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2주년을 맞이하면서 청와대 출입기자와의 공동기자회견이 아닌 공영방송사인 KBS와 대담형식의 단독기자회견을 가진 바 있다.

결론을 먼저 말한다면 대담에서 보여준 국정 전반에 대한 대통령의 현실 인식이 국민 체감과는 너무 동떨어지고, 동문서답하는 모습을 보며 청취 내내 착잡한 심정이었다.

기본 사실에 대한 왜곡이나 앞뒤가 맞지 않는 말로 더듬거렸다. 국정운영방식과 철학의 편협함까지 최고지도자로서의 품격을 손상케 할 정도의 답변이 많았다.

대담 내용을 요약하자면 적폐수사 재판은 지난 정부에서 시작한 일이다. '인사실패' '인사 참사' 라는 말에는 동의할 수 없다. 지금도 장관들 일 잘하고 있지 않은가? 청와대 검증에서 밝혀내지 못했다고 검증 실패로 책임져야 한다고 말할 순 없다.

청와대가 흠결이 있음에도 발탁하려는 것은 능력이나 실력을 평가해서다. 여.야.정 상설국정협의체를 분기별로 하기로 했는데 야당이 약속을 지키지 않아 이뤄지지 않았다.

특히 독재자 소리를 들었을 때의 느낌을 물었을 땐 촛불민심에 의해 탄생한 정부인데, 참 뭐라 말씀드려야 할지 모르겠다며 우물 주물 하는 모습.

그러면서도 여전히 인도적 차원에서 대북 식량 지원을 해야 하고, 트럼프도 전폭적 지지를 보여줬다고 답변하는 문 대통령.

그래서일까 이번 대담은 대통령의 답변보다 질문하는 기자의 태도에 더 많은 관심이 쏠리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졌다.

우선 정치부 기자가 단독으로 ‘취임 2주년’을 맞는 대통령과의 인터뷰 형식이 대국민 소통 방식으로 적절했냐는 논란이 화제로 떠올랐다.

국민들이 궁금해 할 여러 현안들이 분야별로 쌓여 있는 상황에서 대통령의 심중을 알 수 있는 흔치 않은 자리였다. 대선 때의 다짐과 달리 집권 2년간 공식 기자회견은 단 3차례에 불과했다.

청와대 출입기자들과의 기자회견은 올 1월 경기방송 김예령 기자에게 혼쭐이 나 두렵고, 자신이 심어둔 대표가 있는 KBS와는 믿는 구석이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일까 공영방송인 KBS 기자 1명이 단독 대담을 했다. 문재인은 대담 중 경제 분야에 대해서도 경제 악화에 대한 실책을 인정하기보다 유리한 통계를 앞세워 정책 정당성만을 고집했다.

‘시간이 가면 다 잘 될 것’이라는 근거 없는 낙관주의에 취해 구체적인 해법을 제대로 제시하지 못하고 두리뭉실하게 넘어가려는 태도를 보였다.

또 ‘최저임금 인상으로 고용시장 안에 들어온 분들의 급여가 상당히 좋아졌다’ 며 긍정적인 측면만을 강조했다. 특히 소득주도 성장 정책 기조를 바꿀 뜻은 전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인사 실패도 잘하고 있다며 오히려 지적하는 남을 탓한다. 문재인의 이 같은 인식은 견강부회에 가깝다 볼 수 있다.

최저임금이 오르면 당연히 저소득 노동자가 혜택을 보는 것은 삼척동자라도 다 알 수 있다. 문제는 문 대통령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정책 단견(短見)으로 경제 전반에 멍이 들고 있다는 것이다.

무리한 최저임금 인상 충격은 자영업자와 실직자들이 고스란히 떠안고 있다는 사실이다. 보고 싶은 것만 봐서는 문제를 풀 수 없다.

주 52시간 근로제로 산업현장이 몸살을 앓고 있는데도 “주 5일 근무제처럼 안착할 것”이라고 뚱딴지같은 말을 해 듣는 사람들이 귀를 의심할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당은 독재자라고 하는 데, 그 소리를 들으면서 어떤 느낌이었나?’ 라는 질문에는 KBS와 청와대 인터넷게시판을 뜨겁게 달구는 불소시게가 되었다.

‘무례하다’‘말을 끊는다.’는 항의와 비난의 글이 차고 넘쳤다. 질문을 옹호한 한 아나운서는 즉각 사과문을 올려야 했고, 송현정 기자를 옹호한 댓글을 남긴 동료는 융단폭격에 시달려야 했다.

극성스런 ‘문빠’(문재인지지자들) 극성지지층이 벌린 무차별 공세다. 소위 ‘문빠’들의 이런 게릴라식 공격은 이번뿐이 아니다.

올해 1월 신년기자회견장에서 경기방송 김예령 기자가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나?” 란 질문에 발끈한 문빠 들이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대통령이 중요한 메시지에 대해 ‘동문서답’ 했는데, 대담 후 엔 대통령 헛소리와 동문서답을 지적하기보다 기자 개인에 대한 질문을 문제 삼는 건 정상이 아니다.

더 나아가 문 대통령에게 불리하다고 생각되면 무차별로 공격하는 비이성적 태도는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폭력이 아닐 수 없다. ‘똥 싼 놈이 오히려 역정을 내는 모양새’ 다.

