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유일하게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중요한 특징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고민을 할 줄 안다는 것이다. 하등 동물은 고민하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은 고민한다.

人間의 고민은 인류의 문명을 발전시키며 정신을 풍요롭게 하며 영적인 성장을 가져오게 한다.

대부분 인간이란 자기가 소원하는 바가 이루어지지 않을 때 한숨과 근심, 그리고 심각한 고민을 하게 된다. 원하는 것이 그때마다 이루어진다면 고민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세상을 살다보면 부자이건, 가난한 자이건, 지식이 있는 학자이건, 무식한 자이건 간에 나름대로 고민과 슬픔을 갖고 살아가게 마련이다.

흔히 우리는 어떤 돌발적인 상황에서 환경이 변하고 어려워지면 현실에서 당황하게 되고 자포자기하며 삶을 포기하는 경우까지 이르게 된다.

덴마크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내가 고통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I Suffer therefore I am)"라고 말했다.

또 미국의 설교자 렐크사크민은 인간이 고통받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4가지로 요약해 놓았다.

우선 첫째, 개인의 죄 때문에, 둘째, 집단적인 죄 때문에, 셋째, 실수로 인해서, 마지막 넷째로는 불가항력적인 고통 때문에 고통을 받게 된다고 했다.

성경에도 보면 모세나 욥 등 많은 선지자들이 시련을 통해 인격이 성숙해지는 가운데 커다란 축복을 하나님께로 받은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시련은 고통스럽고 누구나 좋아하지 않지만 이 같은 시련을 통해서 보다 큰 은혜를 깨닫게 되는 것이다.

요즘 필자가 많은 고민을 하면서 느끼는 것은 뱃사람들이 가장 중요시하는 돛대(mast)이다. 배를 건조하는 사람들은 돛대를 만들기 위해 사전에 두가지 작업을 한다고 한다.

우선 바닷바람을 받는 높은 언덕의 우람한 나무를 점찍어 둔 다음 그 나무 주변의 모든 나무들을 벌목해서 그 나무가 불어닥치는 바닷바람으로부터 전혀 보호를 받지 못하도록 해놓는다.

그 후 여러해동안 그 나무는 해안에서 불어오는 강풍에 쓰러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며 아주 견고한 나무가 되면 그 나무를 베어서 돛대로 만든다는 것이다.

배의 생명인 돛대가 되기 위해서 나무는 강풍을 견디어야 하는 고난과 시련의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돛대가 폭풍에 견디지 못해 부러질 경우 배는 끝장나기 때문이다.

금이 풀무불에 들어가 연단된 후에야 불순물이 전혀 없는 정금이 되는 것처럼 고난은 우리의 믿음과 인격을 다듬는 과정에서 하나의 도구에 불과할 뿐이다.

벽에 못을 박을 때 망치로 못을 힘껏 치면 칠수록 못은 잘 박힌다. 고난은 우리를 넘어뜨리려는 것이 아니라 능히 이 세상에서 든든하게 살아남기 위한 고난도 훈련이다.

우리는 고난과 시련을 통해 인격이 다듬어지며 이를 경험한 사람은 같은 경험을 하고 있는 이들을 도와주게 된다. 시련과 고난을 느끼는 것은 우리가 살아있다는 증거다. 살아있음에 감사하고 당당함으로 받아들이자. 이를 피하고 좌절하는 자는 패배자가 될 수밖에 없다.

시련이 없는 곳은 공동묘지뿐이다. 시련을 축복의 기회로 삼고 자신의 고통을 원망하지 말자.

뜻이 있는 시련은 없다. 고난 가운데서 "내가 약한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고 말했던 바울의 간증이 곧 고난당하는 우리 모두의 간증이 되었으면 한다.

요즘같이 힘든 삶, 오히려 고난의 축복으로 알고 감사하자.


논설위원 안호원(한국심성교육개발연구원장.서울정보대겸임교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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