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부부가 차에 기름도 넣고 세차를 하기 위해 주유소를 들렀다. 기름을 다 넣은 후 종업원에게 차를 세차해줄 것을 요구했다. 몇 분이 지난 후 남편이 앞을 보더니 종업원을 불러 앞유리에 얼룩이 졌다며 다시 닦아 줄 것을 요구했다.

종업원은 아무 대꾸도 없이 물통을 들고 와 다시 앞 유리창을 닦았다. 그런데 남편은 또 불평을 하면서 덜 닦였으니 다시 깨끗하게 닦아달라고 화까지 낸다. 종업원은 이때도 아무 소리도 하지 않고 또 물통을 들고 와서 차 앞유리를 닦았다. 세 번째도 앞유리가 지저분하다며 다시 닦을 것을 요구했지만 여전히 뿌옇고 지저분하게 보였다.

그러자 이번에는 남편이 종업원에게 고함을 지르며 “뭐 이따위가 있어? 야, 너 사장 오라고 해 당장 모가지야.” 그때 옆에 있던 아내가 남편의 안경을 벗겨 타월로 안경을 닦은 후 다시 쓰게 했다. 그러자 남편은 종업원에게 정중하게 사과를 했다. 차 유리가 덜 닦인 것이 아니라 안경이 깨끗하지 않다 보니 선명하게 보이지 않고, 얼룩져 보였던 것이다.

얼마 전 고속도로 휴게소에서의 일이다. 화장실 입구에서 한 아주머니가 화가 단단히 나서 있다. 딸 앞에서 “도대체 이런 휴게소가 어디 있어? 화장실에 불을 켜 놓아야지 사람 넘어져 다치기라도 하면 어쩔 거야. 그렇게 어둡게 하면 어떻게 해. 이런 시설로 무슨 고객을...” 그때 딸이 “불이 다 켜져 있고 밝은데, 엄마만 선그라스를 쓰고, 화장실 갔잖아.” 그 딸의 말에 무한했는지 얼른 딸의 손을 잡고 어디론가 달아난다.

그렇다 앞서 남편이나, 아주머니, 모두가 자신의 안경 때문에 사물을 정확히 분별할 수 없었던 거다. 특히 검은 색안경을 쓰다 보니 모든 물체가 투명하지도, 밝지도 않았던 것이다.

남편이나, 아주머니가 조금이라도 자신의 안경에 대해 신경을 쓰거나. 안경의 색감 등을 미리 알았다면, 그런 사단은 나지 않았을 것이며, 말도 그렇게 험악하게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세상사 이치가 그런 것 같다. 안경만 벗으면 맑은 하늘, 푸른 초원을 볼 수 있었을 것이 분명한데 안경이 뿌옇거나. 색안경을 끼고 있다 보니. 사물을 잘못 보거나. 판단을 잘못해 일을 그르치기도 한다.

얼토당토않은 말이나 주장을 억지로 맞다고 우기는 사람에겐 다른 사람의 의견에 귀를 기울일 리 없다.

자기에게만 이롭게 생각하거나, 행동하는 사람들은 아전인수(我田引水), 손가락질하고, 자기주장만 옳다고 고집부리면 수석 침류(漱石枕流)가 되고, 위세를 빌어 일을 끌고 가면, 지록위마(指鹿爲馬)가 되는 것이다.

자고로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아는 것이라 했다. 어설프게 아는 것을 떠벌리는 것보다. 배워가며 하는 것이 일을 해 나가기가 훨씬 쉬울 수도 있기 때문이다.

혹여 정치가에서나 사회에서나 잘 모르면서 억지로 끌고 가기만 하고, 자신의 실책에 대해 인정하기는커녕 변명만 늘어놓는 사람은 없었을까를 생각해 보았다.

정치인들을 바라보면 깊은 상념에 빠지게 만든다. 비록 법을 어기지는 않고 자기 소리를 낸다 해도 세간의 손가락질을 받는 무리들이 있다. 즉 세상의 나쁜 습관에 동조하거나 더러운 것에 합류하는 부류들이 많다는 것이다.

같은 편의 일은 무조건 돕고 다른 무리에게는 해를 끼치는 당동벌이(黨同伐異)들이 수없이 많다. 나쁜 일을 보거나 나쁜 짓을 하면서도 전혀 고칠 마음은 없는 듯하다. 슬며시 휩쓸려 버린다.

맹자의 진심 하(盡心下)편에 나오는 말이다. 고을마다 겉으로는 선량한 척하면서 고을의 수령을 속이고, 백성들을 괴롭히던 토호들을 향원(鄕原)이라고도 불렀는데, 공자에게는 지탄을 받은 자들이다.

이들을 두고 맹자는 ‘비난하려해도 비난 할 만 한 증거도 없고, 또 꼬집으려 해도, 꼬집을 만한 것이 없다. 세상의 흐름에 동조하고, 혼탁한 세상에 영합한다.’ 모두가 청렴결백한 것처럼 보여도, 겉으로는 정의를 가장하면서도 속으로는 부정한 짓거리도 꺼리 낌 없이, 합류하는 거짓 군자로 단정 지은 것이다.

세속에 동조하고, 더러운 세상과도 잘 어울리는 동류합오(同流合汚)같은 군상들이 요즘 정치인들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맹자가 ‘진심’ 상편에 올린 군자에게서의 세 가지 즐거움을 보면 첫째가, 부모가 모두 건강하게 살아 계시며 형제들이 아무런 탈 없는 것이오, 둘째는 우러러봐도 하늘에 부끄럽지 않고, 굽어봐도 사람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것, 세 번째는 천하의 우수한 인재를 얻어서 그들을 교육하는 것이라 했다.

이에 반해 공자는 유익한 세 가지와 해로운 것 세 가지를 계씨(季氏) 편에 올렸는데. 예악에 맞게 행동하고, 남의 좋은 점 말하기, 현명한 친구가 많아짐을 좋아하는 것을 유익한 세 가지로 보고, 교만 방자하고, 절제 없이 놀기, 주색에 빠져 좋아하는 것 세 가지는 해로운 것으로 꼽았다.

특히 맹자는 나라를 다스리는 세속적인 권력과 영예는 세 가지 즐거움에 넣지 않았다.

모든 사람들이 다 그런 건 아니지만 가진 것이 많을수록, 더 높은 자리에 오를수록 더 많이, 더 높이 오르려고 아등바등한다.

적폐청산(敵斃淸算)을 이유로 정적들을 제거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정치인들을 보면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는 것 같다. 권력은 영원하지도 않은 데 말이다.

천하를 다스리는 것조차 삼락에 넣지 않은 맹자의 지혜를 닮은 정치인들이 단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대한민국이 이처럼 더럽게 오염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모두가 잘못된 안경을 끼고,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 그 잘못되고 더러운 안경을 벗어버리고 맑은 세상을 바로 보는 사회가 되기를 소원해 보는 것이 필자만의 욕심일까.

[호 심송, 시인. 칼럼니스트. 방송패널. 한국 심성교육개발연구원 원장.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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