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평등하게 태어났다. 만인은 법 앞에서 공평하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을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제는 우리 귀에 익숙해진 성어가 된 유전무죄, 무전 유죄(有錢無罪, 無錢 有罪)가 계속 오르내리고 있는 것은 그만큼 공정하게 법이 집행되지 않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근래 정치권을 보면서 불현듯 ‘봉공여법’(奉公如法-공적인 일을 법대로 처리하다)라는 고사성어가 떠오른다.

모든 사람에게 두루 관계되는 공적인 일(奉 公)은 법에 의해 처리되어야 한다.(如法)는 이 말은 ‘사기’(史記)에서 나온 말이다.

우리는 매우 정직한 사람을 지칭할 때 ‘법 없이도 살 사람’이란 표현을 곧잘 쓴다. 아마 우리 무의식에는 법이 윤리나 도덕의 불가피한 최소한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는 것 같다.

말 대로 충분히 윤리적인 사람에게는 당연히 법은 필요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평범한 보통 사람들을 규제하기 위한 최소한의 필요악으로 지칭되는 법은 존재할 수밖에 없다.

어떤 의미에서는 근대정치라는 것은 이러한 법에 대한 최소 주의적 정의가 끊임없이 확장되어가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이유는 권력의 자의적 행사로부터 시민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하나하나의 세부적 절차를 미리 규정하는 것이 매우 바람직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로 볼 때 법은 통치의 효율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통치를 복잡하게 만드는 의미가 있었고, 삼권 분립과 사법부 독립의 이상 또한 이러한 전제 위에 놓여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대한민국을 비롯한 모든 민주국가들이 겪었던 역사를 보면 법과 사법부가 서민과 약자의 편에 서 있었던 적은 거의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나라들이 겪었던 권위주의 정권하에서 사법부는 대체로 정권의 적극적인 시녀였거나 소극적인 방조자로 전락했으며, 법이 규율하는 대상은 힘 있는 정권이 아니라 늘 약자인 국민이었다.

참으로 재미있는 것은 탈법적 권위주의를 극복하는 민주화의 과정에서 드러나는 공통점은 사법부가 ‘법치주의’ 의 기치 아래, 정치과정에서 매우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모습이다.

스스로 준 사법부로 칭하는 검찰이 독점적인 기소권을 행사하면서 구속영장을 청구하면 이를 어느 판사가 늦은 새벽까지 고독하게 심사해 내리는 결정에 온 국민의 희비가 엇갈리지 않았던가.

그런 사법부가 엊그제 현직 대통령의 측근인 김경수 경남도지사를 형 확정 전 전격 법정 구속했다.

이곳에서 어떤 결정이 옳았고, 어떤 결정이 틀렸다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걱정되는 것은 사법부(검찰포함)가 그 과정에서 지나친 정치적 부담을 지게 됐거나, 즐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우려감이고, 또 이러한 현상이 사실 탈권위주의 체제가 일반적으로 겪는 문제라는 것이다.

김경수 지사가 구속되자 홍영표 더불어 민주당 원내대표는 “사법부 요직을 장악하고 있는 양승태 적폐 사단이 조직적으로 저항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민주당은 김 지사의 유죄 판결이 나오자 곧바로 ‘사법농단 세력 및 적폐청산 대책위원회’라는 희귀한 조직을 또 하나 탄생시켰다.

위원장 역할을 맡은 박주민 의원은 ‘법원에 남아있는 사법농단 관련 판사들에 대한 문제 제기를 지속해 사법개혁을 이루겠다.’고 페이스북에 올렸다.

민주당에서는 한 술 더 떠 재판장이었던 성창호 부장 판사를 탄핵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적폐판사의 보복 판결’로 프레임을 짜 맞혀놓고, 판결 불복을 선동하는 집권당의 무책임하고 ‘안하무인’ 격인 행태가 참으로 개탄스럽다.

민주당 등 재판 결과에 불만을 품은 세력들은 성 부장 판사의 이력을 문제 삼고 있지만 사실과 거리가 먼 억지 주장을 하면서 많은 국민들로부터 빈축을 사고 있다.

성 부장판사가 양 전 대법원장 비서실에서 근무한 적이 있다는 게 ‘적폐’ 분류의 핵심 이유지만 이 역시 억지에 가깝다.

대법원 비서실 판사는 수행, 보좌 등의 일반 비서 업무를 하지 않는다. 또한 지위를 탐하는 법관이 손을 들고 가는 곳이 아니다.

한 때 성 부장판사가 사법농단 의혹 수사와 관련해 검찰에서 조사를 받았다고 하지만 참고인 신분에 불과했다. 특히 그가 범죄행위에 연루되었다는 증거도 제시된 바 없다.

성 부장 판사는 누구인가. 3년 전 영장전담판사로서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 조윤선 전 장관. 체육관광부장관, 최경희 전 이화여대 총장, 김경숙 전 이대 학장 등 ‘국정농단’ 사건 피고인들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한 판사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특수 활동비 수수와 공천개입에 대한 재판에서는 징역 8년을 선고한 판사다. 당시 민주당에서는 “사법 정의 실현” 운운하며 재판을 재평가하는 등 성 판사를 극구 칭찬했다.

