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하게 추진됐지만 설립된 질본관리청
필요한 곳에 못가는 정부의 제약강국 지원
전염병 관리 위한 우리의 힘 '공공의료'

2019년 12월. 한 뉴스 채널에서 글로벌 뉴스로 전한 짤막한 헤드라인은 '중국 후베이성 우한시에서 폐렴환자들이 집단 발병했다'는 문장이었다.

중국에서는 각종 전염병이 발병하고 사라지기를 반복하기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그 문장의 주인공은 올해 2월 한국에 상륙했고, 다음 달에는 일본, 필리핀 등 아시아에 퍼지더니 그 다음 달이 되면서 유럽에 상륙, 스페인과 이탈리아를 초토화 시킨 뒤 미 대륙까지 점령했다.

지금은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이 코로나19에 대한 논의는 바이러스의 특성, 바이러스의 파급력, 바이러스 예방법, 바이러스 변이 등으로 이어지더니 현재는 바이러스에 대항할 치료제와 백신 개발로 옮겨져 있다.

우리는 매번 파급력 강한 전염병과 마주할 때 마다 정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그러다 내리는 결론은 '전염병을 치료할 약'과 '정부의 통제'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사스와 메르스가 발생했을 때도 그랬고 현재도 역시 그렇다.

전염병의 발생은 또 '제약산업 육성'이라는 풀지 못한 숙제도 지속적으로 던져주고 있다. 제약산업의 역량이 높아지면 관련 전염병에 대한 치료제나 백신 생산이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다.

치료제와 백신 개발은 전세계가 코로나19에서 벗어날 수 있는 무기이자 기회다.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은 각국 정부는 백신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으며 진척을 보인 기업에는 수출 선계약 등을 맺고 발 빠르게 대응하려 한다.

질병관리청의 승격과 감염병 예방에 대한 기대

국내에서는 코로나19 유행이 준 큰 이익이 있다. 비록 백신과 치료제 개발에 큰 진전을 보이고 있지 않지만 이를 뒷받침할 기관이 하나 세워진 것이다.

질병관리본부를 복지부 산하에서 빼내 독립기관으로 만들어 놓은 것은 길게 보면 우리나라 보건시스템의 큰 획이 될 것이다. 질병관리청의 승격은 보다 적극적으로 면밀하게 전염병에 대응할 수 있도록 전문적인 '체계'를 갖추겠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정은경 질본관리본부 본부장은 초대 질병관리청장이 됐다. 
정은경 질본관리본부 본부장은 초대 질병관리청장이 됐다. 

질병관리청 승격이 중요한 또 다른 이유는 감염병연구소 설립에 있다. 감염병연구소는 임상연구와 백신개발 지원 등 감염병 전 주기 연구개발 체계를 구축하는 일을 담당하는데 이는 한 국가 전염병 관리의 가장 기초적인 틀이다.

의료계에서는 코로나19를 '토착화될 수 있는 전염병'으로 인식하고 있다. 이런 예측이 맞다면 매년 유행하는 독감 백신을 접종해야 하는 것처럼 코로나19 역시 백신을 만들어 접종해야 하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청의 승격은 달라진 백신개발 전략에 보다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게 됐다는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이를테면 잠재적인 전염병에 대비해 백신을 사전에 만들어 2차 임상시험까지 끝내 놓거나, 안정성이 검증된 백신 플랫폼을 이용해 유행하는 바이러스의 유전자만 투입해 백신을 완성하는 방식 등이다.

이미 전염병예방혁신연합(CEPI)에서는 플랫폼 테크놀로지인 핵산(DNA와 RNA) 백신으로 코로나19 백신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연구-개발의 속도가 절반 이상으로 줄어들 수 있다. 백신에 사용될 바이러스만 추출해 이를 제약사에 제공해 대량생산을 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게 된다면 다가올 미래에 전염병으로 수백만이 목숨을 잃는 최악의 사태는 면하게 될 수도 있다.

제약산업, 뒤늦은 족집게 지원에도 아쉬운 부분

질병청의 승격은 정부의 의지와 달리 코로나19가 앞당겨 준 결과물이다. 복지부의 제약산업 관련 예산 확대 역시 환영할 일이지만 코로나19로 인한 결과물이다. 모두 원인이 있었기에 결과로 이어졌다.

