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징용 배상판결과 관련된 일본의 반도체 등 부품 수출 규제로 우리 경제에 발등의 불이 떨어졌다. 과거사 문제를 빌미로 경제 보복 카드를 꺼내 든 아베 신조 총리의 조치는 반드시 철회되어야 맞다. 그러나 당장 급한 것은 발등에 불이 떨어진 우리다. 설령 세계무역기구에 제소해 몇 년이 걸려 승소한다 해도 그 사이 우리 기업이 입을 피해는 치명적이 아닐 수 없다.

사태가 이 지경이 되도록 방치한 정부 외교·안보 진용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대일 외교뿐만 아니라 외교안보 영역 전반이 총체적 난맥에 빠져 있다. 이 나라가 도대체 어디로 흘러가는 지 민심은 불안하기만 하다. 문재인대통령이 아베총리가 쳐놓은 덫에 걸려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일본은 정확하게 급소를 찌른 반면, 우리는 허둥대며 마구 주먹질만 해대고 있는 양상이다.

이런 와중에 여당은 최근 당내에 설치한 ‘일본경제보복특별위원회’의 이름 중 ‘경제보복’을 ‘경제침략’으로 바꿨다. 얼핏 보면 단순한 명칭 변경 같지만 그저 감정적으로만 치닫는 것 같아 씁쓸하기 그지없다. 이 문장을 보더라도 한·일간 무역 분쟁은 보복에 보복을 불러 진정되기는커녕 도리어 악화될 게 뻔하다. 엊그제 문대통령은 “결국 일본 경제가 더 큰 피해를 볼 것”이라고 발언한 것도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일까. 정부주요 인사들의 대일 대응이 지나치게 감정적이고 선동적으로 흐르고 있어 안타깝기만 하다. 문 대통령의 복심으로 알려진 최재성 의원의 ‘의병’ 발언에 이어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의 페북 여론몰이가 도를 넘고 있다.

최근 나흘 동안에만 무려 17건에 달한다. 그가 올린 게시물을 보면 대부분 감정적 반일을 선동하고 정부 비판세력을 친일로 낙인찍으며 국민 편 가르는 내용들뿐이다. 친일파 발언이 진보진영에서 조차 너무 심한 표현이라고 하자 “일본에 지레 겁먹고 쫄지 말자”고 막말 선동을 하기에 이르렀다.

조 수석은 그래도 청와대 참모이자 대통령의 최측근이며 교수출신인 지성인이 아닌 가, 조 수석이 자신의 말 한마디가 어떤 영향을 끼칠지 몰랐다면 무지한 것이고, 알고도 했다면 무책임한 처신을 한 것이다. 또 문대통령의 어용 지식인을 자처하는 유시민은 일본의 경제 보복에 대해 “아베 편드는 듯한 발언을 하는 분들, 도쿄로 이사를 가라”고 빈정거리는 발언을 했다.

유시민은 지금 사태를 무슨 종족 간 패싸움으로 몰고 가 진영의 이익만 챙기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은데, 세상은 유시민 생각처럼 호락호락하지는 않는다. 유시민 말대로라면 북한을 무던히도 생각하는 친북 좌파세력들은 모두 평야에 가서 살아야 하는 게 아닌 가. 이런 유시민은 아베 총리 부인에게 좀 당부의 말을 남겼는데 “이렇게 이웃을 괴롭히면, 남 눈에 눈물 나게 하면, 꼭 피눈물로 돌아오더라.”고 했다.

아베 총리 부인이 한국을 어떻게 괴롭히고, 또 무엇으로 한국인을 눈물 나게 했단 말인가. 오히려 문제인 정권 들어서 많은 사람들을 괴롭히고 울게 하지 않았는가. 모르고 하는 소리인가. 아님 미래의 자신들을 생각하고 하는 말인지 묻고 싶다. 유시민의 인격과 지식이 의심스럽다.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지만 대통령과 핵심참모들이 하나같이 냉정하고 이상적이기보다는 감정적인 면에 쏠려 ‘충견’(忠犬)같이 되는 모습이 국민들이 보기엔 매우 불안하기만 하다. 정부의 감정적 대응은 국민에게도 큰 영향을 미친다. 외교적으로 풀어야 할 문제가 양국 국민간의 감정싸움으로 번지면 수습할 길은 요원해질 수밖에 없다. 당장 국내에서 일본 상품 불매 운동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일부 시민단체들이 거리에서 일본제품 불매 운동을 하는 등 선포식을 갖기도 했다. 당장의 화풀이 용도로 효과는 있을지 모르지만, 실질적으로 일본에 타격을 주는 효과는 그리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의 감정적 대응이 계속될 경우 국민들이 동요 할 수 있고 더불어 일본의 반한(反韓)감정도 더욱 증폭 될 수도 있다.