적어도 김 지사에 대한 판결 전까지도 변호인단이나 민주당에서 성 부장판사가 재판을 맡는 게 적절하지 않다고 의견 제시도 없었다.

그럼에도 재판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돌연 태도를 바꿔 담당 법관을 적폐로 내모는 것은 ‘사법질서에 대한 도전’이 아닐 수 없다.

박 전 대통령 재판 후 일각에서 불복 움직임을 보이자 지금의 여당인 민주당이 바로 그렇게 말하지 않았는가.

최근 논란이 된 손혜원 의원 관련 사건도 결국 고소. 고발로 이어지면서 정치권 분쟁으로 검찰과 법원이 투기와 투자를 구분하고 이해충돌을과 지역활동을 가릴 부담을 지게 됐다.

특정 정당, 특정인으로 불기소나 무죄 판결을 통해 쉽사리 면죄부를 받게 해서는 안 된다. 사법부는 정치권과는 달리 분명한 해답을 비교적 신속하게 내릴 것이며, 확실하게 승자와 패자를 명확하게 가려줄 것이라고 믿고 싶다.

또 무능하고, 부패한 정치인들을 국민을 대신해서 단죄하고 이들의 권한을 박탈하여 전문적인 법률을 행사해야 한다. 손 의원 사건의 경우도 그렇다.

검찰이나 사법부가 판단하기도 전 집권당이 정치적 모함이라며 억울함을 호소하고, 감싸는 모습은 보기에도 좋지 않다.

법적인 조사도 이뤄지기 전 무죄를 주장하는 것은 그야말로 사법질서에 대한 도전이다. 재판에 대한 비판은 증거와 법리의 테두리 안에서 이뤄져야 한다.

이번 판결은 김 지사가 ‘드루킹’ 일당의 여론조작에 공모했다는 여러 증거가 드러난 상황에서 판단 한 것이다. 댓글 조작 프로그램‘ 킹크랩’의 기능을 김 지사가 몰랐다고 보기가 어렵다.

또한 이 같은 주요사안이 문재인 대통령에게까지 보고가 되었을 것이란 점도 관심에 대상이 될 수 있는 사건이다.

그런데 민주당과 김 지사 지지층이 재판 내용에 대한 불만이 아니라 엉뚱하게도 재판장의 이력에 공격의 초점을 맞춘 것은 이런 증거들을 부인 할 수 없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할 꼴이 되었다.

더 이상 민주당은 판사 이력을 앞세워 국민을 선동하지 말고, 판결 불복 선동과 사법부에 도전하는 작태를 멈춰야 한다.

그리고 뒤늦게 사법부 권의 침해라고 밝힌 김명수 대법원장은 법치주의 훼손 세력들에 대해 지휘고하를 망론하고 엄중히 경고, 사법부의 권위를 찾아야 한다.

김 대법원장이 취임 때 “재판 독립을 반드시 지키겠다.”고 약속한 말이 떠오른다. 정치권도 그렇지만 요즘처럼 사법부에 대한 논란이 심했던 적도 없을 듯싶다.

특히 ‘적폐청산’ ‘사법농단’ 이라는 말이 연일 지면을 장식하면서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 바닥에 떨어졌다.

중심을 지켜야 할 사법부가 정치권의 눈치를 보며 좌우로 흔들리다 보니 그 어느 쪽도, 저울질할 사람을 신뢰하지 않는 현실이 되어버렸다.

법(法)은 물 수(水)변에 갈 거(去)를 합친 것이다. 이는 법이란 물 흐르듯 해야 한다는 의미다. 물이 가진 상징성은 공평함이다.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지만 결국은 수평을 이루도록 한다.

다양한 그릇에 담겨 모양이 다르거나, 색깔이 달라보일 때도 있지만 본질은 항상 유지 한다는 게 물이다. 법이란 세상을 공평하게 하고, 바르지 못한 것을 제거해야 한다는 뜻이다.

또한 법은 어느 한 쪽에도 치우쳐 멀거나 가깝지 않고 공평하게 한다는 의미도 담겨 있다. 전 헌법재판관 출신 법조인의 말이다.

“자신이 내리는 판결에 확신이 서지 않을 때 이 재판에 참여한 참여자들(원고. 피고 등) 중 가장 약한 사람의 삶이 나아지는 방향으로 영향을 미치느냐 아니냐를 먼저 생각한다. 그의 삶이 조금이라도 나아지는 방향의 판결이라는 생각이 들면 그 방향으로 판결을 했기 때문에 크게 실수한 적은 없다.” 법이 정치권에 기웃거리며 신뢰를 잃은 요즘 시대에 새겨들을 말인 것 같다.

정치는 정치가에게, 법 판결은 법률가에게 맡기는 것이 올바른 선택일 것이다. 사법부는 법이 사사로움에 개입되지 않는 만인 앞에 공평하다는 것을 체감토록 해야 한다.

[호 심송, 시인. 칼럼니스트. 방송인. 한국 심성교육개발연구원 원장.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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