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포럼―황태주] ‘생명윤리법 ’시급하다
황태주(전남의대 교수

인간에게는 탐구와 명예에 대한 끝이 보이지 않는 욕망이 있다. 특히 지적 호기심과 미지의 것을 밝혀내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보려는 욕구가 강한 과학자들에게는 그 욕망이 더하다. 그리고 이러한 창조적 사고를 가진 학자들의 덕택에 인류는 오늘날과 같은 과학문명의 혜택을 누리게 되었다.

근세기에 들어 기술혁명이 세계와 인류를 급변시키고 있음은 가히 놀라울 정도다. 그 중에서도 다이너마이트,핵무기,컴퓨터 그리고 생명공학의 발달로부터 파생된 기술들은 인류를 전쟁의 위험으로부터 구하고,사람의 생활 패턴을 변화시켰으며,생명을 연장하고 질병의 고통을 경감시켰다.

그러나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이러한 기술혁명들이 인류를 꼭 행복하게만 만들었는지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핵에 대한 공포가 항시 존재하고 실제로 수십만명의 인류가 그 피해를 본 적이 있으며,컴퓨터가 대중화되면서 따르는 정신적 폐해 또한 헤아릴 수가 없다. 하지만 생명공학의 발달에 의한 폐해는 인간의 근원적인 문제인 존엄성을 훼손한다는 데서 더욱 심각한 논란이 있을 수밖에 없다.

최근 우여곡절 끝에 ‘생명윤리법’의 연내 제정이 무산되었다고 한다. 부처간의 알력 때문인지, 찬반론자들의 입김 때문인지 그 속내는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연구에 대한 범위를 확대하든지, 극도로 제한하든지간에 지금의 상태로 방치하는 것은 책임 회피요 아주 위험한 일이다.

우리들은 가끔 무지나 부지불식 상태에서 커다란 오류를 범하는 경우가 있다. 어린 소아들,특히 신생아의 경우 회생의 가능성이 희박하거나 중증 장애가 남을 우려가 있을 때 그 아이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가족들에 의하여 쉽게 생명이 포기되는 때가 있었다. 장기이식의 발달은 장기의 거래와 함께 ‘쿡’의 소설처럼 장기를 획득하기 위하여 무고한 생명이 약탈될 수 있는 가능성을 남겼고,유전자 검사

연구에 몰두하려면 좌우를 살필 겨를 없이 앞만 보아야 한다.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이나 호기심,그리고 천착 없이는 연구에 몰입하거나 집착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거기서 파생되는 부작용이나 윤리의식은 망각되기 십상이다. 이를 예방하기 위하여 생명을 대상으로 하는 연구에는 윤리위원회나 임상심의기구들이 있고 논문의 게재에는 반드시 이들의 허가를 얻었다는 증명이 있어야 한다. 그러

의사들이 의과대학을 졸업할 때면 누구나 다 서약하는 히포크라테스 선서에는 ‘나는 인간의 생명을 그 수태된 때로부터 지상(至上)의 것으로 존중히 여기겠노라’라는 문구가 있다. 또 유명한 소아과학 교과서에는 수정(conception) 직후부터 생명체로 다룰 것을 명시하고 있다. 이들의 뜻은 수정 직후의 배아도 하나의 독립된 생명체로 존재함을 인정하는 것이고 또 살고 있는 우리와 똑같은 생명에 대한 독립

이런 관점에서 ‘생명윤리법’이 발의되면서부터 최근까지 종교계를 비롯한 윤리적 측면을 강조하는 단체들에서 인간복제 연구는 근본부터 제한해야 한다는 의견들이 집중적으로 제안되었고 최종안은 이런 의견들이 반영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복제 연구는 필요하고 또 이루어질 것이다. 연구의 자유를 위해서나,국가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고 건강을 유지하고 무병장수하고자 하는 인간의 본능적 욕구를 충족하고자 하는 수요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본능을 포기하지 않는 한 암성통증환자가 마약을 포기할 수 없듯이 그 연구를 궁극적으로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더욱 더 규제와 감시를 위한 법 제정이 시급히 요청

황태주(전남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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