이는 다수의 힘으로 겁박해 입을 막겠다는 발상이다. 결국 여론은 왜곡될 수밖에 없다. 필자도 과거 90년대 중반 보건복지부를 출입하는 기자로서 ‘한약분쟁’ 시 한 협회를 지적하는 기사를 썼더니 항의 전화가 너무 많이 와 전화통에 불이 난적이 있었다.

악플과 문자 폭탄, 항의 전화 앞에 시달리면 누구든 위축될 수밖에 없다. 이런 식의 배타성과 패권주의엔 ‘옥상 옥’의 청와대가 분명한 자제 메시지를 보냈어야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청와대는 이를 관망만 하며 ‘득’을 찾으려고만 한다. 이런 여건 속에서도 송 기자는 거짓말, 본질을 호도하는 답변, 동문서답에 대해 기자 정신에 입각, 매섭게 몰아치면서 많은 국민들로부터 긍정적인 박수를 받았다. 송현정 기자는 “진짜 방송 언론인”이다.

송현정 기자야말로 요즘 멸종상태이다시피 한 언론계에 진짜 방송 언론인이었다. 송 기자가 모처럼 인터뷰의 진면목을 보여준 것이다.

시종 긴장을 자아내는 취재 태도는 선배 기자 입장에서 노련한 기자임을 인정하며 칭찬해주고 싶을 정도다.

상당한 언론사 기자들, 문비어천가를 부르며 물개박수언론들, 청와대 기자회견장에서 고작 아부성 질문이나 하고, 기자 갖고 놀기에도 질문 하나 제대로 못 하는 기례기 들이 아니었는가.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이낙연 국무총리의 궤변은 생각하는 국민들을 어이없게 했다.

이낙연은 ‘신문’의 ‘문’(聞)이 ‘들을 문(聞)’자임에도 기자들이 ‘물을 문(問)’자로 잘못 알고 근사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며 잘 듣는 일이 먼저다 동사로서 신문은 새롭게 듣는 일이다. 라는 글을 SNS에 올렸다.

이낙연은 언론에 깊은 철학과 지식을 갖고 있는 것처럼 송 기자의 태도와 질문에 대해 나무랬다. 이낙연은 과거 동아일보 기자출신이다. 정당에도 출입했던 언론인 출신이다.

그런 그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것 같아 감히 지적을 하고자 한다. 여기서 말하는 신문에 ‘문’(問)은 물어서 듣는 것이다.

신문은 ‘동사’가 아니라 ‘명사’다 독자가 새로운 소식을 듣는 종이 매체가 신문(新聞)이다. 굳이 동사로서 '들을 문'(聞)자 신문을 얘기하고 싶었다면 그것은 ‘독자’가 듣는 것이다.

따라서 기자는 말하기가 껄끄러운 것에 대해서는 말을 자르면서까지, 독자가 알고 싶어 하는 것을 묻는 거다. 기자가 묻지 않으면 취재원은 답을 하지 않는다. 물어서 듣기 위해서 묻는 거다.

검증하고 따지기 위해 묻는 거다. 대통령 말에 끼어들어 공격적으로 질문을 했다고 질타하는 건 기자출신으로 할 말이 아니다.

전반적으로 KBS 대담에서 보여 준 문 대통령의 국정 해법은 ‘무조건 정책을 믿고 기다려 달라.’는 것이다. 그러나 단 한 번의 약속도 지키지도 않았고, 거짓말 일색으로 이미 신뢰감도 떨어진 상황에서 기대를 갖고 믿을 국민은 없을 것 같다.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문 대통령은 각계각층 목소리를 듣는 여러 형태의 자리에 좀 더 활발하고, 꾸준하게 서야 한다.

필요한 때 원하는 말만 하고 임시웅변 식으로 말 돌리기하면 더 이상 국민의 공감을 만들기는 쉽지 않다. 특히 소통은 어떤 것이든 쌍방을 전제로 해야 하는데, 지금처럼 독선, 독주로 가면 ‘화’(禍)가 미칠 수 있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하고 싶은 것만 한다면 그토록 비판만 하면서 적폐청산 대상으로 꼽는 전임 정부를 탓할 수도 없다. 다를 것이 없기 때문이다.

평소 ‘국민과 수시로 소통하는 대통령’이었다면 오늘과 같은 대담 형식 자체가 이렇게 불붙지는 않았을 것이다.

안보나, 국방부나, 통일부나 남북관계가 제대로 된 검증조차 되지 않은 상황에서 대통령이 정책 실험을 하는 것은 무모하기 짝이 없을뿐더러 패망(敗亡)을 가져올 수도 있다는 우려감이 든다.

이런 위기 상황에서 앞으로 남은 3년을 더 기다리며 인내할 국민이 과연 얼마나 될까? 국민들은 미사어구에 번질 한, 거짓말을 하는 ‘입’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국민은 국민의 작은 소리까지도 듣고 실천하는 귀를 갖고 있는 대통령을 원한다. 국민들이 인내하며 기다리기에는 3년은 너무 긴 것 같다. 이제는 국민들이 잠에서 깨어나 눈을 크게 뜨고, 일어설 때가 왔다.

[호 심송, 시인. 칼럼니스트. 방송인. 한국 심성교육개발연구원 원장.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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