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필자가 사람들을 만나보면서 느끼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면 한결 같이 표정이 무겁고 우울해하며 웃음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IMF이후 경기가 좋아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실업률은 떨어져 회복에 기미는 보이지 않고 이태백(20대)을 비롯한 사오정(45세), 오륙도(56세)세대들이 한창 일할 나이에 거리를 배회하고 있다.

모두가 어려운 불황에 놓여있다. 민초들은 곳곳에서 허리띠를 졸라매며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건강은 완전히 뒷전이다. 가장들은 자신의 몸은 어찌되든 간에 가족들의 배를 채우기 위해 악조건 속에서도 오직 일자리가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착취를 당하기도 한다.

어쩌다 세상이 이렇게 되었는지 안타깝기만 하다. 대다수 민초들은 모였다 하면 한숨소리 뿐이다. 따라서 집안 제사부터 시작해 걱정도 많다.

모두가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가득 쌓인 것 같은 기분이다.

민초들은 국가 정책이 바른 방향으로 가고있는 지, 국민정서의 불안은 어디쯤에서 진정되는 건지, 국가 경제는 언제나 회복되어 제대로 굴러갈런지 등 전반적인 여러 가지 사회적 현상들에 대해서 걱정스런 말들을 하면서 안보적인 차원에서까지 매우 불안한 상태를 보이고 있다. 이 같은 민심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은 여전히 우왕좌왕하며 자신들의 할 몫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갈길 마저 못찾아 헤매

얼마 전 전직 총장(대학) 등 원로 문인들과 자칭 “railroad-restaurant"(철도 식당)에 들려 점심 식사를 한 적이 있었다.

이 분들은 노후에 나오는 연금을 타서 생활하시는 학자분들이다. 4명이 점심 식사와 커피를 마신 돈이 모두 합쳐 1만 6백원.

필자의 경우 각계각층의 여러분들을 만나보았지만 이 분들처럼 허술한 철도식당에서 ‘츄라이’ 밥을 먹으며 이처럼 감사하고 기뻐하는 모습을 별로 본적이 없다. 모두가 한결같이 반가운 이들과 만나 아름다운 대자연을 벗삼아 커피를 마시고 또 만원을 갖고 네 사람이 배부르게 점심식사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하냐며 웃는 모습을 보니 부끄러운 생각마저 들었다.

그분들 말씀처럼 한 두 사람이 먹을 수 있는 돈을 갖고 네명이 식사를 할 수 있고 또 커피까지 마시며 두어 세 시간을 대자연 속에서 함께 보내는 가운데 문학에 대해 토론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는 것은 참으로 소중하고 행복했던 시간인 것만은 분명했다.

이분들을 보면서 느낀 것은 결국 비싼 음식도 아니고 돈도 아니었다. 그저 함께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함께 토론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행복함을 느끼고 있다는 점이다.

더 더욱 존경심이 우러나는 건 그분들이 경제적인 여유가 없는 분들이 아니고 명예도 있고 체면도 차릴 줄 아는 분들임에도 불구, 실직자나 노숙자들이 와서 먹는 식당에서 식사를 하며 감사를 할 줄 안다는 것이다. 잘난 체도 안한다. 덕분에 즐겁고 편안한 마음으로 그 분들과 함께 하며 헤어짐을 아쉬워 한 적이 있다.

또 얼마 전에는 교대근처에 있는 한식집에서 'S대학원 동문회 회장단 회의'에 임원 자격으로 참석을 했는데 필자 외에 두어 사람만 빼고는 모두 자가용, 그것도 기사가 딸린 차를 타고 왔다. 대부분이 의료인이었고, 기업가도 몇 분이 되었다.

예쁜 아가씨들이 서빙하는 몇 십만원짜리 한식을 끝내고 사업을 하시는 동문 한 분이 2차로 쏜다고 해서 근처 룸싸롱을 가게 됐는데 노래방 기기까지 있어 모두들 일 잔을 한 후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불렀다. 점수에 따라 90점이상은 만원, 95점이상은 이만원으로 정해졌는데 90점미만인데도 만원을 내는 동문, 또 자존심에 문제라며 95점이 안되는데도 이만원을 내고, 심지어는 90점대에 들어오지도 않았는데 십

모두들 노래와 춤으로 어우러져 고조된 분위기였지만 술도 안마시고 노래도 못부르다보니 재미도 없고 지루한 것은 물론 부담감마저 느꼈다. 예의가 아닌 줄 알면서도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은근히 화도 났다. 어쩌다 노래를 잘 부르면 돈을 내게 했는지 그런 까닭에 그 잘 부르는 노래 한곡도 못하고 말뚝처럼 앉아있던 자신이 정말 한심하고 짜증스러웠다.

더구나 몇 만원씩을 귀한 줄 모르고 성큼성큼내던 어떤 동문은 자기 직장의 직원들에게 인색한 분이라는 것을 생각하니 더욱 더 씁쓸한 마음이 되고 그들을 뒤로 귀가하는 내 발길이 참으로 암담하고 무거움마저 들었다. 대다수는 아니겠지만 아직까지 일부 기업가는, 말로는 직원들을 가족처럼 대하자면서도 얼마나 임금 착취를 하는지 모른다. 저(低)임금으로 그들의 노동력을 이용, 노동자들의 생활은

옛 적에 한 중생이 보살을 만나 그의 제자가 되기 위해 길을 떠났는데 도중에 스님을 만나 깨달음을 얻어 자기의 모친을 부처로 알고 평생 섬겼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흔히 불공을 드린다거나 기도를 하려면 꼭 교회나 절을 가야만 하는 줄 안다.

교회나 사찰에만 예수나 부처가 있는 줄 안다. 그런 까닭에 사람들은 교회나 사찰에 가면 모두가 천사같이 양순해지고 성도들 간의 교제도 사랑하는 마음으로 대한다. 그런 마음이라면 내 가정도 사회도 교회나 사찰로 만들면 어떨까. 그래서 가족이기도 하지만 성도로서의 교제가 이루어진다면 함부로 할 수 없을뿐더러 예의를 갖춘 만남으로 그 가정 그 사회는 맑고 밝은 세상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이 세상에서 하는 일이 모두 다 자신이 맘먹기에 따라 그 자리가 행복하거나 불행해질 수도 있다. 칠만원짜리 한식을 먹을 때는 품위는 있을지언정 심기가 불편했었는데 일만원어치의 식사는 참으로 편하고 즐겁기까지 했다. 오히려 그같은 순수함과 정감이 넘치는 그 시간이 더 소중하고 행복했던 것 같다.

어느 환경, 어느 위치에 있든 자신의 역할을 충실하게 한다면 그 안에서 보람을 찾고 행복감에 빠질 수도 있다. 현재는 경제든 정치든 모두가 힘든 게 사실이다.

이제 우리 사회가 위기를 벗어나는 길은 더 큰 위기의식을 갖는 것뿐이다.

아울러 현실이 아무리 어둡고 힘들어도 끝까지 꿈과 희망을 버리지 말아야 한다.


논설위원 안호원(시인·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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