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상 하는 일이지만 칼럼을 쓰고 자료를 검색하다보면 예외 없이 하루가 지난 새벽을 맞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 까닭에 언제나 먼저 잠자리에 드는 아내였다.

마지막 원고를 정리하고 방에 들어오니 깊은 잠에 빠진 아내가 코를 고는데 아주 제법이다. 새우의 폼으로 자는 옆모습이 참으로 평온해 보였다.

아내의 고운 마음이 얼굴로 나타나나 보다.

전에도 가끔 코를 골기는 했어도 이처럼 드르렁 소리는 내지 않았는데 요즘 들어 생활이 무척 힘들고 피곤한 모양이다.

벽에 머리만 닿아도 잠이 쉽게 드는 필자였지만 기도회를 겸한 수요 예배를 드리고 온 아내가 코 소리와 함께 가끔씩 신음소리를 내기까지 하니까 좀처럼 잠이 오지 않는다.

이제 중년에 들어선 아내. 세월이 어찌나 그리 빨리 흘러가는지 정신없는 나날의 연속이었다. 두 딸을 키우며 남편봉양으로 자기모습 한번 제대로 돌아 볼 겨를이 없는 여자. 그런 아내가 그것도 부족해 지난해 봄 출가한 첫 딸의 건강을 걱정한다.

웬만하면 아픈 티를 전혀 내지 않는 아내가 요즘은 이곳저곳 결리고 쑤시고 안 아픈 데가 없다고 온 몸에 파스를 부치며 아픔을 호소한다.

못난 남편, 글쟁이 남편을 만나 결혼초기부터 추운 겨울에도 냉방에서 긴 밤을 지새우며 추위에 떨어야만 했던 아내다. 오죽하면 그 당시 야간 일을 하고 집에 들어오면 담장 옆 햇빛 있는 곳이 더 따뜻하다며 옷을 두껍게 껴입고 담장 쪽으로 가던 아내였다.

그렇게 25여년을 함께 살아왔지만 아내에게 결혼 예복을 해준 이후 변변한 옷 한 벌 사주지 못한 무능한 남편이다. 부자 집 귀한 딸로 호강하다 가난한 내게 시집을 와 십수 년을 끼니걱정, 땔감 걱정을 하며 지내왔으니 강철 같은 몸이라도 병이 날 법도 하다.

온 몸이 아프다고 호소하는 아내에게 난 아무것도 해 줄 것이 없다. 병원에서 건강검진이라도 받게 해야 하는데 그것마저 하지 못하는 마음이 아프기만 할 뿐이다.

그런 아내가 내 전형코디가 되어 옷을 챙겨주는 마음 씀이 고맙고 미안하기만 하다. 깊이 잠든 아내의 손을 살그머니 잡았다. 행여 잠이 깨기라도 하면 어쩌나하고 조심스럽게 잡아보았다.

제법 토실토실하고 뽀얗게 살이 오르고 예뻤던 손이 세월의 흐름 탓인가, 까칠까칠한 손이 되어버렸다. 어둠속에서 손을 매만지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불현듯 얼마 전 남편과 사별한 아내의 친구이자 내 친구이기도 한 아내의 친구가 떠오른다.

남편을 졸지에 떠나보내고 초췌한 모습으로 문상객을 대하며 슬픔을 가득 담은 눈물을 보고 울컥 가슴이 메어짐을 느꼈다. 이제 막 군(軍)에서 제대하고 복학을 준비하는 외아들을 남겨둔 채 떠나버린 야속한 친구. 자신의 아내와 자식을 끔찍이도 아끼고 사랑했던 친구였다.

그런 친구가 편안히 하늘나라에서 쉴 수 있도록 기도를 했다. 아내의 친구는 내 아내에게 슬픔을 삼키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비어있는 남편의 자리가 이렇게 크고 넓은 줄은 미처 몰랐노라고.........” 남편만이 아니라 아내의 자리도 그렇게 넓고도 클 것이다.

수요일 저녁이면 “ 당신과 아이들을 위해 기도하고 올께요”하며 늦은 시간 지친 몸으로 돌아오는 아내다. 그런 아내이기에 집안의 기둥이자 나를 세우는 힘이다.

새근새근 코를 골다가도 때론 앓는 소리를 내는 아내의 손을 꼬옥 잡았다. 상상조차 하기도 싫은 모습이 떠오르며 온몸에 전율을 느꼈다.

“여보 당신을 위해 오래전 스포츠마사지 1급 자격을 딴 만큼 당신을 주물러 줄게 제발 나보다 더 오래 살아야 해” 라는 간절한 기도의 소리가 입안에서 맴돌고 있다. 아내가 뒤척인다. 아무래도 허리를 주물러줘야 할 것 같다. 아내를 처음만난 날처럼 지금 창 밖에선 비가 내리고 있다.

논설위원 안호원 <한국심성교육개발연구원장.서울정보기능대학겸임교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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