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일이 얼마나 많기에 집에 와서까지 글을 쓰세요?"
"당신, 나이 좀 생각하고 일찍일찍 잠 좀 자요"

작은딸과 아내가 늦은 시각 새벽까지 원고지와 씨름하는 내 지친 모습을 보고 걱정스러워 하는 말이다.

평일에는 이른 아침 빛바랜 검정가방을 들고 출근해서 밤늦게 파김치가 돼서 귀가를 하고도 부족해 밤을 잊은 사람처럼 컴퓨터 앞에 앉아 연재한 칼럼을 클릭하는 등 검색을 한다.

또한 주말이면 강의 준비를 하다보니 하루도 편히 쉬는 날이 없을 정도로 피곤함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러다보면 가족들과 대화는 물론, 식사도 함께 하는 시간이 없을 정도다.

물론 과거 현장을 뛰는 기자생활을 할 때보다는 집에서 식사를 하는 횟수가 늘기는 했지만 거의 혼자 하는 식사가 되어 버렸다.

문득 '집'은 '잠만 자러 들어오는 곳'이 아니란 아내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착각속에서 정신이 번쩍 든다.

필자를 비롯한 대다수 남자들의 경우 '가정'과 '사회'라는 두 개의 틀 안에서 다람쥐 쳇바퀴 돌 듯하며 일상(日常)의 생활을 하고 있다.

누구든 어느 한 쪽에만 마음을 두고 신경을 쓸 만큼 여유를 갖지 못한 채 쫓기는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게 된다.

필자 역시 사회 조직원의 한 일원(一員)으로서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고 가족들과의 균형관계에서도 다소간의 아픔과 희생을 감당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아울러 어떤 성취감을 맛보기 위해 피곤도 잊고 밤잠을 설치다보니 코피를 쏟기도 하지만 항상 가족에게는 미안한 마음을 갖지 않을 수가 없다.

문득문득 회의감과 함께 외로움을 느끼면서도 이렇게 꾸준하게 글을 쓰다보면 좋은 결과가 나오고 또 가족관계가 원만해질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어제(3일) 새벽녘에 눈을 뜬 나는 순간적으로 아내와 둘째딸에게 "'마석기도원'엘 가자"며 "APT에 두고 온 차(車)를 가져오겠다"고 했다.

예상대로, 생각지도 않게 잠을 설친 딸은 칭얼대고 아내는 아내대로 "이렇게 일방적인 통보식으로 말을 하면 어떻게 하냐"고 강한 불만을 털어놓았다.

순간 당혹하기도 하고 피곤도 해서 그만둘까 하다 차를 가져왔더니 순순히 따라 나섰다.

부흥사의 설교는 물론이거니와 점심식사 이후 교우들과 한데 어우러져 농담도 하고 웃기도 한 시간들이 너무 즐거웠고 기억에 남았다.

특히 저녁식사 후 아내와 딸이 열심히 경청하며 복음찬송가도 부르고 박수를 치는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게 보일 뿐만 아니라 감사한 마음이 들기까지 했다. 이는 온 가족이 함께 신앙을 갖지 못하는 것에 비해 여간 다행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상외로, 갈 때보다는 서울로 올 때가 차가 훨씬 덜 막히는 것 같았다. 작은딸이 축 처져 늦게 들어온 나의 오른쪽 어깨를 주물러 주면서 비위를 맞춰주고 또 아내는 냉커피를 갖다 준다.

늘 그랬듯이 따뜻함으로 날 받아주고 생각해 주는 가족과 가정이 있기에 난 그저 행복하기만 하다.

어느덧 잠든 아내와 작은딸의 포근한 모습을 보며 조용히 그들의 건강을 기원하는 기도와 함께 복음성가를 흥얼거려 본다.

"비바람이 갈 길을 막아도 나는 가리/ 주의 길을 가리/ 눈보라가 앞길을 가려도/ 나는 가리/ 주의 길을 가리/ 이 길은 영광의 길/ 나는 가리라/ 주의 길을 가리라/ 주님 발자취 따라/ 나는 가리"

또 바보처럼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논설위원 안호원(한국 심성교육개발연구원장. 교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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