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안기부 특수도청팀 '미림'의 팀장인 공운영씨가 자신의 심경과 도청 테이프를 유출한 과정을 밝힌 자술서 내용을 보면서 얼마전 모 단체의 사건이 어렴풋이 떠오르며 전율을 느낀다.

이 세상에는 영원한 비밀도 없을 뿐더러 인과응보(因果應報)가 반드시 뒤따른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단체에서 언론과 홍보책임자로 열심히 십여년 가까이 근무했던 친우가 몇몇 젊은 이사들의 농간에 말려 곤혹을 치르는 가운데 회장이 새로 선출되면서 직장을 잃어야만 했다.

우유부단한 신임 회장은 단지 그들의 말만 듣고 오랜 세월 친분을 갖고 있던 그 직원을 무참히 토사구팽(兎死狗烹) 시켜버린 것이다.

신임 회장과 의욕을 갖고 새로운 청사진을 펼치던 그에게는 청천벽력 같았단다. 결국 억울하고 분한 마음에서 1급에 해당하는 4BOX 분량의 각종 자료를 갖고 나왔다고 한다. 때론 일간지에 폭로를 할까도 생각했다고 한다.

그런 그 친우가 자신을 모함했던 젊은 이사들이 주동이 되어 이번에는 그 단체회장을 무능하다며 몰아내려하자 원로나 일반 회원들에게 그 회장을 변론하며 다녔다.

그 친우의 사정을 아는 주위 분들이 아픔을 준 그런 회장을 왜 두둔하느냐고 할 때면 "똑 같은 사람이 되고 싶지 않고 외롭고 어려울 때일수록 외면을 해서는 안된다"고 했단다.

그런 친구의 노력에도 불구, 그 회장은 최근 열린 임시대의원 총회에서 불신임을 당해 그 자리를 내놓아야하는 아픔을 당해야만 했다. 물론 그 회장 역시 배신감을 느꼈을 것이다.

지금에 와서 무슨 말을 해도 소용이 없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순간의 이(利)를 추구하기 위해 남이 갖게될 아픔의 상처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결국 '자업자득'이라며 이미 자기는 그 회장을 용서한 지가 오래라고 했다. 과거의 좋은 관계만 생각하기로 했다고 독백식으로 말하며 멋적게 웃는 그의 모습이 존경스럽게 보이면서도 무척이나 쓸쓸해 보였다.

직장을 그만둔 후 상당히 힘들어했던 그였기 때문이다. 원망이 뿌리를 내린 인생이라면 결코 그 인생은 행복할 수 없다.

이는 과거의 상처와 아픔을 마음에서 지우지 않고는 정녕 자신이 원하는 행복한 삶을 얻을 수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성경에도 보면 이 같은 용서의 힘을 통해 내 자신의 아픈 상처를 치유하고 죄책감에 시달리는 저들을 자유롭게 해줌으로서 모두가 함께 기쁨속에서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이야기가 많이 언급되고 있다.

굳이 성경을 인용하지 않아도 먼저 용서할 수 있다는 그 마음은 어쩜 대단한 용기일 수도 있겠지만 용서를 함으로써 마음은 고통에서 벗어나 자유로워 질 수 있는 것이다.

살다보면 때로는 누군가를 미워하며 원망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자신의 감정을 억제치 못한 채 괴로운 나날을 보낼 때도 많이 있다.

그러나 어린시절 믿고 사랑했던 형제들로부터 배신을 당해 애굽으로 팔려가야만 했던 요셉이 그 이복 형제들을 무조건 용서하듯 우리도 그 같은 마음으로 용서를 해야 한다.

아직도 우리 마음에 미워하는 사람이 있다면, 후회하고 있을지도 모를 그를 용서하고 사랑을 베풀며 나누는 우리가 되자.

안기부 특수도청팀장의 행위를 보면서도 알 수 있듯 용서를 하지 않을 경우 독성(毒性)을 뿜고 있는 자신도 고통스럽지만 또 다른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아프게도 할 수 있다. 복수는 복수를 낳을 뿐이다.

이제라도 마음속의 분노를 꺼내서 작렬하는 태양빛에 녹이며 용서를 하자. 용서는 사랑의 다른 모습이다. 사랑을 아는 사람은 용서를 할 줄도 안다.

나 자신을 위해서도, 모두를 위해서도 사랑하는 마음과 함께 용서하는 여유를 갖자.
100번씩 10번이 될지라도….

논설위원 안호원(한국 심성교육개발연구원장. 교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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