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는 코로 나오는 거’라는 신종어가 생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 팬더믹으로 퍼졌다. 코로나는 한자로 관상(冠狀)이라고 한다. 중국에서는 발상지 우한(武漢)대신 신관폐렴(新冠肺炎)이라 부른다. 신관폐렴은 역병(疫病)이다. 널리 유행하는 돌림병을 뜻하는 역(疫)은 병들어 기댈 역(疒)과 몽둥이 수(殳)로 이뤄졌다. 최근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역학(疫學)조사는 영어 전염병학(Epidemiology)의 번역어다. 중국은 ‘유행병학 조사’로 풀어쓴다. 환자의 발병경로와 전파 과정을 캐낸다는 뜻이다.
역병의 창궐에 패러디 사자성어까지 등장하고 있다. 역병에 친지까지 모른 채 하라는 대역멸친(大疫滅親), 정을 끊으면 역병도 없다는 무정무역(無情無疫), 불량마스크로 폭리를 취하자 견리망역(見利忘疫), 36도 체온만 통과한다는 삼십육계주위상(三十六計走僞上)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다.
병법의 대가 ‘손자’는 “적이 오지 않을 거라 믿지 말고 적이 언제 오더라도 내가 준비 돼 있음을 믿으라.”고 했다. “이웃사촌인 중국의 아픔이 우리의 아픔이라”며 조기 입국금지 조치를 안했던 한국이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있다.
지난 3일 문대통령이 “마스크를 신속하고 충분히 공급하지 못해 불편을 끼치는 점에 대해 국민들께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식품의약품 안전 처를 중심으로 관계 부처들이 긴밀히 협력해서 이른 시일 내 해결해 달라.”고 주문했다. 때늦은 감이 있지만, 현재 벌어지고 있는 ‘마스크 대란’의 수급혼란을 솔직하게 인정하면서 허둥지둥 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는 정부의 자성과 분발을 촉구한 메시지로 풀이된다. 이는 총선을 코앞에 두고 마스크로 인한 민심의 동요와 혼란이 부담스러웠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문 대통령의 말은 감염공포에 빠져있는 국민들을 안심시키기엔 너무나 형식적이고, 평화스런 제안으로 들린다. 신뢰가 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늘 임기웅변 식으로 말잔치만 하는 대통령에게 진저리를 내는 국민이 다수다. 방역의 기본 중 기본인 마스크를 제때, 제대로 공급하지 못하는 문 정부에 대한 불안과 불신, 그리고 불만이 폭발 일보직전임을 모르는 것처럼 태평한 모습이다. 구체적인 해결책이 제시되어야 하고, 공평한 보급 방법을 제시해 국민의 마음을 달래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다.
문 대통령은 송구하고 죄송하다는 말로 두리 뭉실 넘어 가려고해선 안 된다. 석고대죄의 심정으로 감염 병에 안이하게 대처한 것에 대해 대국민 사과를 하고, 청와대와 상황을 오판케 한 복지부장관, 외교부장관, 법무부 장관 등 관계자들을 엄중문책하고 그 책임을 물어 징계까지 해야 할 필요가 있다. 앞으로 중국이 아니라 주권자이자 납세자인 국민 중심의 정치를 펴겠다고 약속해야 한다. 그러면 국민들의 화가 풀릴지도 모른다. 대통령의 리더십에도 문제가 있겠지만 ‘영(令)’이 서지 않는 것 같아 안타깝다. 총선은 점점 다가오지만 하루가 다르게 민심이 이반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젊은 층도 상당수가 돌아섰다. 대통령의 리더십이 매우 초라해진 것 같다.
트럼프의 메시지는 아주 짧고 명확했다. 코로나 19 사태가 터지자 단칼에 중국인 입국을 금지시키고 비행 노선까지 끊었다. “미국을 전염병에서 보호하는 게 우리의 목표”라며 방역 최우선을 확실하게 선을 끄었다. 중국 시진 핑도 큰불을 잡자마자 한국인 입국자를 우리에게 통보도 없이 칼 같이 격리를 했다. 윌 교민 아파트에 대못을 박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외교부 장관이 항의하자, 적반하장으로 핀잔만 받았다. “중국은 외교보다 국민을 위한 방역이 우선이다.”라고 했다. 두 강대국의 지도자의 닮을 꼴, 국민을 먼저 생각하는 리더십이다.
참으로 아쉽고 안타까운 것은 요즘 문 대통령이 “진단 능력은 우리가 최고”라고 자랑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우리 코로나 19 검진능력은 하루 1만 5000건을 소화시킬 정도로 일본이나 미국에 비해 경쟁력이 압도적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문 대통령이 이런 경쟁력을 자화자찬하는 건 낯 뜨겁고 민망하다. 그 검진 능력은 신종 플루와 메르스 사태를 거치면서 이명박. 박근혜 정권이 갖춰놓았기 때문이다. 2009년부터 평시에도 현장검사를 통해 진단의 정확성을 따져가며 인증 업체들을 관리해온 덕분인 것을 알았으면 한다.
