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문화가 선진국의 문화를 뛰어 넘어 앞질러 가는 것 같은 데 교통문화는 여전히 후진국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특히 APT 등 주차장에서 주차하는 것을 보면 그 같은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을 정도다. 다른 사람의 차가 어떻게 주차를 해야하는지는 염두에 두지도 않는 것 같다.

오직 내 차만 세워놓으면 그만이다. 그래서인지 조금만 신경을 쓰면 차선에 주차를 잘 할 수가 있고 그렇게 되면 또 다른 차가 주차 할 수 있음에도 불구, 비스듬히 놓거나 어중간의 선에서 주차를 하다보니 두 대가 설 수 있는 곳에 한 대가 독차지하고 있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또 주차를 하는 과정에서 차를 긁거나 찌그려 놓고도 시침을 떼고 달아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그리고 좁은 아파트 도로 옆에 아무렇게나 세워 다른 차는 물론 사람들까지도 다니기 불편하게 하고 있다. 양심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사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 같다.

오늘 일만해도 그렇다. 아침에 출근 준비를 하려고 차가 있는 곳으로 갔다. 깜짝 놀랬다. 어젯밤 주차를 시킬 때만해도 멀쩡했던 앞쪽을 누군가가 긁고 지나간 것이다. 이 정도라면 느낌이 왔을 텐데 그냥 달아난 것이다.

손으로 긁힌 곳을 문질러보니 페인트가 묻어난다.

같은 아파트에서 더구나 차량에 전화번호와 동수가 기록되어 있음에도 불구, 시침을 떼고 돈 몇 푼에 양심을 팔아버리는 것 같다. 벌써 근래들어서만도 세번째다. 짜증도 났지만 솔직히 우리의 교통문화가 이 정도인가를 생각 할 때는 안타깝기도 했다.

며칠 전 일이다.

퇴근 후 날도 후덥지근해서 TV 앞에서 드라마를 보느라 정신이 없는 아내와 딸을 달래 날도 더운데 드라이브나 하자며 데리고 나온 적이 있다.

강변을 달리면서 바라다보이는 야경은 그야말로 금상천하 천만불 짜리 야경이다. 재미있는 금순이, 삼순이가 나오는 드라마를 보지 못해 뾰루퉁해 있던 아내와 딸의 표정이 밝아지는 것 같다.

이웃집 아줌마가 몇 년을 떨어져 살다가 귀국한 자기 남편 자랑하는 것을 목소리까지 흉내내며 그 작은 입술을 잠시도 가만두지 않고 떠들어댄다. 신이나서 떠들어대는 그런 아내의 모습이 마냥 행복해 보이면서도 측은해 보였다.

작은 딸 역시 기분이 풀어졌는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따라 콧노래를 부르고 있다. 아무튼 나올 때보다는 기분들이 상당히 풀어진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살포시 오른 손으로 아내의 손을 잡았다. 무척이나 따뜻했다. 순간 "아~빠아, 두 손이 핸들로 가 있음 좋겠네유" 하는 딸의 소리가 들려왔다. 아내가 민망한지 손을 빼며 "에그에그 저 못된 것..." 하며 하얀 이를 내보이며 웃는다.

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강변도로에 차들이 별로 없는 게 오히려 음산할 정도로 한산했다. 잠실 운동장을 지나 시내 길로 접어들었다. 넓은 대로(大路)를 벗어나 아파트 단지 길로 접어들었다.

한산한 거리를 달리며 신호등이 바뀌는 모습을 보면서 문득 유럽에 취재를 나갔을 때가 생각났다.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는 도로에서도 신호등을 지키는 저들의 준법 정신이 떠 오른 것이다.

이런 생각에 미치자 난 속도를 줄이며 신호등 불빛에 따라 서기도 하고 달리기도 하며 나 라도(필자) 준법 정신으로 교통 질서를 지켜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주행을 하고 있는 데 빨간 불이 켜진다.

정지선에 정지를 하고 있는데 어느 새 왔는지 뒷차가 하이라이트를 깜박인다. 백미러로 비치는 불빛이 눈을 부시게 했지만 빨간 불이라 가만있었더니 급기야는 뒷차가 옆에 바짝 붙어 차 문을 열고 "왜 안가냐" 고 육두문자를 써가며 고함을 지른다.

빨간 불이라 안간 것인데, 화가 치미는 것을 억지로 참으며 신호등이 안 보이냐고 하는 찰라 신호등이 바뀌면서 그 차가 내빼듯 달려나가면서 사태가 일단락 되었지만 한편으로는 서글픈 생각까지 들었다. 적반하장 격으로 오히려 욕을 하면서 모처럼 신호를 지키려는 내 마음을 무참하게 깨버렸다.

쫓아가려는 눈치를 알아차린 아내가 만류한다. 딸도 무섭다며 빨리 집으로 가자고 난리다. 모처럼의 '가족 나들이'의 기분을 여지없이 뭉개버렸던 것이다.

거리에 나가보면 그런 군상들이 아직도 많은 것 같은 착각에 빠질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이제는 우리도 다른 모든 문화가 선진화 된 것처럼 교통문화에 있어서도 우리 모두가 관심을 가져야 할 때다.

그 같은 관심속에서 주차를 할 때도 남을 배려할 줄 아는 마음으로 교통문화를 향상시키는데 앞장서는 우리 국민들이 되었으면 한다.

논설위원 안 호 원 (한국 심성교육개발연구원장. 교수. 시인)

저작권자 © 메디팜스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