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하면 우리가 지혜로운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을까? 또한 인생이란 과연 무엇인가?

철학자가 아니라도 이 같은 문제들을 놓고 많은 이들은 고민을 하며 자기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기도 하지만 명확한 답을 얻지는 못하는 것 같다.

그런 뜻에서 보면 지식 유무를 불문하고 모든 이들이 시대를 초월해 갖는 철학적 질문인 것 같기도 하다. 어쩌면 그렇게 자신의 삶에 대해 번뇌하는 모든 인간은 철학자 일 수도 있겠다.

그러므로 너나 할 것 없이 그 같은 철학적 사고를 통해 일상생활의 의미나 인식을 더 깊이 할 수 있고, 진정한 삶, 보다 행복한 삶을 살면서 사회 발전에도 기여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흔히 사람들은 인생을 이야기 할 때 연극에 비유하기도 한다. 배역에 따라 부귀영화도 누릴 수 있고 때로는 괴로움에 시달리는 역할을 맞게 된다.

또한 주인공이 되기도 하고 조연, 엑스트라의 역할도 하면서 팀의 구성원으로서의 조화를 이루는 등 전체의 균형을 맞춰간다.

사실 인생도 이 같은 드라마와 같이 비슷하다. 어떤 역할을 하느냐에 따라 인생의 희비가 엇갈리는 삶을 살게 된다. 따라서 어떤 배역이 주어지느냐에 따라 지혜롭게 사는 삶, 성공의 삶을 사는지를 알게 되는 것이다.

결국 내가 어떤 배역을 맡고 어떤 역할의 주인공이 되느냐에 따라 행·불행의 인생이 선택되고 성공과 실패의 삶으로 갈라지는 인생을 살게 된다.

사람들은 인생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고심하며 때로는 친구와 밤을 새워가며 토론을 하기도 하면서 어떻게 하면 가치 있는 삶, 소중하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하고 명상에 잠기기도 한다.

실제로 동서고금의 성인들의 가르침과 명상에 관한 책들은 심신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잠시나마 자신을 돌이켜 보며 생각을 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기도 한다.

일례로 "그 사람은 참 지혜로운 사람인 것 같아"라고 할 때 우리는 그 상대가 전문적인 지식이 많고 박사거나 유식한 사람이라 해서 그런 말을 하지는 않는다.

사전에서 '지혜(智慧)'라는 단어를 찾아보았다. 첫째, '사물의 도리나 선악 따위를 잘 분별하는 마음의 작용'이라고 했고, 둘째는 불교에서 미혹(迷惑)을 끊고 부처의 진정한 깨달음을 얻는 힘을 이르는 말로 정의를 내리고 있는데 여기에서 지혜로운 사람은 첫 번째, '선악을 분별하는 마음의 작용'을 지칭하는 것이다.

즉, 세상 이치를 올바르게 깨닫는 마음의 능력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랬기에 많은 것을 안다고 해서 항상 바르게 이해하고 깨닫는다고 볼 수는 없다.

아울러 어떤 한 사람이 학식이 많고 유식하다해서 그것을 항상 행동으로 옮기는 것도 아니다.

인간이란 언제나 사고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무엇인가를 알고, 또 이해하고자 하는 욕구를 갖게 되고 그런 욕구는 본능적이라 할 수도 있다.

철학적인 의미로 볼 때 지혜(Sophia)는 사물을 그것의 최고 원인에 의해서 알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진리와 관련한 모든 원리와 결론에 대해 종합적인 지식을 의미한다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지혜는 사변적(思辨的)인 것을 뛰어 넘어서 체험적이고 실천적인 의미도 갖고 있다. 따라서 지혜는 모든 인간의 기본적인 관심사이기도 하다. 그 이유는 사고를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어리석고 미련하게 살지 않고 지혜롭고 슬기롭게 살기를 원하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의 지식이란 어찌 보면 참으로 편협하고 하잘 것 없는지도 모르겠다.

성인들의 경우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그 분의 은총이 사람의 인식과 깨달음의 기초가 된다고 생각해왔다.

흔히 사람들은 어떤 일에 있어 이해하고 나서 믿음을 갖게 된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오히려 '믿음'이 '이해'나 '지식'보다 앞서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행동으로 실천한 이들도 많았다.

성경에 보면 "야훼를 두려워해 섬기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이를 깊이 하는 것이 슬기이다"라고 기록, 지혜로운 사람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이는 인간의 참다운 삶이란 최종적으로 인간의 태도에 달려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인간 스스로가 결정한 선택이 행·불행을 결정 짓는 것이다.

물론 이 같은 인과응보의 가르침은 단순히 경고와 견책의 차원은 아니라고 본다. 오히려 인간으로 하여금 자신 앞에 놓여 있는 기회를 포착하여 잡도록 가르쳐 주는 절대자의 호출이라고 생각된다.

호출을 받은 후 응답을 하는 것은 인간인 우리의 몫이다. 따라서 우리가 지혜로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서로 각자가 선하고 책임성 있는 삶을 살아가며 뜻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확신의 믿음 안에서 사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래야만이 일상생활의 의미나 인식을 더 깊이 음미할 수 있고 진정한 삶, 보다 더 나은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논설위원 안호원(한국 심성교육개발연구원장. 교수. 시인)
저작권자 © 메디팜스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