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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복지제도 유감
2004년 03월 31일 (수) 17:17:02
< 문경태 보건복지부 기획관리실장 >

거의 20여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도 나는 그때의 그 부끄러웠던 일을 가끔씩 생각하며 혼자 얼굴을 붉히곤 한다.

1985년 1월초, 그날은 겨울방학 중이었고 일요일 밤이었다. 필자는 1984~1986년까지 미국 남부 조지아 대학에서 사회복지학 석사과정을 공부하고 있었다.

보건사회부 재활과 사무관으로 근무하던 중 공무원 유학시험에 합격, 장애인복지를 좀더 깊이 공부해 볼 기회를 가졌다.

학기보고서를 준비하기 위해 밤 9시를 지나 대학도서관을 찾았다. 차를 세우려고 주변 주차장을 한참이나 둘러보았는데도 빈자리를 찾을 수 가 없었다.

그러던 중 도서관 입구 가까이에 빈자리가 눈에 띄어 얼른 차를 세웠다. 새벽녘에 졸린 눈을 비비며 차를 몰고 집으로 오는 중 차창에 끼여 펄럭이는 종이쪽지를 발견했다.

장애인주차장 주차위반 스티커였다. 부끄러웠다. 한국의 젊은 공무원이, 그것도 재활과 사무관이 장애인복지를 공부하겠다고 유학까지 와서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가 적발되었으니...

부러웠다. 겨울방학 중 그것도 일요일 늦은 밤, 장애인 주차장 불법주차 차량을 정확히 포착하여 스티커를 발부하는 미국 대학 경찰의 엄격한 법집행에...(사실은 겨울방학중 일요일 늦은밤에 설마 단속하랴하는 안이한 마음에서 불법주차 했었다.)

이 사건은 내가 그 후에 미국에서 배운 여러가지 장애인 복지제도의 그 무엇보다도 피부에 와 닿는 실질적인 산 공부가 되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장애진단서를 허위로 발급한 의사와 이를 악용한 사람들이 무더기로 사법당국에 적발되었다.

사실 우리나라의 장애인 판정제도는 무척 허술하다. 의사가 발급한 장애진단서 한장으로 장애등급을 받고, 등록할 수 있고, 한번 등록되면 그후의 신체적·정신적 변화(재활) 여부에 상관없이 계속하여 수십가지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되어 있다. 퍽 편리하지만 허점도 많다.

몇년전의 일이다. 늦은 밤 서울시내에서 택시를 타려는데 자가용 불법영업(일명 나라시) 차량들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었다.

하나같이 장애인 차량 표시를 부착하고 있었으나 운전기사들은 모두 멀쩡한 청년들이었다. 이들은 장애인 차량에 대해서는 불법영업을 관대히(?) 보아준다는 경찰의 관행을 악용하고 있었던 것 같다.

중고차량 거래소 근처의 자동차 정비공장에서는 돈만 주면 휘발유차를 LPG차로 교체해준다. 요즘처럼 휘발유 값이 비싼 때에 장애인 차량 LPG 할인제도는 그 어떤 복지혜택보다 도움이 될 것이다. (연간 에너지 특별회계 예산 1700억원)

장애인은 어렵다. 장애때문에 교육받기도 어렵고 장애때문에 경쟁을 통한 직장을 갖기도 어렵다. 재활치료·특수교육 등 장애 때문에 돈도 더 많이 들어간다.

정부도 나라살림이 어려운 가운데 장애인들에게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자 미흡하나마 이런 저런 복지제도를 도입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장애인들을 위해 도입한 이런 복지혜택을 악용하는 파렴치한 사람들이 무더기로 적발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새삼스레 20년전의 그 부끄러운 일이 떠올라 얼굴 뜨거워진다.

장애인 판정제도, 등록제도 그리고 장애인차량표시제도 등을 보다 엄격하게 개선하여야 하겠다. 쉽고 편리하게만 한다고 반드시 장애인들에게 유리한 것이 아니다.

미국의 장애인 판정제도(Disability Adjudication Service, DAS)를 참고해 볼 필요가 있다. 아까운 복지예산의 누수를 방지하여 꼭 필요한 장애인들이 더 많은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겠다.

아울러, 우리사회 전체가 장애인뿐만 아니라 도움이 꼭 필요한 우리 이웃에게 그 도움이 돌아갈 수 있도록 배려하는 성숙한 시민의식을 가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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