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사회 전반에 걸쳐 만연되어 온 ‘안전 불감증’은 도가 지나쳐 이제‘안전 무감각’이라 할 정도에 이르고 있다. 의약품 사용에 있어서도 예외는 아니다. 언론에 끊임없이 보도되고 있는 어이없는 약화사고는 발표 로끝날 뿐 이를 예방하고자 하는 노력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다.

최근 외국에서 속속 발표되는 약화사고 규모를 감안하면 우리나라의 경우, 매년 적어도 1만 명 이상에 이르는 사람이 의약품의 부작용으로 사망하고 있을 것이라는 계산이 나오며 ‘안전 불감증’을 감안한 추가적 위험요인을 고려하면 그 규모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이에 대한 실태파악조차 시도되지 않고 있으며 또한 대중적 경각심과 대책이 전무한 상황이다.

최근 페닐프로판올아민(PPA) 성분이 함유된 감기약의 판매금지에 따른 사회적 반응과 이에 대한 정부대책이 모두 ‘의약품의 안전사용’이라는 대명제에서 출발했지만 실제 의료현장에서 의약품의 부작용으로 사망하는 사례가 수 없이 많이 일어나고 있다는 심각성을 제쳐둔 채 일부 감기약 성분의 사용금지 발표를 전후한 시끄러운 논란들은 호들갑스럽게만 보일 따름이다.

우리나라가 의약품사용의 안전대책에 있어서 후진국이라는 증거는 너무나확실하다. 세계 10위에 이르는 의약품 소비강국인데 반해 부작용보고의 건수는 너무나 적은 것이 명백한 증거이다. 의약품의 안전은 크게 생산과 소비로 나누어 보아야 한다. 함량이 잘못되거나 오염된 주사제가 생산, 유통되면 대규모 사고가 발생하므로 불량 의약품이 생산, 유통되지 않도록 철저한 감시체계가 확립되어야 하며또한 생산된 의약품이 올바로 사용될 수있도록 안전한 소비 인프라가 구축되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명심해야 할 것은 안전대책의 기본 원칙은 예방에 있다는 사실이다. 죽은 생명을 소생시킬 방법은 없듯이 이미 사건이 발생한후 아무리 좋은 대책을 강구한들 피해를 입은 자에게는 돌이킬 수 없는 역사가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최근 식약청의 판매금지 조치는 가능성이 있는 피해를 줄이고자 하는 예방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진 행정처분이므로 소비자의 안전을 강화한다는 차원에서매우 바람직한 일이라 보아야 한다.그러나 이러한 행정처분의 방법을 놓고 언론과 소비자들에 의해 쏟아지고 있는 비난으로 인해 그 의미가 퇴색되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다. 비난을 받아 마땅한 것은 우리 모두가 안고 있는 안전 불감증이 되어야 한다.

따라서 이번 조치로 일고 있는 논란은 의약품 사용의 안전에 대한 실태파악을 촉구하는 계기가 되어야 하며 이를 계기로 정부는 우리 국민이 안심할 수 있는 의약품 소비 인프라의 구축에 힘을 쏟아야 한다. 그리고 이번의 경우도 일과성으로 끝나지 않도록 했으면 한다.

여론이 들끓으면 책임자 처벌 등 난리 법석을 떨다가 시간이 흐르면 흐지부지되는 정부정책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아야 한다. 분명, 우리 사회는 안전을 강조하는 사회로 진전되고 있으며 소비자 안전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않고서는 수없이 많은 문제들이 꼬리를 물고 발생할 것이 분명하기때문이다.

우리 모두가 많은 고통을 감수하며 정착시키고 있는 의약분업은 의약품의안전사용을 내실화할 수 있는 제도적 인프라에 해당한다. 의약분업의 궁극적 목적은 정확한 진단에 따라 의사가 처방하고 약사가 조제, 투약함으로써 의약품의 과용, 오남용 등을 방지하여 약물소비의 안전성과 효과성을증진시키고자 하는 데 있다.

따라서 의약분업의 내실화는 바로 의약품 사용의 안전망을 구축하는 가장효율적인 방법이므로 의약분업이 올바르게 정착된다면 의약품사용의 안전대책은 절반의 성공을 거두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당국, 보건의료계, 국민 모두 의약분업 논쟁에 지쳐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의약품사용의 안전망의 부실로 인해 막대한 인명손실과 이에 따른 재정손실이 엄청난규모로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까맣게 모르고 있거나 알아도 모르는 척하고 있다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자 비극이다.

신 현 택(녹색소비자연대 상임위원, 숙명여대 약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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