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가이드라인 마련…"질환 인식제고·보험적용 한계" 지적

왼쪽부터 서울성모병원 신장내과 양철우 교수, 고려대 구로병원 신장내과 권영주 교수, 스페인 히메레스디아즈재단 보건연구소 알베르토 오티즈(Alberto Ortiz) 교수.

파브리병은 알파-갈락토시다제 A(alpha-galactosidase A)라는 효소가 결핍돼 발생하는 희귀질환으로, 첫 증상 발현부터 진단까지 10년 이상 걸릴 정도로 조기진단이 어려운 질환이기도 하다.

파브리병은 X염색체 우성 유전질환으로, 어머니가 환자일 경우 자녀는 성별에 관계없이 50%의 확률로 유전되며, 아버지가 환자일 경우 딸은 100% 유전변이를 가지게 된다. 파브리병 환자는 현재 국내에서만 200여명으로 확인되고 있다.

미국, 유럽과 달리 현재 파브리병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부재한 국내 상황에서 최근 출범한 대한신장학회 파브리연구회가 진단 및 치료 가이드라인 제정에 나섰다.

파브리연구회 초대회장인 양철우 서울성모병원 신장내과 교수는 "의사 한 명이 파브리병을 진단하고 환자를 발견하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다"며 "다양한 접근을 바탕으로 진단과 치료 시 서로의 지식과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조직의 필요성을 느껴 파브리연구회를 설립하게 됐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파브리병 진단에는 평균 10~15년이 소요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단순한 증상만으로는 조기진단이 어렵기 때문이다.

권영주 고려대 구로병원 신장내과 교수는 "파브리병 환아가 가장 흔히 겪는 증상으로는 손과 발의 통증이나 복통, 무한증 그리고 온도변화에 취약한 것을 꼽을 수 있다"며 "이 중 몇 가지 증상은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 성인기에 이르러 신경세포 파괴로 인해 더 이상 통증을 느끼지 않게 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 같이 증상이 다소 비특이적이기 때문에 파브리병에 대한 인식이 없다면 단순히 어린아이의 꾀병 정도로 치부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권 교수는 "파브리병은 혈관 세포 내 'GL-3' 물질이 침착하면서 발병하는데 처음에는 혈관질환, 더 진행되면 중추신경, 신장, 심장 등에 영향을 미친다"면서 "증상이 가장 먼저 확인되는 장기는 신장이지만, 단백뇨 등의 증상이 쉽게 주목받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유럽 가이드라인 개정 경험 공유

유럽의 파브리병 치료 가이드라인은 주로 효소대체요법(ERT)을 다루고 있는데 이밖에도 신장, 심장 등 증상이 발효되는 장기에 대한 보조요법과 함께 장기 모니터링 평가, ERT 시작 시기 결정 등이 포함돼 있다.

유럽의 파브리병 가이드라인을 만든 스페인 마드리드 히메레스디아즈재단 보건연구소의 알베르토 오티즈 교수는 이번에 직접 방한해 파브리연구회와 유럽 가이드라인 개정 경험을 공유했다.

오티즈 교수는 "기존과 새로 발표된 가이드라인의 차이점은 파브리병에 여러가지 유형이 있다는 것을 인식한 것"이라며 "파브리병에는 전형적 유형(classical type)과 비교적 늦은 나이에 증상이 나타나는 비전형적 유형(non-classical type)이 있는데 어느 유형이냐에 따라 치료가 달라진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전형적인 유형의 남성 환자는 어릴 때부터 증상이 나타나기 때문에 바로 치료를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증상이 없을 때부터 치료를 시작하는 것이 중요한데, 이러한 환자의 경우 병이 진행되면서 장기에 비가역적 손상을 초래하고 사망에 이르게 되기 때문에 조기진단과 치료가 매우 강조된다.

비전형적 유형의 환자나 여성 환자의 경우는 어떤 증상이 발현되느냐에 따라 치료 기준이 달라진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 과거에는 단백뇨가 보고된 시점이 치료의 기준이었다면, 지금은 단백뇨 이전 증상인 미세알부민뇨가 나타나는 시기부터 치료를 권장한다.

오티즈 교수는 "ERT에 있어서는 용량의 중요성과 질환의 통합적 치료에 대해 강조하고 있다"며 "현재 가이드라인은 주 치료인 ERT 외에도 보조요법에 대해서도 자세히 설명하고 있는데, 하나의 치료법이 아닌 주요 장기의 증상에 대한 통합적 치료를 제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빠른 치료가 최선…보험적용은 한계

권영주 교수는 "국내 신장내과에서는 단백뇨가 500mg이 넘는 경우에 조직검사를 진행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1000mg 이상 시 진행하는 경우도 있다"면서 "정상 수치(150mg)와 비교 시 다소 높은 수치로 질환이 상당히 진행된 상태에서 조직 검사를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더구나 단백뇨가 보이기 전 미세알부민뇨가, 그 전에는 족세포가 소변에 나타나는 것을 감안할 때, ERT를 통한 조기 치료를 위해서는 조직검사가 우선적으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양철우 교수는 "'Early treatment is better treatment'라는 말이 있듯이 증상이 확인됐을 때 바로 파브리병을 진단할 수 있다면, 그때부터 바로 치료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다만, 현재 보험체계에서는 초기 확진 환자에게 보험을 적용하는 것에 한계가 있다. 실제로 소량의 단백뇨로 파비리병을 확진하더라도 보험적용이 어려워 치료를 미루는 환자도 있다"고 전했다.

국내 정서로는 유전질환을 외부에 노출하는 것을 다소 꺼리는 경향이 있어 조기진단에 더 어려움을 겪는다.

양 교수는 "파브리병을 확진하면 의료진은 가계도를 통해 보인자와 환자를 적극적으로 진단하고자 하지만 가족 대상 선별검사 진행 시 질환을 숨기고 싶어하는 환자도 있다"며 "때문에 아직 발견되지 못한 환자가 굉장히 많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파브리병은 모계 쪽으로 유전됐을 경우 어머니 현제에서 모두 발견될 가능성이 있고, 가계도에서 위 세대를 조사할수록 보인자는 더 먼 친척에서 발견될 확률이 크기 때문에 검사를 통한 진단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권영주 교수는 "치료의 목적은 질환 속도를 늦추는 것이 아니라, 투석이나 신장 이식으로 질환이 진행하는 것을 막는 것"이라며 "파브리병으로 인한 비가역적 장기 손상이 나타나기 전에, 조기에 질환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것이 중요하다. 실제로 조기 치료가 활발히 이행된다면 질환에 대한 인식도 긍정적으로 변할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오티즈 교수는 "파브리병은 희귀유전질환이기 때문에 먼저 이 질환에 대해 각 분야에서 많이 다뤄져야 할 것"이라며 "질환에 대한 인지도가 높아져서 증상에 따라 파브리병을 의심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양철우 교수는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는 주요한 이유 중 하나는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치료지침을 '합리적 근거'로 심평원에 제시해 많은 환자들이 적절한 치료를 제때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며 "파브리병 환자가 지속적으로 발견되는 만큼, 파브리병은 이제는 소외시킬 수 없는 중요한 질환"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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