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해전 추석을 앞두고 모 단체를 따라 지방에 있는 고아원을 방문, 쌀과 라면을 전달한 적이 있다.

그 당시 값으로 따지면 몇십만원에 불과한 위문품에 긴 프랭카드를 걸어 놓고 아이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은 적이 있다.

필자는 그 때 그들의 상반된 모습을 보며 씁쓸함을 느껴야만 했다.
보잘 것 없는 것임에도 불구, 자비를 베푼다는 오만함의 모습, 또 한편으로는 냉소적이면서도 무표정한 아이들의 모습을 보았던 것이다.

베푸는 자도 거만하고 받는 자들도 감사할 줄 모른다면 결국 주는 자나 받는 자들도 모두가 불행한 삶을 사는 인생이다.

한 소년으로부터 들은 이야기가 내 가슴을 아프게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위문품앞에서 기념사진을 찍다보니 원장님께서 아예 사진을 찍기 좋게 줄서는 훈련을 시켰다고 한다. 그런 연유에서일까, 아이들이 아주 민첩하게 줄을 서고 흩어지는게 보통이 아니었다.

더구나 줄을 서는 것이 매우 피곤하고 불편하지만 선물을 받기위해서는 어쩔 수가 없잖냐고 비아냥거리던 한 소년의 모습이 지금도 가슴을 아프게 한다.

미국의 한 자연주의 철학자는 인간이 가진 유일하고도 가장 훌륭한 덕성은 바로 「자비심」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자비심을 불가에서는 상대를 자기와 둘로 갈라보지 않는 마음이 측은지심이며 인욕과 관용, 상대를 배려할 줄 아는 마음 등 모두를 포괄하는 마음라고 한다.

그래서 자비를 인간이 지닌 가장 훌륭한 덕목으로 꼽는지도 모르겠다.
굳이 부처님이 가르침이 아니더라도 우리가 약간의 인내와 관심 그리고 최소한의 친절만 있더라도 우리의 삶은 지금보다도 훨씬 편안하고 밝아질 것이다.

어쩜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은 어떤 의미에서 볼 때 대단히 불행한 삶을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인간의 참된 행복은 주고받는 사랑의 신진대사가 원활하게 이루어질 때 느낄 수 있는 것임에도 불구, 현실세계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하는 추석이 몇일 앞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수년간에 걸친 경제침체 여파로 예전같은 그런 훈훈한 한가위가 될 것 같지 않다.
눈만 뜨면 늘어만 가는 실직자, 점점 삭막해져가는 세상인심이 그렇게 풍요로운 추석을 맞이할 것 같지 않다는 게 지나친 우려일까.

문득 불란서의 작가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이 떠오른다.

조카가 굶어 죽어가는 것을 보다못해 빵을 훔치다 들켜 평생 감옥살이를 하며 분노와 증오와 적개심으로 살다 밀리에르 주교의 아가페적인 사랑에 감복해 자선사업가로 변신하는 주인공 장발장이 생각났다.

이 세상에는 장발장같이 냉소주의적인 사람들이 점차 많아지고 있다.
이를 조금이라도 해소하기 위해서는 이들을 진정, 포근하고 따뜻한 사랑으로 감싸줄 수 있는 넓은 마음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때다.

사회를 밝게 하는 것도 개인이 행복해지는 것도 결코 닿을 수 없는 조건에 있는 것이 아닌 지금 바로 내 이웃에게 행할 수 있는 「친절」하나만 있어도 족하다 하겠다. 모쪼록 제사보다 젯밥에 마음이 있다는 속담처럼 기념촬영을 위한 위문품이라도 많아졌으면 하는 마음이다.

논설위원 안호원 <시인. 수필가.>
저작권자 © 메디팜스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