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 들어 우리나라 사람들이 즐겨 쓰는 말 중에 하나가 개혁이라는 말인 것 같다. 아무나 함부로 이 말을 쓴다. 특히 정치인들이 무척이나 좋아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정권이 바뀔 때 마다 ‘개혁’(改革) 소리가 안 나온 적이 없는 것 같다.

역대 대통령들도 개혁이라는 말을 즐겨 사용했고 또 노 대통령이 이끄는 참여정부 역시 국정의 키워드가 바로 개혁이란 단어였다. 덕분에 정치, 경제, 행정, 교육, 금융, 심지어는 노사 까지도 개혁이라는 단어가 남용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다.

오죽하면 개혁공화국이라 할 정도로 사방에서 개혁, 개혁 하는 소리가 나온다. 그만큼 모든 곳이 썩었다고 할 수도 있지만 ‘남이 장에 가니까 나도 간다’는 식이다. 그러나 이처럼 즐겨 사용하는 개혁이 국가든 단체든 성공했다는 소리를 별로 들어 본적이 없다.

개혁은 급변하는 변화를 의미한다. 즉 기존의 법과 제도와 관행과 의식을 고치는 게 바로 개혁이다. 개혁의 뜻은 정치, 체제나 사회제도 등을 합법적, 점진적으로 새롭게 고쳐나가는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이를 위해 살생(殺生)의 피를 흘려야 하는 무서운 단어이다. 개혁을 부르짖으면서도 개혁이 얼마나 무섭고 어려운지를 모른다는 사실이다.

‘못 먹는 밥에 재 뿌리기’ 가 아니다. 개혁이 실패하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새로운 변화와 개혁을 위해 분연히 일어섰던 4.19세대, 또 정의로운 사회, 부정부패 없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허언장담하며 정치판에 뛰어든 유신세대들도 있었고 또 진보주의를 자처하며 좋은 세상 만들겠다고 엊그제 정치판에 나선 젊음의 386세대들이 있다.

그러나 혼란만 가중될 뿐 ‘그 나물에 그 밥’ 이었다. 지금도 그 같은 무리들이 저마다 개혁을 외치면서도 1970년대 김지하의 소설 속의 ‘오적’ (五賊) 이 되어 우리 주위를 맴돌고 있다. 있는 것이다. 차라리 그 같은 존재들이 없었더라면 덜 실망스럽고 기대조차 같지 않았을 것이다. 아울러 절망도 없었을 것이다.

아울러 그들을 냉소하는 국민들을 함부로 비웃을 수는 없다. 내가 내 자신을 먼저 변화시켜야 그것을 보고 가족이 변화되는 법이다. 자신은 그 틀 안에 있으면서 입으로만 변화와 개혁과 정의를 부르짖는다는 건 모순이다.

내가 변화되지 못하면서 남에게만 변화를 요구하는 것은 무리이다. 그 같은 변화를 지금 한의협이 하고 있다. 개혁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안다면 함부로 개혁이라는 말을 꺼낼 수 없듯 변화라는 건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니고 지도자 한 사람을 바꾼다고 해서 이뤄지는 게 아니다.

남이 하니까 우리도 한다는 대세에 묻혀 젊음을 자처하는 한의협 신세대 대의원들이 기어코 큰일을 저질렀다.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야 하거늘 혈기만 갖고 거시적인 안목으로 보지 못하는 우(愚)를 범 했다. 원로와 선배들의 충고도 아랑곳없이 신중함을 기하지 않고 일부 계층에 말려 깊은 수렁으로 빠지는 결과를 초래했다.

지금 그들은 승리감에 도취되었는지도 모르지만 자멸의 늪을 자처했고 비극의 시작이다. 음식의 경우도 뜸이 들려면 시간이 필요하듯 정책도 마찬가지다. 역사의 판단은 지금 하는 게 아니다. 잘잘못은 먼 훗날 우리가 떠난 후에 남은 자들이 하는 것이다. 지난 93년 한약분쟁으로 힘없고 알려지지도 않은 한의사회를 이끌며 혈혈단신으로 혁혁한 공을 세웠던 허창회 전 회장도 96년 한의대생들의 유급사태

이어 학자 출신인 문준전 회장 마저 농협과의 국산한약재 직거래와 관련, 전임 집행부에 대한 구상권 문제로 야기된 한의협 내분을 해결하지 못한 죄로 한의 쿠테타에 말려 해임을 당하더니 결국 안재규 회장 역시 지난 18일 밤 열린 임시대의원 총회에서 쓰디쓴 아픔을 당하며 떠나야 하는 비운의 주인공이 됐다. 배신감으로 허탈해져 있을 안 회장도 지금 이 순간 많은 것을 느끼며 자신이 저지른 행동 등에대해 자숙하며 후회를 할지도 모른다.

적어도 지도자라면 사람을 잘 쓰고 귀를 넓게 하여 많은 소리를 듣되 얇은 귀가 되어서는 안 된다.

안 회장은 몇 해 전 김 모 회원과 함께 부회장 후보로 출마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도 일부 몰지각한 L. J. K 대의원들의 어리석음으로 후보사퇴를 하는 등 깊은 상처를 입은 적이 있다.

기왕 새 그릇을 원한다면 현 집행부도 전원 교체해야한다. 그들도 회장을 잘못 보필한 죄를 물어야 한다. 누가 회장이 되던 간에 회원들이 여망하는 개혁과 변화는 쉽게 오지 못한다. 그러면 또 성급한 대의원들이 회원들의 원성을 핑계로 또 다시 자기들이 뽑은 회장을 불신하며 탄핵을 할 것인지를 다수의 어리석은 대의원들과 일부 부화뇌동하는 회원들에게 묻고 싶을 정도다. 한의협이 그런 수준이다.

필자가 분노하는 것은 안 회장을 두둔하기 때문이 아니고 이번에도 현 임원들이 거사에 참여하는 등 뒤에서 여론을 조성하며 바람을 일으켰다는 사실이다. 마치 제 2의 ‘한의 공화국’ 을 보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킬 정도다.

이제 화살은 이미 날아갔다. 그리고 모두에게 깊은 상처를 만들었다. 바라건대 새로운 지도자는 인재를 잘 골라 쓰되 안일한 사고로 있는 사무처와 편집국 직원인사를 과감히 단행해야 한다. 그 길만이 한의협이 개혁하는 일이고 살길이다. 그렇지 않고는 한의협이 변화 될 수 없다. 더러운 그릇에 새 물을 붓는 격이 되어서는 안 된다. 기왕 칼질을 했으면 ‘그 나물에 그 밥이다’ 라는 소리는 듣지 말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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