일부 여당 정치인들의 발언은 자칫 외교적 대응이 무용지물이 되는 상황이 올 수 있다. 양심 있고 책임 있는 정치인이라면 득(得)보다 실(失)이 더 많은 불매운동을 말려야 한다. 이 틈을 타 얄팍한 민족주의를 선동하는 정치인들의 언행은 일본이 만들어놓은 올가미 속으로 스스로 빠져들자는 것이나 마찬가지임을 알고 대통령을 설득해야 옳다.

이번에도 사고는 정치인들이 치고 애먼 기업들이 수습하느라 사방으로 뛰어 다니고 있다. 소득주도 성장으로 자영업을 망쳐놓았다면 이제 한. 일 마찰로 수출기업까지 쑥대밭으로 만들지 않을 까 심히 우려된다. ‘누가 칼자루를 쥐고 있는 지, 누가 칼날을 잡고 있는지’부터 냉정하게 판단해야 한다.

한·일간 무역발생 원인의 상당 부분을 한국 측이 제공했다는 인식이 미국을 비롯한 국제 사회에 널리 퍼져있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아베가 잘못했다고 외쳐 본들 왕따가 되기 십상이다. 엄격히 말해 국제법적 진실은 패전국한테 ‘법적 배상 권’을 행사 할 수 있는 나라는 승전국 밖에 없다.

한국은 국제법상 일본에 승전국이 아니기에 처음부터 배상 권을 행사 할 수 없는 관계다. 전승 연합국들과 패전국 일본과 전후 처리 협상인 1951년의 센프란시스코 협정에 한국이 초대 받지 못한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였다. 사정이 이런대도 2018년의 대법관들은 법적인 배상청구권을 기어이 행사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그 논리적 귀결은 결국 ‘일본과 전쟁에서 승전국이 되어라’는 논리다. 그런 논리라면 6.25전쟁을 일으켜 이산가족을 만들고 수많은 사상자를 낸 북한과 중국에도 전쟁 피해보상을 청구하는 게 맞다. 문대통령은 2000년 징용피해자들이 일본기업을 상대로 낸 손해보상 소송에 원고 측 대리인으로 참여 한 바 있다.

이 소송은 2012년 대법원 소부의 판결에 이어 지난 해 10월 대법원 전원 합의체 판결로 승소가 확정됐다. 그 사이 변호사 문재인은 의뢰인을 대변하는 입장에서 국가 이익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하는 대통령으로 처지가 바뀌었다. 대법원 확정판결로 한. 일 협정에 기초한 양국 관계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는데도 문재인대통령은 삼권분립, 피해자 중심주의, 개인 권리 존중이라는 법률가적 원칙을 들어 사실상 이를 방치했다.

변호사 문재인과 대통령 문재인은 달라야 함에도 변호사의 논리에 얽매여 몰려오는 쓰나미 앞에서 방관만 하고 있었다. 어쩜 과거 정부가 한 정책은 모두 부인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예상대로 일본의 보복은 현실화 되었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이 되고 말았다. 사고(事故)는 대법원이 치고, 대통령은 ‘나 몰라라’ 하고, 대통령 복심들은 반일(反日)감정 유발하면서 선동하는데 고통은 국민이 속절없이 당하는 형국이 되어버렸다.

대법관들의 판단력이 야속하기만 하다. 이미 물은 앞질러졌다. 이제라도 문대통령과 복심들은 반일 감정으로 부추기며 국민을 선동하지 말고 냉철한 국가이성에 기반 한 성숙된 외교로 국익의 손상을 막아야 할 것이다. 설령 실착이 있었다면 깨끗이 승복하고 일본과 타협점을 찾아야 한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경제의 ‘실정’과 ‘남북관계의 교착’을 일본 때리기로 만회 할 생각일랑 추호도 갖지 말라. 오산도 그런 오산은 없다. 그만큼 국민이 어리석지는 않다. 비겁하고 가증스러운 자는 싸움에서 얻어맞고도 상대를 때려눕힐 생각은 못하고 동네방네 징징대고 다니며 ‘쟤가 나를 때렸어요.’ 하면서 소란을 피운다. 문 정권이 그런 꼴이다.

지금 우리에게는 아베 총리 등 일본 내 인맥이 두터운 이낙연 총리가 있다. 과거 한.일 문제라면 발 벗고 나선 분이다. 아베와 비슷한 성향의 이 총리를 특사로 보내 핵심 쟁점을 타결했으면 한다. 그 분의 능력을 믿어보자. 한. 일 간 국가 충돌을 피할 수 있는 시간은 여전히 남아있다.

이 총리는 아베를 비롯한 정 경계에 두터운 인맥을 갖고 있는 지일파로 지칭될 정도로 일본통이다. 다만 최근 대선 후보로 거론되면서부터 거리를 두고 있는 형상이지만 우리나라 제 2인자가 아닌 가. 아베에게 명분을 주기위해서도 이 총리가 특사로 가야한다. 이 같은 악화된 한. 일 관계를 아베도 원하지 않을 것이다.


[호 심송, 시인. 칼럼니스트. 방송인. 한국 심성교육개발연구원 원장.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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