2016년 문재인 야당 대표시절 연일 “박근혜 대통령의 낯 두꺼운 자화자찬...반성 없이 남 탓만 한다.”고 비난을 했다 그 해 12월 촛불집회에선 “박근혜 = 연쇄 담화 범” 이라며 탄핵을 요구했다. 이유는 한 발 늦은 대국민 사과로 국민감정만 상했다는 것이다. 더불어당 못된 습성이기도 하지만 문 대통령은 지난 4년 전 자신이 한 말을 까맣게 잊고 있는 모양이다. 이제야 처음 마스크 대란에 대해 사과했지만 그야말로 때는 늦은 분위기다. 이대로 계속 가다간 자칫 ‘연쇄 담화’ 참사가 결코 남의 일이 아닐 수 있다.
문 대통령의 메시지는 모호하고 국민을 헷갈리게 하고 있다. 위기 속 상황인데 뜬금없이 “방역과 경제, 두 마리 토끼를 잡으라.” 고 했다. “중국의 어려움이 우리의 어려움”이라고도 했다. 방역과 경제, 외교의 세 마리 토끼를 잡으라는 불가능한 주문을 한 것이다. 지난 달 12일 “방역은 빈틈없이 하되 지난 친 위축은 피해야 한다. 예정 된 행사는 계획대로 진행하라” 는 정세균 국무총리의 지시는 그 연장선상이다. 눈치 빠른 관료들은 단번에 코로나에 느슨하게 대처하라는 뜻으로 받아드렸다. 그 결과 소홀하고 안일한 방역 끝에 이 같은 재앙을 맞은 것이다. 측근들이 대통령 눈치만 보면서, 감염학회. 의사협회 등 전문가의 의견은 묵살했다.
문 대통령을 탄핵하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140만 명을 넘어섰다. 정권 응원의 주요 통로였던 청와대 게시판이 ‘대통령 탄핵요구’라는 시한폭탄으로 돌변했다. 집권 세력이 위기감을 느끼며 겁을 먹은 것 같다. 국민청원이 140만 명이 넘어서면서 법제위로 넘어간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될 듯싶다. 청원인들 중에는 세 번이나 연거푸 대통령을 탄핵한다는 게 고민스러워하는 순박한 국민들이 예외로 많다. 문 대통령을 진짜 탄핵하려기보다는 하도 답답하니까 정신을 좀 차리라고 하는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당이 참회는커녕(문 대통령의)탄핵을 막기 위한다는 이유를 들어 비례위성정당을 만들 구상을 하는 것이 드러났다. 이는 연동제를 만든 자기들을 속이고, 국민을 마치 개나 돼지로 여기는 아주 저급한 대책이 아닐 수 없다. 대통령 탄핵을 막기는커녕, 또 다른 탄핵의 불씨를 만들 수 있다. 민주당은 얼마 전에도 “비례정당은 종이 정당이고, 위장정당이고 가짜정당이며 참 나쁜 정치”라고 위성 정땅을 만든 미래통합당을 맹비난했다. 또 “민주당의 전략은 정공법이다. 만약 비례민주당을 만들 경우 국민의 매서운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이라고 했다. 명분만 만들면 된다고 했다. 이런 발언을 하루아침에 뒤집어 비례정당을 내세울 경우 역풍이 불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한다. 민주당은 유권자의 기억은 언제든지 재구성하면 넘어갈 수 있다는 오만함이 배어있다. 민주당의 특징은 필요에 따라 낯빛도 안 바꾸고 거짓말하기, 말 돌리기 일쑤라는 것이다. 엊그제 황교안 미래통합당 대표를 만난 자리에서도 문 대통령은 코로나 감염 세계 2위국이 된 방역 실패에 대해 끝내 사과하지 않았고, 중국인 입국금지 조치를 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도 명쾌한 답을 제시하지 않고 어물 쩡 넘어가 국민의 울분을 사고 있다.
지금 상황은 엄중하고 급박하다. 안보, 정치. 경제계 원로와 전문가들의 말에 귀기우리고, 코로나와 사투를 벌이는 현장의 목소리도 귀담아 들어야한다. 특히 방역 컨셉을 리셋해야 한다. 야당 인사라도 어떤 말을 하는지 놓쳐서는 안 된다. 지금은 신념이나 고집을 세울 타이밍이 아니다. 잘못된 건 인정하고, 되 집어 하루라도 빨리 코로나를 잡아야 한다. 지금도 어처구니없는 시간들이 지나가고 있다. 국민들이 보기엔 문 정권의 대응책이 부지하세월이다. 이제 중요한 건 놓쳐버린 시간들이 아니라 새롭게 맞이할 시간이다. 문 대통령은 이제라도 가신(家臣)들에게 ‘직언 청하기’를 해야 한다. 위기일수록 지도자의 결단이 필요하다.
[호 심송, 시인. 칼럼니스트. 방송인. 한국 심성교육개발연구원 원장.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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