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득(得)보다 실(失)이 더 많은 대통령의 하명(下命) 수사
2019년 06월 20일 (목) 10:04:52 안호원 egis0191@hanmail.net

지난 3월 문재인 대통령이 “검찰과 경찰의 현 지도부가 조직의 명운을 걸고 책임져야 할 일”이라며 특권층 비리 의혹에 대한 수사를 지시한 바 있었다. 청와대가 지목한 것은 장자연. 김학의, 버닝썬(장학썬)사건이었다.

문 대통령이 그런 지시를 내릴 때부터 물씬 악취가 풍기는 것을 느꼈다. 한 여성의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함보다는 내면에는 이 사건을 빌미로 또 다른 정적을 제거할 목적이라는 것을 쉽게 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의 지시가 하달된 뒤 지지부진하던 법무부 산하 검찰과거사위원회 활동이 활발해지고, 경찰의 버닝썬 사건 수사팀도 확대됐다. 그 뒤 석 달 뒤 결과는 초라했다. 장자연 사건은 재수사가 불가능하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김학의 전 차관은 여러 차례 수난을 겪은 후 구속되었으나 본래의 문제였던 성범죄는 온데간데없고 뇌물 범죄로 죄목의 방향이 바뀌었다. 본래의 취지와는 다른 ‘별건 수사’ 의 성격이 짙다. 누가 봐도 집어넣기 위한 수사로 볼 수밖에 없다. 특권층 비호의혹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장자연. 김학의 사건을 어느 정도 아는 법조인들은 청와대의 움직임을 걱정했다. 이는 대통령의 하명(下命)수사 지시로 법무부와 검찰이 과잉대응하며 절차적 정의를 훼손할 가능성이 다분하고, 또 재수사를 한다 해도 결과가 본질적으로 달라지기 힘든 사안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한다고 했지만 더는 안 되네요” 지난 4일 법무부 검찰과거사위원회 수사 권고 관련 수사단이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사건의 수사 종결을 발표하면서 한 말이다. 김 전 차관과 윤중천씨가 구속됐지만, 그동안 세간에 관심을 모았던 특수강간 혐의는 적용되지 않았다. 그동안 활동을 했던 수사단의 어려움을 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창대하게 시작했던 과거사위의 퇴장은 참으로 미약해 보였다.

지난달 말 활동을 마친 과거사위는 애초 지난 검찰의 과오를 바로 잡기 위해 출범했지만, 끊임없이 변질됐다. 정치적 편향성을 보였고, 피의 사실 공표가 버젓이 이뤄졌다. 산하 진상조사단의 내분이 여과 없이 드러나기도 했다. 그러나 제대로 혐의가 밝혀져 기소된 경우는 드물었다.

이를 보면서 애초에 첫 단추를 잘못 끼운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첫 단추를 잘 못 끼면 옷 모양새도 그렇지만 모든 게 뒤틀어진다. 제대로 바로 잡기 위해서는 모든 단추를 다 풀어야 한다. 첫 단추를 정확히 끼워야 하는 이유다. 그저 단추 몇 개만 풀면 되는 간단한 일은 아니다. 하물며 우리 사회의 중요한 진실을 밝히는 일이라면 첫 단추를 제대로 끼우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아야 할 것 같다.

더욱이 오랜 시간이 지나 이제는 정확히 바로 잡을 길이 없는 장자연 사건을 단지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대대적으로 다시 수사를 한다는 게 아쉬움으로 남는다. 애초에 첫 단추를 잘못 끼운 사건이었다. 과거사위의 무리한 행보에는 문재인의 책임도 크다. 문 대통령은 대통령 취임 이후 삼권이 분리되었음에도 불구, 수차례 검찰 수사를 지시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지난 3월 18일엔 김학의. 장지연 사건 등을 ‘특권층 사건’이라 규정하고 철저한 진상 규명을 하달했다. 이에 화답이라도 하듯 과거사위의 활동기간이 연장됐고, 수사 권고가 이뤄졌다. 하명수사와 다르지 않은 과정으로 김학의 수사단이 다시 꾸려지고 내로라하는 칼잡이 수십 명도 모였다. ‘여환섭이 못하면 아무도 못한다.’는 그 여환섭이 단장을 맡았지만, 결과는 예상한 대로 신통찮았다.

공소시효 논란이 제기된 오래 전 사건인데다 이미 수차례 수사 끝에도 진실이 드러나지 않았는데 이제 와서 그 전모가 밝혀진다면 전 수사관들의 직무태만이 드러날 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 농간을 부리는구나 하는 이상한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이런 우려는 현실로 나타났다. 검경이 나름 열심히 뛰었지만 새롭게 드러난 범죄 사실은 거의 없었다. 윤지오라는 배우가 등장해 장자연 사건과 관련된 갖가지 주장을 하면서 언론뿐만 아니라 검경이 들떠있을 정도로 세간에 관심을 보였지만 사실로 확인된 것은 전무하다시피하고, 오히려 국민들까지 윤지오라는 여배우에 놀아난 결과가 되어버렸다.

김학의 사건은 ‘별장 성폭행’ 여부가 핵심이었지만 여전히 그 실체를 파악할 수 없다는 게 검찰의 설명이다. 진상을 규명하라는 문 대통령의 지시가 무색해진 상황이다. 결과가 이처럼 허망하지만, 청와대는 대통령이 국민 공분에 공감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정치적 이득을 얻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특히 사건에 직. 간접적으로 연루된 전 정권 핵심인사나, 껄끄러운 특정 언론사에 충격을 주고 힘을 빼는 효과를 얻었다고 뒤로는 웃음을 질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얻은 것보다 잃은 게 더 많다.

