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같이 서민 경제의 어려움이 바닥을 더듬고 있는 시대에서 기업인이든 직장인이든 상인이든 너 나 할 것 없이 못살겠다고 한결같은 비명을 지르고 있다.

사정이 이런데도 정치권의 모습은 실망과 분노를 뛰어넘어 아예 체념을 강요하는 듯한 생각이 든다.

우직한 백성을 영·호남, 우파. 좌파로 편가르기 하는 정치권의 버릇은 여전하게 버리지 못한 채 집권자들은 다수 국민의 아우성 소리를 외면하는 등 오히려 귀찮아하는 눈치인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 도대체 우리 국민들이 무슨 미래에 대한 희망이 있고 용기가 생기겠는가? 이런 시대에 필요한 사람은 불행스럽고 고통스러운 현실을 끈기와 용기로 이겨내는 사람이자 이웃의 마음속에 용기를 강하게 심어주는 사람일 것이다.

얼마 전 출판사 사장 부인이 사무실에 나와 잘못된 인쇄물을 지우는 작업을 하는 것을 보았다. 보기에는 쉬운 것 같아도 팔이 아프고 손가락에 물집이 생길 정도로 힘이 드는 작업이다.

그럼에도 불구 “남편이 고생했다며 저녁에 주물러줘서 다 풀렸다” 며 즐겁게 작업을 하는 참으로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런 불경기에서 남편을 내조하는 아내를 둔 그 사장님이야말로 어찌 용기가 나지 않을 수 있을까.

그 모습을 보면서 문득 아내의 모습이 떠오른다. 옛 말에 마누라 자랑하면 ‘팔불출’소리를 듣는다지만 필자는 감히 내게 용기와 꿈을 심어주는 아내를 자랑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 세상에는 용기를 심어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또 절망과 좌절의 아픔을 주는 사람도 있다. 용기를 심어준다는 건 삶을 심어주는 것이며 희망을 심어주는 것이기도 하다. 용기를 줄 수 있는 사람은 믿음의 확신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방황하던 ‘아브라함’ 과 잉태하는 힘을 잃었던 ‘사라’ 가 용기를 얻을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런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믿음을 갖고 있는 아내는 언제나 밝은 모습으로 주방에서 콧노래로 찬송가를 부르며 아침 식단을 준비하는 그런 여자이다. 흥얼거리는 아내의 은은한 노래 소리에 나는 잠을 깬다. 살그머니 그녀의 등 뒤로 다가가 살프시 껴안으면 조용히 눈을 감고 행복에 젖어있는 나만큼이나 욕심이 없는 여자다.

그런 아내는 간혹 내가 지쳐 실의에 빠질라치면 언제나 잔잔한 미소를 띠며 “기죽지 말고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하면서 나를 토닥거려준다. 그리고 사랑하는 당신만 곁에 있으면 행복하다는 말까지 건네며 용기를 심어주는 여자이기도 하다.

아내는 내가 매일같이 갈아입어도 남을 만큼의 Y-셔츠와 넥타이를 준비 해두고 아침마다 내 코디 노릇까지도 해준다. 그 많은 Y-셔츠와 넥타이 때문에도 더 오래 살고 싶고 삶을 포기하고 싶지 않을 정도다.

또한 밤마다 베겟가를 축축이 적시며 자신의 아픔을 드러내놓고 무력한 남편과 딸들의 가엾은 영혼을 위해 기도하는 아내의 모습은 나를 울리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내게 용기와 희망을 안겨준다.

다산 정약용 선생이 18년간 유배된 동안 부인 홍씨는 말없이 집안 살림을 돌보았고 유배에서 풀려나서도 선뜻 벼슬길이 열리지 않을 때도 오히려 남편을 격려하고 꿈과 희망을 심어주었다. 내조하는 그녀의 존재가 없었다면 다산의 학문에 대한 열정이 그처럼 지속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그런 아내가 곁에 있기에 오늘도 난 어려운 역경 속에서도 미래에 대한 희망과 행복을 느끼며 용기를 갖고 사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렇게 편한 마음으로 원고지를 메꾸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내의 눈물 젖은 기도가 있기에 나는 용기와 확신을 갖고 꿈을 이루기 위해 역경을 딛고 일어설 수가 있는 것이다. 남편을 믿고 신뢰하는 속에서 오직 ‘사랑’으로만 주린 배를 채울 수 있어 행복하다는 아내를 둔 난 비록 가난하지만 행복한 마음에서 ‘희망’ 의 힘이 솟구친다.

절망을 주면 죽음을 주지만 용기를 주면 새로운 삶을 주는 것이다. 절망을 안겨주면 불행을 주게 되지만 용기를 주면 행복까지도 주는 것이다. 나의 아내는 내게 그런 용기를 주며 행복까지도 안겨주는 그런 여자다.


논설위원 안호원 <시인.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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