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아프면 정확한 진단부터 받아보는 것이 맞다. 그렇지 않으면 병을 키우고 나아가서는 멀쩡한 다리를 절단하는 의료사고까지 발생하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정치도, 경제도 이와 다르지 않다.

진단이 정확해야 거기에 유효한 정책수단을 쓸 수 있다. 그래서 정책 당국의 진단은 매우 객관적이고 정교해야 한다.

하지만 문재인 정권이 들어선 뒤 현실과 동떨어진 정책 오진과 발언이 꼬리를 물고 있다. 특히 이런 ‘현실 이탈 진단과 발언’ 이 청와대에서 쏟아져 나오고 있다는 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다.

제비 한 마리를 보고 봄이 왔다고 말하는 것은 곤란하다. 이 같은 단발적 근거를 놓고 마치 우리 경제가 갑자기 활력을 되찾기나 한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 문재인의 인식과는 달리 지금 우리 정치. 경제는 침체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좋은 것처럼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청와대 내부의 의사결정과정에는 심각한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지난 이야기지만 청와대 참모들은 지난 5월에도 대통령에게 현실과 괴리된 근거를 제시하며 “최저임금 인상의 긍정적 효과가 90%”라고 앵무새처럼 발언하게 해 비아냥거림을 받은 것을 우리는 기억할 것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자영업자를 쏙 빼놓고 통계를 뽑은 것으로 드러나기도 해 청와대가 머쓱해하기도 했다. 매사 이런 식으로 정책을 집행하다 보니 고용참사의 끝은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 와중에 청와대 참모는 “경제체질이 바뀌는 진통”이라고 했다. 개그도 아니고 ‘눈 가리고 아웅’ 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언제까지 국민을 우롱할 것인지. 청와대 참모들은 역대 정부에서도 경제 실상을 호도하다 더 큰 위기를 불렀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겠는가, 한 마디로 청와대가 너무 세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까불다 사고를 치는 것으로 해석된다.

사람과 마찬가지로 권력도 건방져 보이면 실제로 건방진 것이다. 청와대가 그렇다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청와대의 586 참모 그룹은 도덕과 정의의 이름으로 살아있는 권력을 탄핵하고 집권해 압도적인 지지를 확보하는 데 성공한 바 있다.

이들의 특징은 김대중. 노무현 민주화. 진보정권의 신중함이 기득권 세력에게 반격의 빌미를 주었다고 믿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집권 초에 일사천리로 적폐를 청산하려 했다.

이런 열망의 소용돌이 속에서 청와대의 오만은 위험수위를 넘나들고 있다. 문 대통령은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비토당한 후보자들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장관으로 임명했다.

심지어는 어머니 말씀을 거역할 수 없었다는 모 인사도 부총리로 임명할 정도로 권력을 휘둘렀다.

문 대통령 취임 초 야당 의원이 ‘낙하산 인사, 보은 인사, 부적격자 인사를 하지 말라’ 고 주문하자 ‘그런 일은 절대 없도록 하겠다.’고 했었다. 그러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감사원. 국정원. 검찰. 국세청을 통해 전방위적인 적폐청산을 주도하고 있다. 2명의 전직 대통령을 철장에 집어넣고, 그것도 모자라 23일엔 전직 대법원장도 사법농단의 피고인으로 법정 구속했다. 기업인들도 언제 자기 차례가 될지 몰라 전전긍긍하고 있는 실정이다.

정의와 평등은 언제나 옳다. 문제는 이런 추상적 가치가 압도하면서 한국 사회를 이끌어 온 도전과 혁신의 현실적. 구체적 기운이 약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상태로는 공동체가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갈 수 없다. 집권세력이 잠시 호흡을 고르고 숙고해야 할 시점이라고 지적하고 싶다.

80% 대까지 올라갔던 대통령의 지지율이 40%대로 추락했다. 낮은 게 아니다. 하지만 추락 추이가 심상치 않다.

날씨는 차갑고, 취직은 안 되고, 물가는 오르고, 정말 짜증나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런데 이게 다 전직 대통령 때문이란다.

‘갑질’ 잘하는 대기업, 금수저 재벌 3세 탓으로 돌린다. 심지어 전직 대법원장, 기무사 쿠데타 음모까지 ‘적폐’ 대열에 합류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배고픈 것을 달랠 수는 없다. 과거로 현재를 덮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게 다 적폐 때문이라 생각하는 문 정권이다. 이제 집권 3년 차다. 달라진 것을 보여줄 때가 됐다. 과거 탓만 할 수 없다.

