누는 육성(肉聲) 대화라 할 수 있다.

목소리는 한 개인의 정체성을 담아내는 용기(容器)이자, 그것을 드러내는 창구이기도 하다.

음색(音色)을 구분할 수 없는 팩스, 성량의 높낮이를 알 수 없는 문자메시지, 구취(口臭)를 전달할 수 없는 e-메일로써 과연 우리가 '따뜻한 e-세상'을 기대하며 살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앞선다.

더구나 인간의 삶은 꼭 필요한 뜻과 생각만 주고 받으며 살 수 만은 없는 존재다. 인간관계에서 면대면, 육성 대화가 줄어든다는 건 인간과 인간 사이에 소외와 고립이 증가함을 뜻하는 것이다.

영국의 커뮤니케이션 학자인 존 로그는 이 같은 탈 음성시대의 궁극적인 종착역은 자폐증 사회라고 한탄한다.

문명의 편함으로 인해 대인 교섭을 싫어하며 자기만의 세계에 틀어박혀 안주하는 시대가 도래하면서 우리 인류 전체가 비극의 종말을 맞게 된다는 지적이다.

이제는 컴퓨터가 없으면 모든 일들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일반화되어 있다. 덕분에 우리 인간은 점차적으로 서로가 대화하는 능력 자체와 감정을 상실해가고 있는 것이다.

이와 함께 핸드폰 역시 우리의 입과 귀의 전통적 기능을 목하 심각히 퇴화시키는데 일조하고 있다.

특히 입과 귀의 주된 용도로 사용되던 '대화'를 위한 것에서 탈피, '통화'만을 위한 기구로 전락해 버렸다. 대화는 사라지고 통화를 위한 문자가 늘고 있는 세상으로 변하고 있다.

이제 다음 주 말(末)이면 한가위, 추석이다. 이 때만이라도 모처럼 만난 가족, 친지, 그리고 친구들과 이웃사촌 면대면으로 감정이 담긴 자신의 목소리로 대화를 나눠보자.

그리고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하는 마음으로 보름달을 쳐다보며 무엇 때문에 우리가 인간의 소리를 듣는지, 또한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지를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그러나 이 때는 e-메일이나 휴대전화는 아예 잊어버려야 한다.

컴퓨터도 끄고, 휴대전화도 아예 끄고, 그저 문명을 벗어 던지고 자연인의 마음으로 바라보며 생각해보자.

논설위원 안호원(한국 심성교육개발연구원장. 교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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