첫째, 문 대통령의 권위가 상처를 입었다. 이에 앞서 문 대통령이 수사를 독려한 ‘서울 중앙 지검장 격려금’ 사건과 ‘박찬주 대장’ 사건, 그리고 이재수 기무사령관 계엄령 사건도 사실상 무죄로 판명이 난 바 있다.

둘째, 조국 민성 수석 등 대통령 참모진의 무능이 여실히 드러난 것이다. 김학의. 장자연 사건 내용을 면밀히 살펴봤다면 공소시효나 증거 확보문제 때문에 재수사가 성공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았을 수도 있다. 이 사건에 대해 대통령에게 보고한 청와대 참모 또는 법무부 간부에겐 지엄한 대통령 말의 무게를 깎아내린 책임이 크다.

셋째, ‘인치’(人治)에 의해 ‘법치’(法治)가 무참히 훼손되었고, 법무부와 검찰은 김 전 차관에 대한 초법적 출국금지 등의 무리한 조치로 권위를 스스로 깎아내리는 ‘우’를 범했다. 문 대통령은 취임 이후 줄곧 과거에 대한 단죄(斷罪)를 강조해왔다.

잘못된 과거는 단절(斷切)하고 필요할 경우 처벌하는 게 맞다. 그러나 5년의 임기 중 그나마 뭘 좀 할 수 있다는 초반 2년을 과거와의 싸움으로 채워졌다. 대한민국 우수 검찰력과 정보기관은 그 기간 동안 적폐수사에 총동원되었다. 주 업무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얘기다. 현재의 민생을 어지럽히는 사건에 투입할 포렌식 인력들이 바닥날 정도로 오직 과거만을 파는 데 소일했다.

그 결과로 안보는 물론 경제위기에 직면한 상태로 몰아넣었다. 현재 펼쳐지고 있지만 이대로 시간이 지나가 버리면 커다란 후회를 남길지도 모르는 여러 상황과 사건의 현상을 먼저 살펴야 하는 게 중요 할 것 같다.

문제는 문 대통령이 과거에 집착하면 할수록 인사권자에 기민한 경. 검찰은 이를 수사 지시로 받아들일 것이고 과거사위의 낭패에서 입증되었듯 수사력의 낭비로 귀착될 수밖에 없다는 거다. 대통령이 수사. 조사가 진행되고 있는 사건에 대해 구체적인 언급을 하지 않는 게 그동안의 관행이었다. 공정성을 기하기 위해서다.

최고 인사권자의 의중이 드러나는 순간 수사의 흐름이 바뀌고, 변질되는 등 수사 담당자가 과잉 또는 축소의혹을 느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통치권자가 검찰과 경찰이 독립적이고 객관적인 수사를 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면, 하고 싶은 말을 억누르고 결과를 지켜보는 인내를 보여야 할 것이다.

국민들이 지금 궁금해하고 원하는 것은 문 대통령의 딸의 이민, 아들 사위문제가 한 점의 의혹도 없이 밝혀지기를 바라는 것뿐이다. 문 대통령은 바로 그 문제부터 지시를 내렸으면 한다.

11일 검찰총장이 새로 임명됐다.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사건과 관련,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유명한 말을 남긴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이다. 윤 검찰 총장은 문 대통령의 사람으로도 알려진 법조인이다. 윤 지검장의 검찰총장 지명 소식에 여야는 정반대 반응을 내놨다.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적폐청산과 국정농단 수사를 마무리하고 미래지향적인 새로운 검찰 개혁을 이끌 적임자라고 판단된다.”고 했다. 그러나 민경욱 자유한국당 대변인은 "이제 얼마나 더 크고 날카로운 칼을 반정부 단체, 또 반문 인사들에게 휘두를 것입니까.”라는 상반된 평을 했다.

여야의 시각차는 앞으로 있을 국회 청문회에서 극명하게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이 다른 후보군에 비해 기수가 낮은 윤 지검장을 총장 후보로 지명한 배경에 조폭 문화에 비유되는 ‘줄사퇴’ 관행을 깨뜨리려는 의도도 있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함께 나왔다.

고검장을 거치지 않고 전격적으로 승진한 윤석열. 윤석열은 중앙지검장으로 '사법 농단' 사건과 이명박 전 대통령 사건 같은 대형수사를 해오며 문 대통령의 신임을 얻었다. 이번 인사는 자칫 다음 인사에 잘못된 신호를 줄 수도 있다는 게 법조계의 우려다.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 확보를 위해서도 직행코스 단절은 중요하다고 본다. 원칙론자를 원칙에 맞게 쓸 수는 없었을까, 아쉬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본디 수사란 과거의 잘못을 들춰내는 작업인지라 검찰에 미래지향적이 되라고 감히 말하기는 그렇지만 적어도 국민들의 일상과 관련된 문제 해결에 검찰력을 집중하겠다고 대통령에게 조언할 수 있는 배짱 있는 총장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기우’(杞憂)에 지나지 않는다.

법 집행의 저울이 한쪽으로 치우쳐서는 안 된다.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의 검찰과 법원 간의 갈등과 반목이 떠오른다. 검찰이 정치권 눈치를 보며 시녀가 된다면 정의가 살아있는 밝은 사회를 기대할 수 없다. 정권은 언젠가는 바뀐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호 심송, 시인. 칼럼니스트. 방송인. 한국 심성교육개발연구원 원장. 교수]

※ 이 칼럼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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