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사실은 나 무척 힘들고 쓰러질 것만 같아” 때론 아내에게 이런 말을 하고픈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결혼 생활 26년째인 필자의 경우 세상사는 것이 힘들고 지칠 때마다 문득문득 아내의 모습이 떠오르며 이런 생각을 갖게 된다.

그러나 유일하게 나를 바라보며 기대와 희망으로 사는 아내에게 차마 그런 말을 꺼낼 수조차 없다. 더 이상 아내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면 정말 큰 벌을 받을 것만 같았다.

아침마다 화장실에서 실 코피를 흘리며 가족에게 들킬세라 조심하며 하루하루를 사는 삶이 요즘 들어 더 더욱 지치고 힘들어진다.

행여 가족들이 우울해질까 퇴근 때 현관문을 들어설 때면 명랑한 척 하는 내게 ‘속도 없고 글만 쓰며 세상없이 편하게 사는 사람’이라고 아내는 말한다. 그러나 이 세상 어느 누가 편한 맘으로 사는 사람이 있을까.

때론 밤새도록 쓰디쓴 소주를 들이키며 내일이 없는 오늘만을 사는 사람이 되고도 싶었다.

자신을 처참하리 만큼 망가트리고 싶을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난 내게 헌신하는 아내를 생각하고 또 주님을 생각하며 기도를 한다.

누구를 막론하고 손닿는 곁에 있을 땐 정말 그 고마움과 소중함의 가치를 모르다가 막상 떠나고 난 뒤 그 허전함과 후회. 언젠가는 헤어지는 그 날이 있기에 오늘 이 시간을 소중하게 보내는 삶을 살게 해달라고. 그리고 ‘있을 때 잘 하자’고. 마음으로 다짐하며 기원한다. ‘있을 때 잘 하자’는 이 말 만큼은 늘 가슴에 와 닿는 말이기도 하다.

사랑에 빠지면 눈이 멀고 유치해진다는 것은 사실이다. 유치하지 않고 눈이 멀지 않으면 어찌 사랑에 빠질 수 있겠는가! 25년 전 사랑의 열병으로 며칠 몇 밤을 지새우며 앓아 누운 채로 슬픈 주인공이던 때가 생각난다.

특히 2000년 여름 밤 통일동산에서 후배 빚보증으로 거덜난 내게 눈물을 흘리며 헤어지자고 했던 아내. 생각만 해도 등골이 오싹해진다. 그런 아내가 잘 참아준 것 같다. 어쩜 생명의 은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필자의 경우 하루 종일 원고와 씨름을 하다보면 시력마저 떨어져 글씨도 흐릿하게 보이고 오후가 되면 아예 글씨가 갈라져 아무것도 안 보일 때가 무수히 많다. 그러나 그런 고통은 글을 쓰던 사람들이나 아는 것이지 아무도 그런 일이 무척 힘들고 고되다는 것을 모른다.

또 어깨는 얼마나 아프고 쑤시는지 모른다. 순간 눈이 안보일수도 있다는 생각과 함께 어느 날 내 모든 것을 잃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불안감이 엄습해오지만 곧 사랑하는 아내와 아름다운 것들을 보일 때까지 모두 마음에 담아 두자는 편안한 마음이 된다. 그리고 그 날의 준비를 위해 어둠의 훈련을 해보기도 하지만 이 모든 것들에 대해 가족들에게 내색 할 수가 없다. 모가지가 길어 슬픈 사슴의 눈처럼촉촉한 아내의 눈에 또 다시 눈물 꽃을 피우게 하고 싶지 않았다.

온갖 어려움을 견디며 묵묵히 남편을 내조한 아내. 그런 아내가 있는 가정이 내겐 유일한 안식처가 될 수밖에 없다. 지친 삶 속에서도 아내의 모습을 떠올리면 힘이 솟는다. 그리고 또 다른 삶의 의욕을 갖게 되는 것 같다.

화장실 변기 물 내리는 것을 고쳤더니 ‘역시 집안에는 남자가 있어야 한다’며 넉살을 떨던 아내가, 간혹 나를 감동케 해 무딘 가슴을 촉촉하게 해주던 그런 아내가 이번에는 내가 그렇게 갖고 싶었던 ‘글방’을 만들어 주겠단다. 아무튼 하나님이 아내감 만큼은 이 세상에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최상의 선물을 내게 주신 것 같다.

딸을 출가시킨 이순(耳順)이 가까워져서도 신혼 초 마음으로 언제나 나를 기다리며 저녁 준비를 하는 아내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설래지고 발길도 가벼워진다. 서른을 넘기면서 청순한 아내를 맞이해 부부가 되었다.

부부란 사랑을 나누는 연인만의 사이가 아니다. 힘들 때 함께 손잡고 역경을 헤쳐 나가야 하는 인생의 동반자라 할 수 있다. 내 아내야말로 바로 그런 인생의 동반자로서 지치고 힘이 들 때 내게 기둥이 되어 준 천상배필이다.

71년 군 시절 전방에서 채취한 네잎 클로버를 아내에게 선물로 주었다가 사소한 오해로 헤어지면서 네잎 클로버를 찾으러 갔다 다시 만나 결혼을 한 우리다. 지금은 코팅이 되어 있는 네잎 클로버를 꺼내본다. 아내가 날 즐겁게 해주기 위해 우정“하늘만큼, 땅 만큼 사랑한다”며 멋쩍게 웃는 모습이 허공에 뭉게구름처럼 몽실몽실 떠오른다.

논설위원 안호원(한국 심성교육개발연구원 원장. 교수. 시인)
저작권자 © 메디팜스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