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5일 안재규 회장을 탄핵하기 위해 열린 한의사협회 긴급임시대의원 총회에서 차수를 변경하면서까지 회의를 했으나 재적대의원 2/3 이상의 찬성을 얻지 못해 불신임안이 부결되는 등 해프닝을 벌리면서 집행부와 일선 한의사에게 깊은 좌절감을 안겨주었으며 이를 지켜본 많은 국민들을 실망시켰다.

문준전 전 회장에 이어 두 번째로 회장 탄핵을 위한 임시대의원총회가 열렸지만 과거와는 달리 불신임안이 부결되면서 안 회장과 경은호 수석 부회장이 탄핵위기를 벗어났다.

그러나 참석 대의원 절반이 훨씬 넘는 108명의 대의원이 탄핵에 찬성표를 던졌다는 점에서 안 회장으로선 지도력에 커다란 상처를 입게 되었으며 결국 한치 앞을 못 보는 한의협은 한약분쟁 IMS사태 등 현안에 늑장 대응하고 투쟁성이 약하다는 이유로 열심히 일한 안 회장을 불명예 퇴진시키는 아이러니를 연출하고 말았다.

지난 2002년 제 34대 협회장에 선출된 안 회장은 취임식에서 강한 한의협 재건과 단합을 강조했지만 밥그릇 싸움으로 비춰지는 의료분쟁만 일삼는 회원들의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한 죄로 임기 1년을 채 남기지 않은 상황에서 퇴진을 당하는 불운의 회장으로 전락해버린 것이다.

이 같은 사태가 어떤 측면에서는 안 회장의 자업자득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젊은 후배들로부터 토사구팽이 됐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 같다. 더구나 IMS철회보다 회장 사퇴를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다 썰물처럼 떠났던 회원들이 자동차보험 진료수가 분쟁조정위원회에서 IMS수가 결정이 유보되자 전국 한의사 비상총회를 무기 연기하는 등 한의계의 치부를 대내외에 드러내며 그동안 쌓았

젊은 대의원들이 지탄의 대상으로 삼은 안 회장은 93년도 한약 분쟁 시에 진료실 문을 닫고 가족들의 원망까지도 들어가면서도 ‘국한위’ 위원장을 맡아 한의계를 위해 투쟁했던 인물이며 협회를 진정 사랑한 한의인(韓醫人)이다.

그렇게 한의계 재건과 위상 회복을 위해 헌신한 사람에게 한의협은 지워질 수 없는 상처를 던져준 것이다. ‘한의학이 말살될 지경에 이르도록 방치한 회장 즉각 사퇴’ 하라고 외쳐대던 회원들. 어떤 상황이 벌어질 때마다 자리를 내놓아야 한다면 어느 누군들 그 자리를 지킬 수가 있겠는가. 오히려 그렇게 말하는 회원들은 그동안 무엇을 했는지 되묻고 싶다.

대의원의 권리만 찾으려 하지 말고 권리만큼 의무도 준수할 줄 아는 대의원이 되어야 한다.

정치나 정책은 국가적 차원에서 이뤄지는 것이다. 협회가 아무리 다급하고 심각할 수 있는 과제라도 거국적 입장에서 볼 때는 미미할 수도 있고 절차와 과정이 있는 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냄비 근성으로 열악한 환경 속에서 헌신적으로 일해 온 집행부에 모든 책임을 물어 퇴진까지 요구하는 건 엄청난 잘못이다.

말로는 작금에 사태와 관련, ‘국민건강 수호 차원’ 운운하지만 그런 속 보이는 소리를 듣는 국민들의 마음은 역겹기만 하다. 제발 국민을 파는 소리는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아울러 정치권처럼 정쟁(政爭)근성도 이제는 버릴 줄 알아야 한다.

차기 집행부는 다수결의 원칙이 최상의 합의제도가 될 수도 있지만 최악의 합의제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여러 사람의 의견을 골고루 듣거나 다수의 의견에 너무 치중하다보면 오늘과 같은 최악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지도자는 최고의 경영자이자 최후의 결정권자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결재를 명확히 독재적으로 결정해야 할 줄도 알아야 한다. 때론 다수보다 소수의 의견이 옳을 때도 있다는 것을 알고 균형을 유지하며 판단력과 통찰력을 갖되 회원들의 비난을 두려워하지 말고 회무에 임하는 강력한 지도자가 되어야한다.

또 참모와 인재를 적재적소에 등용해 활용 할 줄 알아야한다. 안 회장이 협회에 헌신적인 노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불명예 퇴진하게 된 것은 결국 측근(상근이사)을 잘못 두었을 뿐만 아니라 직원(인재)관리부재와 함께 ‘다수결의’ 쪽에서 회무를 우유부단하게 처리했기 때문이다.

한의사협회가 국민들에게 신뢰를 회복하고 거듭나려면 강력한 지도자가 나와야 하지만 무엇보다 상근이사와 사무처 인사를 혁신적으로 과감하게 정리해야 한다. 그리고 안 회장의 회무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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