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본질은 육체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면 속에 있는 것이다. 아울러 이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을 지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오."

'죄와 벌'을 쓴 대문호 톨스토이의 말이다.

톨스토이는 노년에 인간 내면의 본질적인 문제에 지대한 관심을 갖는 등 사회적 죄악(罪惡)에 대한 속죄(贖罪)를 기본 전제로 모든 인간은 사랑을 바탕으로 선(善)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 같은 선은 오직 진리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가치라고도 했다.

인간은 본능에 이끌려 사는 존재라 할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생각을 할 줄 아는 존재이기도 하다. 이것이야말로 사람과 동물을 구별하는 중요한 차이라 하겠다.

육체적 본능에만 이끌려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하등 동물과 다를 바 없다. 반면에 바른 생각을 하고 그 생각에 따라 사는 사람이라면 그 삶 자체도 가치있는 바른 삶을 영유할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그런 사고와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인간의 성품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사실 먹고 입고 사는 것, 단지 '의식주(衣, 食, 住)'만 해결하는 본능적 생활로 본다면 어느 누구든 가릴 것 없이 대동소이(大同小異)하다.

차이가 나는 것은 그 사람의 생각이며 그런 생각을 갖게 하는 교육이다. 그런 교육을 바탕으로 인간됨의 가치 기준이 달라진다 할 수 있다.

어떤 사고를 갖고 관심을 어디에 두고 사느냐에 따라 삶의 가치관이 달라지며 인생의 목적이 설정되는 것이다.

지혜롭지 못하고 미련한 사람들은 타조와 같은 삶을 산다. 타조형의 사람들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즐거움을 찾아 인생을 만끽하며 단 몇푼의 지폐를 더 얻기 위해 혈안이 된다.

타조는 지상에서 가장 크고 빨리 달리는 조류에 속하지만 날지 못해 전방 일정거리만 볼 수 있어 저 멀리 낭떠러지나 함정이 있는지도 모른 채 달려만 간다.

아울러 뒤돌아보지도 않고 옆을 보지도 않아 거시적인 안목이 없다.

이 세상에는 그런 타조형의 사람들이 너무 많다. 그래서 남을 생각하고 베풀기보다 자기의 작은 이익을 위해 목에 생선가시가 걸려 고생하는 일을 자초한다.

지난 27, 28일은 필자가 출강하는 대학의 학기말 시험을 치르기도 한 날이다.

3월초 입학할 당시 서먹해하고 분위기마저 썰렁했던 강의실 분위기가 사뭇 달라졌다. 시간이 지나면서 정(情)이 든 탓일까, 종강 때가 된 탓일까. 학생들의 태도가 많이 달라져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지나가다 달려와 아는 체를 하는 녀석들이 있는가 하면, "교수님, 차가 중고차 같은데 저희들이 취직하면 새 차 사드릴께요" 하던 녀석들, 강의실에 들어가면 "교수님, 보고 싶었어요!" 하며 천진한 모습을 보이던 그들, 또 조리과에서는 요리실습하면서 만든 음식을 먹어보라고 갖다 놓는 녀석들, 더구나 가슴을 찡하게 만드는 것은 시험지 아래 깨알같은 글씨로 감사의 글을 적어 논 것이 많다는 사실

특히 여기에서 보람을 느끼는 것이 있다면 바로 교육이고 이 같은 교육을 통해 지각을 갖고 있는 인간이 지혜로움으로 옳고 그름을 구분하며 의미있는 삶, 보람있는 삶을 살아가게 된다는 사실이다.

톨스토이의 말이 아니라도 삶의 본질은 육체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면속에 있다는 것과 이 세상은 잠시 스쳐지나간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어리석은 일에 마음을 쓰고 탐욕으로 애를 태우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이왕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라면 좀 더 좋은 삶, 의미있는 삶을 추구하며 사람이 사는 것처럼 사는 법을 배워 사람답게 사는 세상이 되었으면 한다.

논설위원 안호원(한국심성교육개발원 원장, 교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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