살기가 팍팍하고, 일자리가 사라져 1백만 실업자가 아우성인데 이전 정권만 탓한다고 뾰족한 수가 생길 리 없다.

과거 김영삼 정부가 광화문 중앙 청사를 부수고, 청와대 주변 ‘안가’도 깡그리 없앴다. 당연히 할 일을 했다고 하지만 부술 게 너무 많다 보니 외환위기가 오는 것도 몰랐다.

그로부터 26년이 지났는데 다시 ‘적폐’가 국정의 중심이 되어버렸다. 필요하면 해야 한다. 그렇지만 이런 시국에 과거만 파먹고 있어도 되는지 걱정이 앞선다.

민주 정치는 의견이 다른 세력들의 공존이다. 이들의 끊임 없는 대화와 타협을 통해 한 걸음씩 나아가는 것이다. 정치의 몫은 절차를 만드는 일이다.

그 절차를 통해 죽이고, 살리는 것은 국민의 몫이다. 정치세력이 직접 경쟁세력을 정적으로 보고 제거 하려 든다면 보복의 역사만 반복되고 존재할 뿐이다.

완전한 악의 제거는 가능한가. 유생의 입을 틀어막은 ‘분서갱유(焚書坑儒 :경제적 파국을 홍위병 난동으로 덮어버린 문화대혁명. 유대인 증오로 민족주의에 불을 지른 나치) 그것이 정말 악이건, 아니건 어느 하나 성공한 것은 없다. 그래도 공감대만 있으면 좋다.

촛불 세력으로 정권을 잡은 문 정권. 더 시급하고 중요한 건 분명히 먹고 사는 문제다. 민주노총엔 설설 기면서도 이렇게 대놓고 야당을 무시할 수 있는 건 여의도가 대체로 인기와 존재감이 없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처음 만난 사람보다 정치인들을 더 믿을 수 없다는 국민들의 감정이 그대로 드러나는 현실이다. 그래도 잊지 말아야 할 건 ’소포모어 징크스‘ 로 외면당한 대통령들의 몰락이 모두 여기에서 출발했다는 사실이다.

역대 대통령들처럼 문 대통령도 그런 절차를 밟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국회를 무시하고 유체이탈 화법으로 국정을 일방적으로 몰아가던 시절, 야당 대표로 있던 문재인이 요구한 건 자신들과 대화로 협상하고, 서로 양보해 타협하자는 것이었다.

그 주문이 지금에 와서 달라질 까닭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 청와대는 집권 3년 차를 맞으면서 여전히 국회와 국민을 무시한 독선의 길을 걷고 있다.

야당과 반대편을 적으로 몰아 선동하는 정치를 한다. 그리곤 정치 실종을 남의 일처럼 논평한다. 이해하기 힘들지만 끝없이 반복되는 관행이고, 적폐가 아닐 수 없다.

지금 한국경제는 기업 실적 악화로 2% 대 저성장 터널에 빠져들고 금리가 뛰는 와중에 3분기 가계부채는 1500조 원을 돌파했다. 안보는 말할 것도 없고 경제는 온통 지뢰밭이다.

이럴 때일수록 정확한 현실 인식이 앞서야 한다. 그래야 위기에 빠진 한국 경제의 비상구를 구할 수 있다. 인간의 감정 중에서 자만심만큼 굴복시키기 힘든 것도 없다고 벤저민 프랭클린은 그에 자서전에 적었다.

아무리 똑똑하고 선의를 갖고 있다 해도 거만하고 독단적인 태도로 나오면 그가 하는 선한 일이 그만큼 힘을 발휘하지 못하게 된다.

집권 세력의 국정 철학도 현실과 맞지 않으면 돌아가는 탄력적 판단이 필요하다. 대선공약이라도 밀어붙일 게 있고, 현장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바꿔야 할 것도 있다.

이는 공무원이 아닌 대통령만이 할 수 있는 유일한 특권이다. 그럼에도 문 대통령은 공약을 지키려 하지도 않았고, 현실과 맞지 않는 국정을 고집하면서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잃은 대통령이 되었다.

이 정부는 진정 개혁을 원하는 정부인가. 그렇다면 권력의 오만을 통회(痛悔)하고 관용의 정신을 회복해야 한다. 그래야 함께하는 진정한 개혁이 가능하다.

나라 경제가 파탄이 나고, 안보위기 속에서 언제까지 적폐만 울 겨 먹으며 국민을 선동할 것인가.

[호 심송, 시인. 칼럼니스트. 방송패널. 한국 심성교육개발연구원 원장.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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