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섭 회장의 아헨공대 명예 세너터 위촉 의미와 배경

허영섭 녹십자 회장이 독일 아헨공대에서 명예 세너터 칭호를 수여했다. 허영섭 회장이 이처럼 독일사회에서도 최고의 영예에 속하는 명예 세너터가 되었다는 것은 독일에서 한국의 높아진 위상이 반영되었다고 할 수 있다.

더욱이 130여년의 역사 속에 노벨상 수상자를 4명이나 배출하며 유럽의 MIT라 불리는 세계적인 명문대학인 아헨공대 역사상 최초의 외국인 명예 세너터가 되었다는 것은 그 의미가 더욱 크다고 할 수 있다.

허영섭 회장이 이번에 아헨공대에서 명예 세너터 칭호를 수여한 것은 아헨공대 출신 CEO로서 성공적으로 기업을 이끌며 불모지나 다름없던 한국의 생명공학산업을 개척하고, 한독상공회의소 이사 및 한독협회 회장 등 민간외교단체 활동을 통해 한독 양국의 우호협력 증진에 많은 기여를 한 점이 높이 평가받은 것으로 보인다.

라우후트 아헨공대 총장도 허영섭 회장을 명예 세너터에 위촉한 배경으로 이러한 공로를 들고 있다.

1941년 경기도 개풍에서 태어난 허영섭 회장은 1964년 서울대 금속공학과를 졸업하고 독일로 유학을 떠나 아헨공대 금속공학과에서 鐵야금학으로 디플롬(Dipl. Ing) 학위를 취득하고, 동대학원 금속물리 분야에서 박사과정을 수행하던 중 군복무를 위해 학업을 중단하고 귀국할 때까지 약 7년간 아헨공대에서 공학도의 길을 걸었다.

이처럼 공학교수를 꿈꾸던 허영섭 회장은 귀국 후 녹십자의 전신인 극동제약의 공무부장으로 입사하면서 기업가로 변신했다. 기업가로서의 허영섭 회장은 R&D중시 경영철학을 바탕으로 녹십자를 국제적인 생명공학 전문기업으로 성장시켰다. 허영섭 회장의 이러한 기업경영의 골격은 아헨공대에서의 학문적 경험과 철학이 바탕이 되었다.

허영섭 회장은 우리나라 생명공학산업 분야를 개척하고 이끌어 가는 대표적인 기업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1983년 12년의 연구 끝에 세계에서 세 번째로 B형간염백신을 개발하는데 성공했으며, R&D는 미래의 매출액이라는 신념 아래 헤파박스를 통해 얻은 기업이익으로 1984년 과기부 승인 제1호 민간연구재단인 목암생명공학연구소를 설립했다.

목암생명공학연구소는 1987년 국내최초의 AIDS 진단시약, 1988년 세계최초의 유행성출혈열백신, 1993년 세계 두 번째의 수두백신 등을 잇따라 개발하며 WHO의 협력연구기관으로 지정되는 등 국제적인 생명공학연구소로 성장했다.

허영섭 회장은 이처럼 녹십자를 국제적인 생명공학기업으로 성장시켰을 뿐만 아니라 국내 생명공학산업의 기반을 조성하는데도 기여하고 있다. 한국유전공학연구조합 이사장, 한국생물산업협회 이사장, 한국제약협회 회장을 역임한데 이어 2001년부터는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 겸 생명산업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하며 국내 생명공학산업 분야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이와 함께 허영섭 회장이 한독 양국의 우호협력 증진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는 점도 이번에 아헨공대에서 명예 세너터 칭호를 수여하게 된 또 다른 배경 중의 하나다.

청년시절 아헨공대에서의 유학한 허영섭 회장은 10년 이상 한독상공회의소와 한독협회의 임원으로 적극적인 민간외교 활동을 펼치며 한독 양국의 공동발전과 협력을 위해 헌신적인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특히, 2000년 제8대 한독협회 회장으로 취임한 이후 지난 6월 독일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제1회 한독포럼을 출범시킨 것은 매우 의미있는 성과로 평가받고 있다. 한독포럼은 단순히 외교적 채널로만 해결될 수 없는 양국간 현안문제를 극복하는데 있어 민간차원의 중요한 가교역할을 하고 있다.

1천여명의 각계 인사가 회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한독협회는 지난해 우리나라 근대화에 족적을 남긴 묄렌도르프 사망 100주년을 맞아 그의 행적을 조명하는 국제 학술세미나를 개최하고, 압록강은 흐른다의 저자 이미륵 선생을 기념하는 이미륵상 시상식을 개최하는 등 학술문화 분야에서도 한독간의 다양한 교류활동을 전개하는 등 현재 가장 활발한 민간외교단체로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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