매년 분기별로 확대되는 예산에도 제약산업 전반에 만족도는 상당히 떨어져 보인다. 치료제와 백신 생산에 집중된 '족집게 예산'이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예산은 확대 편성됐지만 수혜를 보는 기업은 한정돼 있어 그나마 매년 지원됐던 연구지원비나 산업화 과정에서 지원되는 제도들이 '일시 정지' 상태에 놓이게 됐다.

코로나19라는 특수한 상황 속에서 제약사들은 정부의 정책이 보다 폭넓게 산업의 기초를 다지는데 지원되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결국 정부가 제시한 제약강국을 위한 '씨드머니'의 분배가 위기의 상황 속에서도 공정하게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코로나19라는 특수 상황에서 배제된 제약사들의 목소리는 의외로 백신과 치료제 개발을 진행하고 있는 기업들에서도 들린다. 임상이나 피험자 모집을 원활하게 할 수 있도록 보다 강력하고 집중된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 정부의 '족집게 지원'에도 아직은 부족하다며 목소리를 높이는 제약기업들의 요구는 그 동안 현실과 정책의 괴리가 얼마나 깊었는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코로나19 이후 정부가 전염병 컨트롤 타워로 질병관리청을 승격한 이후 제약산업 지원 전략을 다시 짜야 하는 이유다.

공공의료의 재발견과 의료계의 투쟁

코로나19로 확인된 또 하나의 결과물은 '공공의료서비스'가 얼마나 우리 사회에 필요한 시스템인지를 깨닫는 것이었다.

최대집 의사협회 회장은 복지부 정책을 반대하며 총파업을 선언했다. 
최대집 의사협회 회장은 복지부 정책을 반대하며 총파업을 선언했다. 

코로나19 시대 속 '국뽕'이라 일컬어지는 단어는 우리나라 공공의료시스템이 얼마나 잘 작동되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가 된다.

누구나 한번쯤 보았을 자가격리자에게 제공된 생필품 사진, 길게 늘어선 선별진료소 앞 대기 줄, 각 지자체에서 보내주는 확진자 발생 알람 등은 우리가 인지하지 못했지만 우리와 밀접하게 부대끼고 있는 공공의료의 단면이다.

병원에 입원한 코로나19 확진자에게 들어간 비용은 전액 국가가 부담하는 이 놀랍고도 당연스러운 결과물 역시 공공의료서비스가 작동된 결과다.

그럼에도 확진자 수가 늘어나면 턱없이 부족한 감염전문병원과 환자를 관리해야 할 의료진의 수가 항상 문제로 지적됐다.

코로나19 최고점을 찍었을 때는 최전방에서 일하는 의료진들 역시 코로나19와 싸우며 심한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호소했다. 온전하게 세워지지 못한 감염병 대응관리 시스템도 문제였지만 의료진의 부족 역시 수면 위로 올랐다.

정부는 지방의 의사 부족을 해결할 방안으로 추진했던 공공의사 양성에 드라이브를 걸었다. 이게 의료계 공분을 샀다. 의사협회가 봉기했고 전문의와 의대생들이 응수했다. 결과적으로 정부는 의료진의 총파업에 백기를 들었다. 의정협의체를 만들어 코로나19 이후에 관련 논의를 진행하자고 했다. 그러나 의료계 반발은 여전히 거세다. 정부가 약속을 어기고 관련 정책들을 추진하고 있다고 반발하고 있다. 의대생들은 국가고시를 거부하는 사태까지 일어났다.

공공의료서비스 확대를 위한 정부의 시도는 정작 이를 찬성하고 지지해야 할 의료인들의 외면을 받고 있다. 서둘러 가다가 돌아가는 형국이다.

정부와 의료계가 등을 돌린 이 시점에서 우리가 집중해야 하는 건 코로나19가 드러낸 공공의료서비스의 문제점을 보완하고 더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는 점이다. 그나마 코로나19가 한국이라는 국가에서 최악의 상황을 전개하지 않은 배경에 공공의료서비스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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